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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Dec 11. 2023

12월 11일 모닝페이지. 뭉근하게 끓는 것 역시 열정

열정이라는 이상화된 무언가의 편견 부시기.

기상 시간 8시. 새로운 한 주의 시작이다!


매일 아침 기상 직후에 모닝페이지를 쓰는 것도 슬슬 루틴이 되어가고 있다. 비록 온전히 가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무엇이라도 꾸준히 표현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언젠가 멋을 내지 않아도 멋이 흐르는 사람처럼 자연스러워질 것이라 기대하고, 기대만큼 노력도 하고 있다.


나는 매해 연말이 되면 주변 지인들에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사와 새해 응원을 담은 편지를 써서 전달해 주곤 하는데, 그 대상이 되는 사람 중 한 언니에게는 매해 편지마다 '성실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언니는 처음 정규직으로 입사한 회사에서 만났는데, 내가 이후 5개 정도의 회사를 껑충껑충 뛰어다니듯 이직할 때 그 자리에서 꾸준히 일하며 지금은 팀 내 실질적(?)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과장직을 맡고 있다. 물론 회사라는 것이 일단 견디고 버티다 보면 직급도 오르고 한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언니가 맡고 있는 업무의 양과 노동 강도를 생각할 때 언니의 6년은 남들의 20년 정도 된다고 볼 수 있겠다. 이미 해당 업무를 해본 경험자로서 그게 얼마나 힘들고 열받고 지치고 나 자신이 소모되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 언니의 시간은 '성실함' 이외에는 표현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에는 그런 오랜 노력과 정진이 단순히(?) '성실'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엔 너무 크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키워드가 바로 '에너지'였는데 이 에너지는 사실상 나에겐 열정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어렸을 적엔 열정이라는 것이 그저 한순간 불타오르고 사그라지는 불사조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영화 '위플래쉬'에 나온 마지막 공연 장면과 같은, 온전한 몰입을 통해 내 안의 것을 '나'라는 주체의 경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표현하고 박수갈채와 소진으로 그 끝을 알 수 있는 것, 그런 게 열정이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인생은 그렇게 한 장면으로 끝날만큼 짧지 않고 우리에겐 그 이전과 그 이후가 있다. 어쩌면 나는 그 마지막 장면에 너무 깊은 인상을 받은 나머지 그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주인공이 고군분투한 2시간가량의 앞 장면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진짜 열정은 그 모든 준비과정'부터' 존재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듯한 장면을 보여준...


그 언니에겐 그 열정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니에겐 위플래쉬의 마지막 장면처럼 본인이 쌓아온 모든 걸 표출하고 궁극의 물아일체를 느끼는 그 장면이 인생에 있을지 모르겠다.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언니가 하루하루를 쌓아가며 만들어가는 그 모든 과정에, 모든 삶의 장면에 열정이 배어있다. 쿰쿰한 땀냄새와 아이디어를 고민하느라 쥐가 나는 머리로 표현되지 않아도 열정은 거기에 있다. 그 열정은 중화식당의 불처럼 강렬하게 타오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인덕션에 올린 냄비의 물처럼 뭉근하게 끓을지도 모르지만 불은 여전히 거기에 있다. 그 열정이 참 멋지고 대단하다. 나의 열정 또한 그처럼 존재하길 바라며 오늘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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