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aquarium 7
바다거북이 그때서야 입을 열었다.
“상어 두 마리가 마주 있는 모양새로 그려져 있는 트럭을 찾으면 돼. 탱크는 파란색으로 칠해져 있어.”
바다거북은 과거에 해수 집의 탱크차를 종종 봤었다. 인간들은 모터로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해수 업체를 해수 집이라 불렀다. 수산시장이나 아쿠아리움에다가 바닷물을 팔아서 돈을 버는 해수집 사장 별명은 봉이 김선달이란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이 쪽으로 트럭 한 대가 오고 있어.”
도로를 지켜보던 폼폼크랩이 외쳤다.
“그런데 파란색이 아니라 녹색이야.”
“페인트를 다시 칠했나? 탱크차 모양 맞아?”
“그게 그러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탱크차를 실제로 본 적이 없는 폼폼크랩은 말끝을 흐렸다. 거대한 녹색 차는 아쿠아리움 앞에 정차했다. 운전석과 보조석에서 건장한 남성 두 명이 내리더니 신속한 동작으로 쓰레기봉투를 실어 날랐다.
“쓰레기차인가 봐...”
“우린 쓰레기봉투가 아니니까 줍진 않겠지?”
“그건 우리 생각이고.”
“지금이라도 쓰레기봉투로부터 멀리 떨어질까?”
“섣불리 움직였다간 더 눈에 띌 수도 있어.”
그때 시커먼 매연이 검정비닐봉지를 자욱하게 덮쳤다.
“웩!”
“케켁...”
폼폼크랩은 매운 눈을 힘겹게 뜨며 구멍 사이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상어 그림이 그려져 있는 파란색 타원형 물탱크 트럭이 쓰레기차 옆으로 정차하고 있었다.
“상어다! 살면서 상어가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상어 두 마리가 마주 보는 그림 맞아?”
바다거북은 재차 확인했다.
“탱크는 파란색이랬지? 확실해.”
야구 모자를 쓴 남성이 운전석에서 내렸다. 그는 트럭 뒤에 감겨있는 호스를 풀어 아쿠아리움의 해수저장탱크로 가져갔다.
“탱크엔 25톤의 바닷물이 들어있어. 저걸 옮기는 동안 우린 트럭에 타야 해.”
바다거북의 말에 폼폼크랩은 다시금 구멍을 통해 전방을 주시했다. 쓰레기봉투를 든 인간 남성들은 녹색 차에 옮기는 것에만 집중할 뿐 전혀 이쪽에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지금이야! 뛰어!”
폼폼크랩의 말에 바다거북은 있는 힘껏 내달리기 시작했다. 폼폼크랩과 불가사리는 비닐봉지가 움직이는 순간 충격에 휩싸였다. 이것이 최상의 속도란 말인가. 차라리 굴러서 가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그러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자, 잠시. 지진인가...?”
바다거북은 바닥에서 전해지는 진동을 감지하곤 팔다리와 목을 등껍질 안으로 쑤셔 넣었다.
“왜 그래?”
불가사리의 물음에 폼폼크랩이 구멍에 눈을 고정시켰다.
“아쿠아리스트 복장 하나가 여기로 오고 있어!”
폼폼크랩은 여자라는 것만 확인한 채 구멍을 닫아버렸다. 눈이라도 마주쳤다간 그대로 잡혀가 버릴 것 같았다.
‘우리의 계획은 이대로 물거품이 되는 건가...’
‘탈출은커녕 입구에서 잡히는 운명이라니...’
세 마리의 생물들은 힘이 쭈욱 빠졌다. 그러나 망연자실해할 틈도 없이 온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바다거북...?
‘아! 이 목소리는...’
바다로 돌려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신이 잡혀오던 날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던 인간여성의 목소리 아닌가. 옥토 쇼 타임에서도 대왕님과 합이 잘 맞아 보였던 아쿠아리스트가 분명했다. 그때 공중으로 떠올랐던 비닐봉지가 다시 추락하는가 싶더니 어딘가로 사뿐 착지했다. 비닐봉지 안의 생물들은 무슨 상황인지 도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것만은 분명해졌다. 영인이 우리의 메시지를 읽었다는 것. 그렇지 않고서야 비닐봉지를 다시 제자리에 놔줄 리 없지 않는가. 바다거북은 용기를 내어 조금씩 움직였다. 느린 걸음이긴 해도 검정비닐봉지는 탱크트럭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무런 외부의 압력도 일어나지 않았다. 바다거북은 그녀의 묵인을 응원이라 믿으며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마침내 탱크트럭 앞바퀴까지 당도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위기에 직면했다.
“올라갈 수가 없어...”
아무리 버둥거려도 중력을 거스르는 것은 무리였다. 자신이 옥토대왕님과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낀 바다거북은 절망에 빠졌다. 순간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남자야? 여자야?”
바다거북이 폼폼크랩에게 다급히 물었다. 대답할 틈도 없이 비닐봉지가 공중으로 떠오르나 싶더니 어딘가로 옮겨졌다. 더 이상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자 폼폼크랩은 구멍 틈 사이를 내다보았다. 비닐봉지가 탱크트럭의 보조석에, 정확히는 보조석에 탄 인간이 발을 놓는 자리에 놓여 있었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데 물대포가 쏟아졌다. 영인이 자신의 텀블러에서 물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수분이 말라가 게거품을 쥐어짜던 폼폼크랩에겐 한 줄기 빛과도 같은 물이었다. 봉지 속 아쿠아리움 해수의 염분은 연해질 테지만 지금 그런 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같은 꿈 속에 있는 건가?’
달콤한 꿈을 복기해 보려는데 물줄기가 끊어졌다. 이어 야구 모자가 들어왔다. 세 마리의 생물들은 바짝 긴장했다. 야구 모자는 보조석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시동을 걸었다. 차가 사 차선 도로에 진입하자 생물들은 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나 조금 전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순간들을 떠올리며 촉수를 악물고 견뎌냈다.
구멍 틈으로 보이는 아쿠아리움은 이제 하나의 점처럼 작아지고 있었다. 우리가 탈출했다니... 폼폼크랩은 자신의 폼폼을 집게발로 꼬옥 쥐었다. 피피크랩과 나누었던 말미잘의 증표를 놓칠 순 없었다. 불가사리 역시 바다거북의 볼록한 중앙 등딱지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선 검정비닐봉지의 형태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했다. 바다거북 또한 영인이 점지해 준 자리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 꼬리 끝까지 힘을 주었다.
‘영인이란 인간여성에게 입은 은혜는 결코 잊지 못할 거야. 언젠가 갚을 날이 있겠지...’
태양이 그들의 장밋빛 미래를 염원하듯 붉은 기운을 뿜어내며 수평선 아래로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