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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Nov 04. 2024

덕질이 사랑이냐 묻는 사람들은 보아라.

덕질이 사랑이 아닐 이유가 뭔데.

이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다. 나는 덕후고, 생의 2/3를 덕질을 하며 살아왔으며 구남친 수보다 구최애 수가 훨씬 많다. 현실에 있는 사랑보단 모니터 뒤의 대상을 보며 애 끓이는 게 익숙하고 "덕질이 사랑이냐"는 말엔 이제 콧방귀도 안 뀔 만큼 단단한 덕후란 말씀. 최근엔 작년 말부터 덕질한 최애 관련 이슈가 터졌는데, 사건이 발발하고 일주일 동안 마음고생으로 3킬로가 빠졌다. 이런 덕질에 사랑이 아니라고 할 사람, 어디 나와보시라 이거예요.


사람들은 묻는다. 일개 '팬'이 아닌 '덕후'가 되는 기준이 있냐고. 솔직히 그냥 '팬'으로 존재한 적이 없어 명확히 얘기하기 힘들다. 다만 '일반적으로 저 정도면 좋아한다고 얘기하는구나'하는 지점을 고려해 보면 '덕후의 마음'은 아래와 같달까.


1) 맛있는 거, 좋은 걸 보면 그 사람 생각이 난다.

첫 번째부터 꽤 난감한 내용이죠? 사람들은 맛있는 걸 먹으면 애인이나 부모님을 생각하며 '그 사람이랑 같이 와야지'하며 생각하지만 덕후인 나는 '이거 한 입 먹이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같이 올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하니 같이 먹는 상상은 차치하는데 '먹이고 싶다'는 문장은.. 부모나 보호자 그 비슷한 역할을 자처하는 느낌 아닌가요. 이거 먹으면 스케줄 때문에 그동안 내린 살이라도 오를 텐데, 여태까지 파악한 입맛으로는 분명 얘도 이걸 좋아할 것 같은데.. 하는 미련을 뚝뚝 떨어트리며 음식을 응시하는 건 일상과도 같은 일. 좋은 곳에 가도, 분명 해외투어를 돈 그 사람이 더 많은 걸 보았겠지만 일정 때문에 밖에 나갈 일이 별로 없으니까..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상 생각을 한다. 여기는 이게 예쁘고 저기는 저게 멋있고 이 아름다운 절경 안에 내 최애만 있으면 르누아르 그림 못지않을 텐데 하는 생각은 머글(덕후 입장에서 '일반인'을 일컫는 단어) 앞에서는 입밖에 꺼내지 않는 현명함. 어차피 머글들은 이해 못 한다고!


2) 그 사람의 모든 게 특별하다. 이름까지.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게 특별해 보이는 건 사랑의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가 아닌가 싶은데요.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을 버릇이나 습관, 특이한 곳에 위치한 점 같은 외모적 특징, 말투, 좋아하는 음악이나 장르, 음식 등등.. 다른 사람이었으면 뇌리에도 안 남을 사소한 요소들이 그 사람과 연관되는 순간 머릿속에 반짝이를 달고 날아다니는 느낌이랄까.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바로 이름. 부모님, 조부모님 하다못해 작명소에서 그냥 받아온 이름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이 그 아이에게 가는 순간 꽃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바로 덕후의 소감. 흔한 이름에 특이한 성이 붙으면 붙는 대로, 그냥 흔한 이름이면 흔한 이름대로, 영어 이름이면 또 영어 이름이 주는 느낌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책상을 치며 "어떻게 이름도 000이야!!!!!!!!!" 하는 게 덕후라고요. 


3) 덕질을 하는 건지 롤러코스터를 탄 건지.. 감정기복이 극대화된다.

먼지가 풀풀 날릴 만큼 오래된 짝사랑의 기억을 꺼내보면.. 그 친구의 일거수일투족에 마음이 요동친 기억뿐이다. 지나가다 마주친 눈빛에 컨디션이 하늘을 찍었다가 평소보다 조금 늦은 문자 답장에 펑펑 눈물을 쏟기 일쑤였지. 덕질을 하는 지금은 그때보다 감정기복이 더 가팔라졌다는 게 함정. 인스타에 올라온 사진 하나에 이 세상에 모든 난제와 어려움을 다 해결할듯한 근거 없는 자신감과 활력이 펄펄 솟구치다가도 최애의 이름이 엮인 이슈가 생기면 일상? 그게 뭐예요? 식욕과 수면욕? 파업하겠습니다. 풋풋한 18세의 첫사랑도 아니면서 왜 널뛰기의 높이는 갈수록 높아져만 가는 건지.. 늦은 시간대 약속이나 술자리에선 "이제 나이 먹어서 11시 넘으면 자야 돼"라는 말을 밥 먹듯 했지만 최애 자컨이 뜨거나 이슈가 생기면 새벽 4시까지 흥분해서 잠을 못 자는 게 이게.. 덕후의 마음일까. 


어쩐지 쓰다 보니 응, 나 빼도 박도 못하는 덕후 자체다 인증하는 꼴이라 민망하지만 뭐 어쩌겠어. 사랑이 인간의 의무이자 삶의 의미라면 나는 이런 식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뿐. 최근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한 해외 아티스트의 노래를 들었는데, 갑자기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오고 "와, 미쳤다 진짜"하는 말만 반복하며 그 아티스트가 발매한 모든 앨범을 다 듣느라 몇 시간을 멍 때리며 앉아있었다. 또 다른 덕통사고의 현장이었다. 그 심장 박동을 느낄 때면 덕질의, 덕질에 의해, 덕질을 위한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진심인걸 어째. 이대로 사랑에 몸을 맡겨보는 수밖엔.


제가 새롭게 덕질할 바로 그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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