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Bayonne - Saint Jean Pied de Port
파리에서 TGV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렸는지. 프랑스길을 걷기 위한 관문도시인 바욘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경이었다. 이곳 역시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친절한 역무원이 소개해준 식당까지 걸어가 점심을 먹을 요량이었는데, 마침 그 식당은 점심 예약이 가득 차서 나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없다고 했다. 비를 맞으며 식당 근처를 둘러보다 호객을 하고 있는 강변가 식당 주인아저씨의 유쾌함에 이끌려 선뜻 자리를 잡았다. 독특한 양념에 재워 구운 닭과 감자튀김을 곁들인 메뉴였는데 기대만큼은 아니었지만 흉볼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중요한 몇 가지 물품들을 사기 위해 데카트론(Decathlon)으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한 20분 정도 도시 외곽으로 나가면 데카트론이 있는데 순례길을 걷기 위해 장비를 구입하려고 찾아오는 한국인들이 꽤나 많이 들러서 순례길 안내 블로그에도 여러 차례 소개될 만큼 순례객들이 꼭 들려야 할 필수코스가 되었다. 요즘 한국에도 한두 개씩 생긴다는 데카트론 매장을 이번에 처음 가보게 되었는데, 과연 아웃도어계의 이케아라 불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은 매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건들의 값은 유럽 물가 치고도 저렴했다. 나는 여기서 무릎보호대와 손장갑, 등산스틱 2자루를 구입했다. (참고로 나의 경우 순례길 내내 등산스틱 한 자루로도 충분했었다.)
배도 채우고 필요한 물건도 샀으니 숙소에서 체크인을 마친 후에 산책 겸 동네 구경을 나섰다. 바욘의 구도심은 아두흐강을 따라 걸으면 한 시간 안에 다 둘러볼 수 있을 만큼 아담했다. 옛 바욘은 바스크문화 중심지로 프랑스에 있는 가장 큰 고딕양식의 성당 중의 하나인 바욘 대성당이 위치할 만큼 주요 항구도시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중세시대에 번성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조용한 소도시가 된 것 같았다. 거리의 인적도 많지 않았고 강변에 위치한 노천카페 여기저기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유유자적 흐르는 삶의 속도를 느낄 수 있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항상 긴장해 있던 파리와는 달리 나는 좀 더 느슨해질 수 있었다. 하릴없이 바욘 대성당 인근을 둘러보고 백화점에도 들렀다. 기대했던 것보다 소박한 규모의 백화점이었는데 이곳에서 프랑스의 물가에 새삼 놀랐다. 100유로 이하 물건이나 옷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견물생심이라고 오래 있어봐야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대충 둘러보고 나와 역무원이 점심을 먹으라고 소개해준 식당을 다시 들렀다. 저녁 테이블은 예약 가능하다는 말에 나는 가격도 확인을 안 하고 의례 동네 맛집이겠거니 하는 생각과 이왕 프랑스에 온 김에 한 번은 제대로 된 프랑스식 메뉴를 먹어보겠다는 생각으로 덜컥 예약을 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니 조금은 망설이게 되었다. 메뉴하나하나의 가격과 와인 한잔 가격이 절대 만만치 않았다. 혼자 먹는 저녁 한 끼 식사에 8~9만 원을 써야 할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평소 '가성비충'이라 자부하던 나에게는 조금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자신만만하게 예약은 했고 이제 그 식당에 나타났으니 이대로 돌아설 수는 없는법. 나는 전식으로 채소와 빵이 곁들여진 푸아그라와 트러플과 당근소스로 속을 채운 닭가슴살 요리를 주문했다. 그리고 디저트로는 백향과 소스에 커스터드 크림이 가미된 파이(?)를 먹었다. 바욘의 로컬 와인을 곁들인 이 음식들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모두 생소한 맛의 음식이었지만 어찌나 간이 잘되어있는지 나에겐 소금이나 후추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음식에 담긴 재료 하나하나 생소하고 재밌는 경험이었기에 음식값을 지불하는데 전혀 돈이 아깝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도호루강변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오르셰미술관에서 본 반 고흐의 그림들이 생각났다. 파랗게 어두워져 가는 하늘과 노란 가로등 조명을 비추는 강변을 걷다 보니 새삼스레 외로워졌고 포근해졌다.
여행지에서는 아침이 평소보다 빨라진다. 오후 2시경에 생장피에드포흐로 향하는 기차를 타는 한가로운 일정에도 일찍 잠이 깬 나는 어제보다 더 멀리 강을 따라 걸었다. 딱히 들어가 볼 생각이 없었던 바욘 대성당도 시간이 남아 잠시 들렀다. 바스크민족을 상징하는 녹색과 빨간색이 어우러진 돔 천장과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종교건축물은 나에게 큰 감명을 주지 못했다. 내세를 위해 몸 바친 중세사람들의 수고로움이 가득한 인공적 건축물보다는 자연 한 귀퉁이에 조용히 자리 잡은 절간이 나에겐 더 와닿는다. 기독교집안에서 자란 나는 교회 하나를 건축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돈과 정성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거대한 성당을 들어가면 이 건축물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을까 하는 생각과 십자가 형태로 위엄 잇게 솟은 실내의 위계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생장행 기차를 타기 위해 다시 바욘역으로 향했다. 바욘역 광장에는 이미 순례자들로 보이는 행색을 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삼삼오오 서로 순례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역사 안으로 들어가 기차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역광장에 나와 순례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들도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디서 왔니? 어떤 길로 걸을 예정이니?'와 같은 인사와 함께 한 달여를 함께할 짐들이 담긴 가방들에 대한 논평과 하릴없는 농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기차시간이 다가왔다. 함께 이야기 나누던 사람 중 60대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자신은 북쪽길을 걷기 때문에 다른 기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아마 순례길 최초의 인사를 이 자리에서 했던 것 같다. '부엔 카미노(Buen Camino)!' 우리는 서로 끝까지 무사히 걷기를 기원해 주고 생장으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했다.
내 옆자리에 랄프라고 하는 독일 함부르크 출신의 중년 순례객이 앉았다. 그는 그의 집에서부터 바욘까지 몇 년 동안의 휴가기간에 걸쳐 걸었다고 했다. 경찰공무원인 그는 이제 은퇴해 내일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프랑스길을 걸을 작정이었다. 독일에서 프랑스까지 어디서 묵으며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왔을지 궁금했던 나의 질문에 그는 때로는 캠핑도 했고, 와이너리에서 제공하는 숙소에서도 묵었고, 정말 숙소를 찾기 힘들 때는 눈에 보이는 민가에 요청해 비용을 지불해 숙식을 해결했다고 했다. 놀라운 일이다. 20대 청년도 엄두를 내기 힘든 모험을 50대 중후반 나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니. 한국의 일반적인 50이라면 돈 몇 푼을 더들이더라도 택시를 타고 근처 호텔에서 잠을 잤을 텐데 그 생고생을 감내하며 먼 길을 걸어왔다니.
기차는 겨울철 쌓인 눈이 녹아 물이 점점 불어나고 있는 개천옆에 난 기찻길을 따라 구불구불한 언덕을 올라갔다. 나는 완연하게 유럽의 도시 문명과 멀어지고 있었다. 먼 곳에 보이는 푸른 잔디로 덮인 언덕이 우리나라의 풍경과 달라 신기했다. 창에 비치는 낯선 산림을 정신없이 구경하는 하는 사이 기차는 생장에 도착했다. 생장은 작은 산촌 마을이다. 한국으로 치면 지리산에 있는 마을에 온것 같은 느낌이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마을 사람들의 인적은 드물었고, 순례자 여권 '끄레덴시알'을 발부해 주는 순례자 사무소로 향하는 들뜬 순례자들의 대화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순례자 무리를 따라가니 순례자 사무실을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안내를 들어보니 원래 코스인 피레네 산맥을 넘는 코스가 눈이 녹지 않아 우회로를 걸어야 한다고 했다. 여러 순례자들이 피레네 산맥에서 찍은 아름다운 사진들을 그동안 많이 봐온 터라 아쉬움이 매우 컸다. 여권을 받고 가방에 매고 다닐 조개를 하나 구입했다. 마침 한국에서 온 젊은 여자분이 출발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이분과는 이후에 열흘 이상을 순례길 동료로 함께 했다.) 바욘에서 미리 예약해 둔 생장의 첫 번째 알베르게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날이라서 되도록 편한 숙소에 묵고 싶어 좀 더 비싼 사설 알베르게를 예매했었다. 이곳에 짐을 풀러 온 나와 또 다른 순례자에게 중년의 배불뚝이 알베르게 사장은 굳이 안 해도 될 약간의 설교조 조언을 했다.
"순례길은 너만을 위한 길이야. 이 길을 걸으며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마. 부모도, 친구도, 아내도, 자식도 아닌 오직 너만을 생각해."
그게 뭔 상관이란 말인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걷든, 나만을 위해 걷든, 각자의 삶의 태도나 이 길을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는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자기 방식대로 걸으면 그만이다. 사장이 늘어놓는 전형적인 '라테 순례길은 말이야'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나는 내 인생 최초의 알베르게에 짐을 풀었다. 4인이 2개의 이층침대로 한 공간을 사용하는 구조의 방이었다. 내 옆에는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키가 크고 낡은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수염을 기른 다소 험상궂어 보이는 친구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바욘역 광장에서 커다란 짐을 벤치 한편에 세워두고 누워서 한가로이 담배를 피우고 있던 친구였다. 그다지 호감형은 아니었지만 어렵사리 인사조로 말은 붙였다. 이태리 로마에서 온 '페페'라는 이름의 친구였는데 서투른 영어실력임에도 대화를 나눠보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나는 생장을 둘러보러 거리로 나왔다. 마을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골목길은 언덕을 향해 나있는데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골목길을 따라 언덕 위까지 올라가면 오래된 성벽이 있다. 성벽 위에서 생장의 전망을 바라보니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아 정말 꿈만 꾸던 이곳에 왔구나.'라는 기쁜 마음과 '왜 나는 이곳에 와야만 했을까.'라는 슬픈감정이 동시에 느껴졌다. 내가 이곳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곳에 내가 선택된 것 같은 기분이드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성벽 위에서 담배를 피우며 감상에 빠져있다 배가 고파져 식당을 찾았다. 일요일이라서 문을 연 식당이 한두 곳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중 괜찮아 보이는 식당 야외좌석에 앉아 음식을 시키고 담배하나를 피우고 있는데 아까 숙소에서 본 페페가 마침 지나갔다. 나는 식당을 찾고 있는 거면 여기서 같이 먹어도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계속 나누다 보니 페페가 정 많고 진솔한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얼마 전 여자친구가 자기의 직장동료와 바람을 피워 아이를 임신했고 그래서 투명인간처럼 지내고 싶어서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는 그의 말이 슬프면서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 같아서 솔직히 좀 웃겼다. 페페와 한참을 떠들다 보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내일 우리에겐 순례길의 본격적 시작이자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피레네가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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