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Lucy Dec 07. 2023

12월 7일 모닝페이지. 심리학 학사 과정이 끝났다.

학사가 하나 플러스 되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좀 더 큰 의미가.

기상 시간 8시. 조금 피로하다.


어제는 심리학 최종 성적이 나오는 날이었다. 수강신청을 잘못한 탓에 아직 1개 과목의 기말고사가 남아있긴 하지만, 학사 일정이 끝나기까지 채 일주일이 남지 않은 시점이고 어느 정도 성적이 예측되는 부분이 있으니 대강 마무리라고 해도 좋을 법 싶다. 마주한 4개 과목의 평균 점수는 4.25점. 이로써 이제까지 들은 4개 학기의 15개 과목 평균 성적은 4.5점 만점에 3.8점이다.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본 적도 없고 언감생심 탐내 본 적도 없는 점수다.


얏호!


심리학을 공부하게 된 건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었다. 원래 대학 입학 당시에도 심리학과에 관심은 있었으나 '성적 맞춰 대학 가는 시절'에 휩쓸린 나는 일단 대학의 네임 밸류를 먼저 살피고 성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들어간 전공은 일을 하는데 도움은 됐지만 지적 흥미를 유발하기엔 부족했기에 공부에 취미를 갖기가 참 힘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심리학 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교양 콘텐츠를 기웃거리긴 했지만 용기를 못 내다가 작년 초에 갑자기 '배워서 딱히 뭘 할 건 아니더라도 계속 마음만 갖고 있을 바엔 그냥 하자' 싶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알아봤다. 대체로 성인들이 학술적인 공부를 하겠다 마음을 먹으면 대학원을 생각하게 되는데, 심리학은 학사 없인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학사를 따기 위해 학점은행제로 공부를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학점은행제로 수업을 듣는 건 직접 학교에 방문해 수강을 하는 것보다 여러모로 편의성 측면에서 뛰어난 점이 많아 공부를 하는데 별 지장이 없었다. 물론 대학교에서 수강하는 것보다야 강의의 질이나 교수들의 지도법, 다루는 내용에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 심리학을 좀 제대로 알아보고 싶은데' 정도의 욕구를 가진 사람에게는 적절할 법한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학사인만큼 특정 내용을 전문적으로 파고들어 헤집어 보기보다는 구성 요소를 소개하는 정도로 그칠 때가 많았는데 그럴 땐 아쉬운 마음에 교수님들이 추천해 준 책을 읽는다든지, 영화를 본다든지, 지식백과에 검색을 하는 식으로 빈 공간을 채워 나갔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내 욕구와 호기심이 생각보다 엄청 깊고 컸다는 것이었다. 당시 새 회사로 이직을 한 상태라 회사에 적응하며 한 학기에 3개씩 신청한 강의를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시간이 부족하면 출퇴근 시간에도 강의를 들었고 약속에 나가면서도 강의를 들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도 문헌을 찾아보다가 게시판에 질문을 남겼고, 최근에는 교안에 쓰인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아 영문 논문을 직접 찾아보고 오류를 건의해 교안 수정이 되도록 한 적도 있었다. 시험기간이 되면 꼬박꼬박 독서실에 가서 몇 번씩 회독을 하며 공부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려 했고, 엄마를 앞에 앉혀놓고 공부한 내용을 술술 얘기하는 나 자신에게 놀란 적도 있었다(!). 단순히 '기억하기 위해' 한 공부가 아니라 '알고 싶어서' 한 공부라 그런가, 욕심이 났고 욕심이 난만큼 하려고 한 의지가 강했던 것이다.


'열띤 학구열'이라는 표현이 나를 좀 띵하게 만들었다. 나 열정이 있었구나!


이렇게 완성된 성적표니 그 의미는 새삼 남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내 의지로 공부할 분야를 선택했고, 거기에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니 그것만큼 값진 리워드가 어디 있을까.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에 대한 위로를 받은 적도 많고 공부 전 생각한 만큼 쉽게 접근할만한 학문이 아니라는 것도 배웠다. 사실 마음 같으면 심리학 대학원에 진학하여 학술 연구를 진행하고 나 또한 나에게 영감을 준 여러 이론가들처럼 멋진, 사람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상담방법이나 이론을 창시하고 싶지만 또 어떤 길로 가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번 경험이 나에게 알려준 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그런 경험들이 나 자신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려주며 세상을 보는 폭의 깊이 또한 더해준다는 것. 다음은 무엇이 될까, 설레고 설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