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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Mar 30. 2024

서른하나, 드디어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

카페인 최약체의 유제품 알러지가 불러온 나비 효과.

일할 때 카페에 가면 으레 껏 마주쳤던 상황. "뭐 드시겠어요?" "아.. 저는..." 한참을 고민해도 답은 정해져 있다. "저는 아이스 초코요." 그럼 뒤따라오는 질문. "아, 커피를 못 드시나 봐요?" "제가 카페인이 잘 안 받아서요."


6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일을 하며 이런 상황을 최소 오백번 이상 마주쳤다. 아이스 초코를 이야기하면 놀라운 듯 보는 시선도, 남들 다 시키는 아메리카노보다 높은 가격인 점도 불편했지만 그렇다고 죄다 버릴 커피를 주문하긴 더 낭비니 상황이 허락하는 선에서 아이스 초코를 고수했더랬다. 자고로 음료는 달아야 한다는 주관도 있었고. 시간이 갈수록 아이스 초코 외에도 티, 스무디 등 다양한 카페 음료가 생기며 '애들 입맛'을 어느 정도는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사회 초년생 때를 생각하면 아이스 초코의 단내가 입안에 감도는 느낌이다.


슬슬 아이스 초코를 졸업하게 된 건 디카페인 커피가 대중화되면서부터인데, 그래도 내 입맛은 카페 모카에 머물렀다. 비슷하게 단맛인 것 같아도 바닐라 라떼나 카라멜 마끼아토는 설탕 단맛이라 한 모금만 마셔도 저절로 물을 찾게 되는데, 카페 모카는 초코 시럽이 들어가서 괜찮았다(한국의 초코 대부분은 설탕인 걸 안다. 엄밀히 따지면 초코'향'이 좋았던 걸까..). 하지만 그것도 점점 물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단맛이 없는 카페라떼로 이동하게 되었다. 최근엔 디카페인 콜드브루 카페라떼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여기에 폭 빠져버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최근에 유제품을 먹지 않게 되면서(글 참고: https://brunch.co.kr/@writerlucy/128) 이 취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라떼를 마시려면 식물성 우유로 변경이 가능한 카페를 찾아야 하는데, 또 오트라떼는 당 수치를 급격히 올린다고 하니 무섭고 내게 남은 선택지는 아몬드 우유 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디카페인'인 '콜드브루 라떼'를 하는데 '아몬드 우유로 변경이 가능'한 카페를 찾아야 했다. 하나의 옵션만 해도 있을까 말까인데 제일 어려운 옵션들로 3개가 겹겹이 쌓여있으니, 이걸 대체 어쩐다.


배달 주문을 하려고 한참 어플을 뒤적이다 급격히 피로해져서 '그냥 디카페인 콜드브루 아메리카노를 마셔보자'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몬드 우유가 제일 큰 장벽이었기 때문에 디카페인 콜드브루 아메리카노를 찾는 건 보다 쉬웠다. 배달 주문을 마치고 나서 '시럽이라도 한번 펌핑해 달라고 했어야 하나'하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마시고 나니 이렇게 개운할 수가! 우유든 오트밀크든 아몬드 우유든 '유'가 들어간 커피에서는 전혀 맛볼 수 없었던, 페퍼민트 티보다 강력한 깔끔함과 씨원함이! 마치 입부터 위장까지 민트 캔디로 코팅한듯한 느낌이 전해졌다. 드디어! 아래 움짤에 나온 기분을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전설의 아메리카노 영업짤. 항상 보며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지.


이제 식사를 마치고 아메리카노로 입을 씻어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스 초코로 부른 배를 더 무겁게 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더 높은 비용을 지불할 필요도 없다. 이제 나의 선택지는 조금 더 넓어졌다 하하! 아쉬운 건 디카페인이다 보니 내가 선호하는 산미 있는 원두의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 디카페인 마시는 사람도 커피 맛 느낄 줄 아는데요. 옵션을 좀 넓혀주시죠 사장님들. 정말 맛있는 아메리카노를 발견한다면 그땐 아예 정착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엣헴, 나도 아메리카노 먹는 사람이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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