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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경 Dec 20. 2021

오늘을 마감합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에 한 번, 일정을 시작하기 위해 아침에 한 번 꼭 하는 일. 지금도 변함없다.


 잠에서 깨어나 먼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지각은 아닌지, 얼마큼 더 누워있을 수 있는지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로 어느 때보다 빠르게 계산한다. 몇 분이 더 지나 몸을 일으키고 이불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겨우겨우 침대에서 벗어난다. 그제야 하루의 첫 번째 일과가 시작된다. 밤새 닫혀있던 커튼을 여는 일.


 간단한 일이지만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몽롱한 상태에선 꽤 집중을 필요로 한다. 한 번에 촤악 걷어야 기분이 좋으니 말이다. 오늘의 날씨가 어떤지, 건너편 아파트나 빌딩에 사는 사람들은 커튼을 걷었는지. 창문 틈에 숨어 미어캣처럼 내려다본다.


 하나둘 커튼을 걷어내는 모습은 닫혀있던 상가 문을 여는 모습과 닮았다.


 어떤 집은 화분을, 어떤 집은 이불을, 어떤 집은 귀여운 고양이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일찍이 문을 여는 상가도 있다. 문은 열었지만 대부분의 상가는 주인이 가게를 비운 상태다. 다녀가는 손님은 하루에 몇이나 될지. 주인이 모르는 사이에 새들과 나비가 손님으로 다녀갔을 수도 있겠다.


 아침 일찍 연 상가들은 주인이 상주하는 가게도 있겠지만 대부분 하루 종일 빈 채로 시간을 보낸다. 가게를 지키는 건 주인의 반려동물, 혹은 반려식물, 곳곳에 남아있는 주인의 흔적들 뿐이다. 저녁 6시가 넘으면 비어있던 가게의 주인이 하나 둘 돌아온다. 늦게나마 가게로 돌아온 주인들은 그제야 하루 종일 비워둔 가게를 돌본다. 자신의 가게가 아닌 다른 이의 가게를 돌보고 오느라 피곤하지만 자신의 가게를 위해 조금 더 힘을 내 먼지가 쌓이진 않았는지, 물건이 상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고 있을 것이다.


 밤이 되면 활짝 열려있던 가게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내놨던 물건들을 안으로 들여놓고 커튼을 닫는다. 그 가게의 마감시간이다. 밤늦게까지 등불을 켠 가게들도 몇몇 눈에 띈다. 오전 내내 비어있던 가게를 오후 내내 돌보는 걸지도 모른다. 자정이 넘는 새벽까지 커튼을 닫지 않는 가게도 있다.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어두운 거리의 등대처럼 빛을 내는 가게의 오늘은, 내일이 되어도 오늘일 것이다. 각자의 오늘을 마무리하고 포근한 가게의 온기를 돌보며 내일을 준비한다.


 오늘도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이만 커튼을 닫아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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