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aquarium 3
[회의]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회의 날엔 모든 생물들이 빠짐없이 참석했다.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이 회의는 아쿠아리움에 사는 생물들에게 크나큰 자긍심이었다. 아쿠아리움의 천장에는 사건사고를 대비한 cctv가 달려 있었지만 어느 곳이든 사각지대는 있기 마련이었다. 또한 수족관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기에 한 곳에서 모든 생물들이 모이는 게 불가능할 것 같지만 어느 곳이든 개구멍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통과하는 날다람쥐 같은 생물이 뭍이 아닌 물에도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위험천만한 모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물을 순환시켜 주는 펌프와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여과장치, 유해한 미생물을 제거하는 자외선 살균기와 각종 배관 장치로부터 빠져나온 생물들이 자가 호흡으로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 시간은 30분을 넘지 않았다. 덩치가 큰 연가오리와 얼룩말상어의 경우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대형 돔 수조 안에서 회의를 내려다보는 것이 용인되었다. 또한 몸의 대부분이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찢기기 쉬운 해파리는 수조 안에서 알전구 역할을 함으로써 회의에 임했다. 이들의 몸이 불빛에 투과되면 회의 장소 역시 조명의 색에 따라 붉고 퍼렇게 달떴다.
제일 먼저 ‘주’와 ‘황’ 개구리가 수조에서 나왔다. 평소에 갈고닦은 점프 실력으로 덮개를 쿵쿵하고 밀어내자 틈이 생겼다. 폴짝 튀어나온 이들은 뜀박질을 하여 매표소 직원 자리까지 이동했다. 직원의 책상에는 플라스틱 투명 텀블러가 놓여 있었다. ‘주’와 ‘황’이 텀블러에 들어가자 잠시 뒤 옥토가 와서 그것을 들고 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옥토의 다른 발에는 유리로 만든 그릇이 들려 있었다. 시리얼 부스러기가 둥둥 떠다니는 그릇 속에는 흰동‘가리’가 들어 있었다. 몸의 형체를 길쭉하게 바꾸어 벽에다 밀착시킨 옥토가 텀블러와 유리그릇을 쥐고 가는 모습은 마치 콜라와 팝콘을 들고 영화관으로 이동하는 인간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회의장에 텀블러와 유리그릇을 둔 옥토는 다시 매표소 직원 자리로 갔다. 책상 옆엔 민트 색 미니냉장고가 있었다. 앙증맞은 정사각형 문을 열면 다이어트 보조식품과 냉동만두, 육포 같은 것들이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상태로 우당탕탕 쏟아졌다. 옥토는 그것들을 모두 바닥에 내동댕이친 뒤 끌고 온 장애인용 휠체어에다 냉장고를 비스듬히 기울여 실었다. 그리곤 사각지대만을 골라 휠체어를 훅훅 밀었다. 휠체어가 펭귄 수조 앞에 다다르면 대기하고 있던 ‘펭’이 냉장고 속으로 쏙 들어갔다. 옥토는 다음 목적지인 해마 수조로 이동했다. 냉장고 문손잡이에 ‘해’와 ‘마’의 꼬리를 나란히 걸고서 회의장으로 가면 얼추 모든 이들이 모인 셈이었다.
회의장에 도착해서도 옥토의 할 일은 끝나지 않았다. 휠체어에 실린 냉장고를 내려놓은 뒤 콘센트에 플러그를 끼우면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이는 회의를 곧 시작하겠다는 신호음이었다. 저 멀리서 폼폼크랩을 태운 불가사리와 그 뒤로 부지런히 기어 오고 있는 바다거북만 도착하면 진행해도 될 성싶었다.
다리마다 검정 줄무늬가 일정하게 그어져 있는 폼폼크랩은 크기가 벌레만 하여 언뜻 보면 거미인지 착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양 집게발에 항상 말미잘을 – 치어리더 손에 든 응원용 수술 같은 폼폼을 - 쥐고 있었기에 한편으론 곤충 과로 보이지 않았다. 주황색 몸통에 오각형이 삐뚤빼뚤하게 그려져 있는 폼폼크랩은 폼폼만 뺀다면 새끼 꽃게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내가 게라는 걸 잊었어? 옆으로 좀 가라고.”
“내 몸 위에 올라타 있는 주제에 무슨 명령질이야? 확 잡아먹어버릴까 보다.”
“흥.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폼폼크랩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외려 불가사리 등에다 폼폼을 문질거리며 감정을 표출하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본 바다거북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거기 두 생물, 내 등에 올라탈래?”
“아니.”
“그쪽보다 우리가 더 빨리 도착할 것 같은데.”
불가사리와 폼폼크랩은 처음으로 마음의 일치를 보았다.
대형 돔 수조 안의 연가오리와 얼룩말상어는 이렇듯 생물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보았다. 이들 사이로 작은 열대어들이 거대한 물고기 모양을 이루어 휘익 지나갔다. 열대어들 역시 회의에서 나름의 역할을 수행했는데 바로 시간 담당이었다. 이들이 대형 돔 수조를 여섯 바퀴 돌고 오면 회의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연가오리가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출발신호를 보내자 열대어 무리가 첫 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이들의 출발을 지켜본 옥토는 앞으로 나와 무겁게 입을 뗐다.
“아주 옛날에 쇼펜하우어라는 인간이 그랬습니다. 인생은 권태와 고통 사이에서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고...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기서 인간이 주는 먹이나 받아먹으며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아니면 진짜 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날 것인가?”
옥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다거북이 바로 맞장구를 쳤다.
“당연히 자유를 찾아 떠나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에게 조종이나 당하는 저급한 생물이 아니니까요.”
이번엔 ‘황’개구리가 텀블러에서 폴짝 튀어나와 의견을 개진했다.
“오늘 주제는 자유인가요? 그런데 자유를 좇는 것이야말로 멍청한 짓 아닐까요? 여기 있으면 천적으로부터 공격당할 위험도 없고 먹이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잖아요.”
같은 텀블러에 들어있던 ‘주’가 뒤따라 튀어나오더니 ‘황’의 말에 반박했다.
“평생 인간들에게 조종당하다가 죽고 싶으면 그래도 되겠죠. 하지만 깨인 생물들은 제 이야길 잘 들으세요.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가득한 이곳에서의 삶을 우리도 이제 한 번쯤은 재고해 볼 때가 되었다고 봐요.”
“만약 탈출을 시도했다가 고향에 다다르기도 전에 죽으면 그거야말로 어리석은 짓 아닐까요?”
“자신이 선택한 삶에 대한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죠. 본래 자유는 대가 없이 주어지지 않는 법이니까.”
‘황’과 ‘주’ 개구리가 갑론을박을 펼치는 사이, 수조 안에서 불빛 역할을 하던 ‘해’와 ‘파’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늘 회의가 희한하게 흘러가네...”
“이렇게 진지한 적이 있었던가?”
“한 번도 없었지. 저번 달엔 먹이가 싱싱하지 않다는 이유로 단식하자, 투쟁하자, 어쩌자 했다가 늘 그렇듯 흐지부지 끝났잖아.”
“옥토가 회의 분위기를 바꿔놨어.”
수조 안에서 알전구 역할을 하는 ‘해’와 ‘파’리들이 떠드는 동안에도 ‘황’과 ‘주’개구리들은 여전히 티격태격했다.
“이곳 시스템이 우릴 바보 맹추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스템을 바꿀 힘이 없어요. 그렇다면 방법은 단 하나... 우리가 바뀌어야 합니다.”
“아니 아니, 전제부터가 틀려먹었어요. 여긴 갑작스러운 폐수로, 그리고 온도 변화로, 또 전염병으로 죽을 일도 없어요. 여러분, ‘주’의 말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아쿠아리움 밖이 얼마나 살벌한 곳인지 벌써 잊으셨어요?”
‘황’의 말에 좌중이 웅성거리자 냉장고 손잡이에 매달려 있던 ‘해’와 ‘마’도 소곤거렸다.
“오늘따라 개구리들이 왜 이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지?”
“이게 다 옥토가 초장에 똥폼을 잡아서 그래.”
“저 거북이가 맞장구만 안 쳤어도 이 정돈 아니었을 텐데.”
“여기 오기 전에 바다에서 옥토를 대왕으로 모셨다던가 뭐라던가...”
“뭐? 대왕? 푸하하.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왕 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