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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17. 2024

13화. 참고 사는 것과 배려하는 것

어차피 같이 살아야 한다면

사람은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견디고 배려하며 살아야 한다. 회사에서 만난 관계에서 잠깐, 대중교통을 같이 탄 사람들에게 잠깐일 때도 있겠지만 같이 사는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은 더욱 늘어나고 정도 또한 깊어진다. 1인 가구가 점점 더 늘어나는 시대라지만 부부로, 부모 자식 관계로 혹은 친구나 직장 동료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아직 존재하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생활 안의 분쟁은 끊임이 없다. 옛말에 부부는 결혼하면 치약을 짜는 방향으로도 싸움이 난다던데 그 말이 과장이 아니다. 하물며 평생을 같이 살아온 가족 사이에도 서로 이해 못 할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엄마아빠의 집 방 한 칸에 세 들어사는 일원으로 기본적인 원칙은 엄마아빠가 정해놓은 틀을 따르지만 그중엔 분명히 참아내야 하는 것과 배려할 수 있는 것들이 구분되어 존재한다. 여기에서 '참아내야 하는 것'과 '배려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개인적으로 정의해 보자면 '상대의 독립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나에게 피해를 주느냐 주지 않느냐'로 갈린다. 우리 모두는 독립적인 개인이고 내가 엄마아빠의 자식임에도 그들이 이해 못 할 부분이 있는 것처럼 부모 또한 그런 개인 중 한명일뿐이다. 그들의 자유와 개성을 존중하지만 그게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나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참아내야 하는 것'이 되고 그 강도가 심해지면 한 번씩 충돌이 일어난다.


먼저 배려하는 것을 말해볼까. 배려하는 것은 굉장히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나 혼자 일찍 일어난 휴일이면 돌아다니거나 아침을 차릴 때 최대한 조심스럽고 조용히 사부작거리는 것, 늦게 귀가한 날이면 최대한 빠르고 조용히 씻고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것, 엄마아빠가 티비를 독점하고 있을 때는 그 앞에서 얼쩡거리지 않는 것, 엄마가 바쁠 땐 눈치껏 아빠의 식사를 챙기는 것, 웬만하면 겨울철엔 빨래를 많이 내놓지 않는 것, 장 볼 땐 엄마아빠가 좋아할 뭐 하나라도 끼워 넣는 것 등. 부모님도 나를 배려하는 부분이 있다. 현관과 화장실 바로 앞에 위치한 내 방을 고려해 출근 시에 문을 세게 닫지 않는 것, 다른 자식들에 관한 이야기는 둘이 식탁에 앉아있을 때만 하는 것, 나 몰래 내 방의 보일러를 올리고 가는 것, 평일 점심은 내 식사 시간대를 맞춰주는 것 등.


문제는 참아내야 하는 것에서 발발한다. 최근 내가 참아내야 했던 것들을 세 개만 꼽아보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밤 12시까지 넷플릭스 보는 소음 견디기, 같이 화장실 쓰면서 자꾸 물 내리는 걸 깜빡하는 것 참기, 고기를 선호하지 않는 엄마의 식단 따르기. 첫 번째는 '내가 덕질하는 거 좋아하는 만큼 아빠도 하루 종일 저 시간을 기다렸을 수도 있다'며 마음 수련 중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아니기에 문은 적당한 세기로 닫아줌. 두 번째는 3번을 참다가 오늘 오전에 "제발 부탁하는데!!!" 하면서 이야기했다. 당분간은 이런 일이 없길. 세 번째는 간헐적으로 투쟁 중이다. 이럴 때 제일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고기를 사 오는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적인 방법으로 해결 중이다.


부모님도 나에 대해 참아내야 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어렸을 때부터 저혈압 기질 때문인지 그냥 성격상의 문제인 건지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다. 잠에서 제대로 깨기까지 한 3시간 정도는 혼자 있으면 하는 게 내 소망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서 괜히 옆에 있는 엄마아빠가 불똥을 맞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PMS도 바이오리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 요즘도 엄마는 내가 갑자기 기분이 침체되어 있을 때 "혹시 생리 시작했어?"를 먼저 묻는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감정의 간극 사이를 조금씩 좁혀가고 있다만 엄마아빠도 딸의 성정을 받아들이기 버거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살아가며 부딪힐 때 우리는 상대의 다름을 탓하기 쉬워한다. 하지만 다름은 잘못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서로를 조율하며 살아갈지다. 나도 한때는 유난히 몸이 아파 일찍 잠들고 싶었던 날, 거실에서 티비를 보고 있는 아빠에게 소리를 줄여달라는 말 한 번을 상냥하게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그냥 나가서 "소리 좀 줄여주세요" 한 마디 하면 될 것을 독립할 수 없어서, 이런 상황을 견뎌야 하는 나 자신에 대한 분노로 괜한 이불에 성을 풀며 밤을 보냈던 때도 있었다. 같이 안 살면 마음이야 편할 것이고, 제멋대로 할 수 있겠지만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세련된 태도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 또한 우리가 살면서 반드시 배워나가야 할 무언가라고 보인다. 어차피 혼자 살 수 없는 인생, 다른 사람과 끊임없는 관계 속에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라면 이런 것들은 제대로 배우는 게 여러모로 좋겠지. 아, 그렇다고 독립을 포기했다는 건 아닙니다. 하하.


*일상의 한 장면

-한 낮

나: (열심히 겨울 카펫이랑 소파 청소 중)

-그날 저녁

아빠: (카펫이랑 소파 위에서 부스러기 다 흘리며 견과류 먹는 중)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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