In the aquarium 6
폼폼크랩은 과격하게 폼폼을 휘두른 나머지 하나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것을 찾느라 모래밭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자 암컷크랩은 짝짓기를 포기했는지 저만치 물러갔다. 그때 어디선가 밀려오는 진동을 감지한 폼폼크랩이 동작을 멈추었다. 옆 수조의 불가사리가 잿빛 돌멩이 위에 널브러진 상태로 벽을 툭툭치고 있었다. 그 진동이 폼폼크랩의 수조에까지 전해진 것이었다.
“또 잃어버렸냐? 이참에 버려. 쓸 일도 없잖아.”
“그래. 네 말대로 약육강식을 거세한 아쿠아리움은 평화 그 자체야. 방문객들은 물속의 평화를 물 밖에서 감상한 대가로 입장료를 지불하지. 하지만 그건 그거고, 네 본능이 언제 돌아와서 날 잡아먹을지 모르잖아?”
“하하. 아까 내 등 위에서 센 척하더니 완전 쫄보였구먼.”
“폼폼만 있으면 난 무적이 되니까. 너 같은 천적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에 말미잘 독성만큼 좋은 것도 없지.”
“뻘짓 그만하고 남은 걸 찢어서 두 개로 만들어.”
“아, 맞네. 그 방법이 있었지.”
폼폼크랩은 그때서야 찾는 것을 멈추었다.
“쯧쯧.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지.”
“뭐라고?”
폼폼크랩은 두 개의 개체로 나눈 폼폼을 양 집게발에 쥐고서 상대 수조 벽을 향해 펀치를 날렸다.
“그나저나 오늘 회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너 말 한 번 잘 꺼냈다. 아까 내 말에 바로 반박을 해? 이래서 내가 널 좋게 보려 해도 좋게 볼 수가 없어.”
“...”
“그래, 넌 탈출하나 안 하나 상관없는 삶이지. 바다에 있어도 인간 손을 탈 거고, 여기에 있어도 만짐을 당할 테니까. 게다가 넌 딱딱하고 맛없다고 잡아먹지도 않지.”
불가사리 수조는 어느 순간 아무 기척도 없었다. 폼폼크랩은 말을 이으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잿빛 돌 위에 널브러져 있던 불가사리가 보이지 않았다. 물속 깊이 침전하여 잠이 든 모양이었다. 폼폼은 하품을 길게 한 후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실은 내가 이곳으로 잡혀오기 전에 ‘피피’라고 내 반쪽이 있었어. 피피는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재밌게 말하는 재주가 있었지. 난 가만히 있기만 해도 바다가 돌아가는 상황을 피피를 통해 들을 수 있었어. 피피는... 잘 살고 있겠지? 설마 그동안 다른 놈이... 생긴 건 아니겠지? 난... 피피를 만나러 갈 거야. 오늘이 여기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 될 거라구...”
폼폼크랩은 이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시 후 옆 수조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붙어있던 불가사리가 몸을 떼어내자 돌들끼리 부딪치면서 난 소리였다. 수조는 다시 잠잠해졌다. 파동 하나 없는 고요한 어둠 속, 불가사리의 말단촉수 하나가 반짝 빛났다.
폼폼크랩은 몇 시간 자지 못한 채 깨어났다. 바다거북에게 자신의 탈출의사를 알릴 시간은 오직 새벽뿐이었다. 회의 날을 제외하곤 이렇게 수조를 벗어나 실내를 활보하는 건 처음이었다. 옆으로 기어가는 동안 수조여과장치 소리들이 한데 섞여 괴기한 음을 만들어냈다. 괴물의 울음소리 같아 슬쩍 겁이 났지만 오늘 이곳을 떠난다 생각하니 무서움이 저만치 달아났다.
회의실을 찾아낸 폼폼크랩은 옆의 바다거북 수조를 발견하곤 집게발로 두드렸다. 바다거북은 투명 수조 벽 너머의 폼폼을 보곤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저 무겁게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탈출 의지를 다지는 신호를 주고받고서 폼폼크랩은 천천히 돌아섰다. 순간 자신의 그림자를 밟고 있는 한 생물체를 발견하곤 그 자리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나도 탈출한다.”
불가사리의 어조엔 높낮이가 없었다.
“네가 왜...?”
“이제부터라도 다리에 힘 좀 길러. 고작 이런 걸로 주저앉아서야 탈출이나 제대로 하겠어?”
“왜 바다로 가려는 거야? 설마 나 잡아먹으려고?”
“야. 생물 입맛 그렇게 쉽게 바뀌는 거 아냐.”
불가사리는 이전과 달리 폼폼크랩의 보폭에 맞춰 앞이 아닌 옆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그럼 왜 탈출하려는 거야? 넌 여기 있어도 상관없잖아.”
“바늘이 가는 곳에 실이 따라갈 뿐.”
“뭔 소리야?”
“아쿠아리움 3년이면 인간 속담도 인용할 줄 알아야지.”
불가사리는 자신의 수조에 다다르자 또 불쑥 입을 열었다.
“바다에 가면 피피라는 네 애인 볼 수 있는 거야?”
“뭐야? 너 어제 안 자고 있었어? 아니 근데 피피는 왜? 잡아먹으려고?”
“아, 고놈의 잡아먹는다는 얘기 좀 그만할 수 없어? 나 이제 채식할 거거든!”
폼폼크랩은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지만 꾹 참고서 불가사리를 계속해서 추궁했다. 그러나 불가사리는 끝내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탈출]
아쿠아리움 개장 시간은 오전 10시였다. 그러나 문은 항상 그보다 한 시간 일찍 열렸다. 가장 먼저 입장하는 인간은 청소하는 중년 여성이었다. 전날 저녁에 대충 청소해 놓은 아쿠아리움을 다시 한번 정리함과 동시에 휴지통을 비우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아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무겁다냐.
중년 여성은 구석에 비치된 휴지통의 스테인리스 뚜껑을 연 뒤 그 안에 든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를 꺼냈다. 먹다 남은 군것질 거리와 휴지, 물티슈, 빨대, 일회용 플라스틱, 아이의 토사물 등등이 커다란 투명 봉투 너머 그대로 비쳐 보였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쓰레기봉투 안에 담긴 정체불명의 검정 비닐봉지가 저절로 굴러다닌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검정비닐봉지를 확 낚아챘다.
“으악, 바다거북 살려.”
“폼폼이 죽어.”
-안에 돌이 있나...
검정비닐봉지를 꾸욱 누른 여성은 혼잣말을 뱉었다. 그리곤 다시 한번 그것을 납작하게 눌러 부피를 최소화한 뒤 100리터 쓰레기봉투의 매듭을 서둘러지었다.
“게 내장 다 터질 뻔...”
“해수 다 새어나갈 뻔.”
중년 여성은 쓰레기봉투를 질질 끌어 아쿠아리움 정문 앞에 내놓았다. 태양 아래 놓인 쓰레기봉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안에 든 검정비닐봉지에 작은 구멍이 뚫리는가 싶더니 폼폼크랩이 집게발을 드러냈다. 집게발은 쓰레기봉투의 꼭대기에 있는 매듭을 단박에 싹둑 잘라버렸다. 순간 쓰레기봉투가 중심을 잃고 모로 기우나 싶더니 온갖 것들을 밖으로 토해내며 쓰러졌다. 검정비닐봉지 역시 데굴데굴 구르며 바깥으로 착지했다. 봉지 속 생물들은 어지럼증을 느꼈지만 곧 자신의 자리를 찾아 대오를 정렬했다. 폼폼크랩이 불가사리 등에 올라타자 불가사리 역시 바다거북 등에 올라탔다. 이윽고 작게 뚫린 구멍 사이로 폼폼크랩의 긴장된 얼굴이 빠끔히 드러났다. 마치 배의 키를 움켜쥐고 있는 조타수 같았다.
“캬. 아쿠아리움 앞에 무슨 가게가 이리 많아? 캐리커처 가게, 핫도그 가게, 샌드위치 가게, 패밀리데이, 이천 냥 커피...”
“줄지어 서있는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도 수십 개야.”
“그런데 우리가 탈 탱크트럭은 언제 와?”
“아쿠아리움 개장 전에 온댔으니 곧 도착하겠지.”
“그런데 탱크트럭을 어떻게 알아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