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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24. 2024

14화. 미니멀리스트 가족.. 일까?

그냥 미니멀리스트 말고 쓰레기 미니멀리스트.

아빠, 엄마, 나. 단출한 3인 식구라지만 매일을 먹고 마시고 쓰고 버리는 인간이다 보니 생활 쓰레기야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양을 이야기해 보면 다들 놀랄지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재활용, 일반 쓰레기를 정리해 버리는 양이 보통 치킨 봉투 하나 분량이다. 박스 분량이 아니고요, 봉투 하나 분량이요.


쟈쟌.

어떤 분은 이걸 보고도 '많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재활용 수거일마다 다른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 양을 힐끔힐끔 보면 우리 집은 상당히 적은 편인 것 같다. 매번 이 정도를 내보내는 것은 아니다. 주로 소비가 이루어지는 부분은 식료품으로, 엄마는 한 달에 한번 크게 장을 본 후 정리해 둔 식재료로 한 달간을 살기 때문에 식료품 쇼핑이 있는 날은 야채가 담겼던 플라스틱, 과일이 담겼던 스티로폼 포장지 등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하지만 그럴 때가 아니면 대체로 봉투 1개 분량 정도 쓰레기가 나오는 편이며 나는 이것에 약간의 자부심과 약간의 책임감을 느낀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가?를 물으신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그러려고 글을 쓴 거니까요. 자, 비기를 풀어볼까.


1. 뭘 안 사요. 아 그냥 안 사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 집의 소비품목의 90% 이상은 식료품이 차지하고 있다. 먹을 것에 미친 사람들이냐 물으시겠지만 그것도 아닌 것이.. 매일 먹는 반찬은 거기서 거기이기 때문이다. 식료품이 소비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지출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옷? 안 사요. 화장품? 안 사요. 운동기구? 안 사요. 인테리어? 안 해요. 엄마아빠의 취미와 취향은 일관되게 흘러왔고 그 기간 동안 필요한 것들은 이미 다 샀다. 나는 미니멀리즘인지 결벽증인지 모를 것으로 최대한 소지품을 늘리지 않는 것이 내 기쁨이고 안정이다. 새롭게 구매하는 품목이 없다 보니 쓰레기가 안 나오는 거야 당연지사.


2. 택배요? 안 시켜요. 시킬 일이 없어요.

뭘 새롭게 사지 않다 보니 택배를 시킬 일도 전무하다. 모든 것이 배달되는 이 시대에 쇼핑으로 택배를 시키는 일이 1년에 많아봐야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다고 하면 믿으실까. 뭘 사더라도 눈으로 직접 보고 사는 걸 선호하는 아날로그 타입이기도 하고, 택배박스에 숨어 이동한다는 벌레들도 극혐이다. 그렇다면 새벽 배송은요? 줄 서야 먹을 수 있다는 맛집의 인기 메뉴를 고스란히 담은 레토르트 식품들, 바로 따서 신선하다는 과일들 모두 매력적이지만 '굳이' 싶은 마음이다. 무거운 제품들은 차가 있으니 싣고 나르면 되고, 멀쩡한 두 팔과 두 다리로 장 볼 수 있는 사람이니 직접 나가면 되겠다 싶기도 하다. 최근에는 오프라인 매장보다 온라인에서 훨씬 싼 것들은 가격비교를 해보고 쓰레기가 최대한 덜 나오는 새벽배송으로 주문하긴 한다만 여전히 오프라인 쇼핑 위주로 한다.


3. 배달 음식? 시킬 때야 시키지만...

먹을 것에 쓰는 돈이 많다고 했으니 배달음식은 어떨까. 물론 시킨다. 주로 주체가 되는 사람은 나인데, 생리전후로 배달음식이 미친 듯이 땡길 때는 하루에 두 번씩도 배달을 주문한다. 그렇게 하고 한 2~3주가량은 배달을 안 시키는 패턴. 그렇게 따지면 1개월에 배달음식을 주문하는 횟수는 많아야 최대 3번 정도 된다. 물론 이건 직접 요리를 하고, 배달음식의 맛에 납득하지 못하는 엄마가 집에 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주문을 할 때도 쓰레기를 줄이려는 작정보다 취향 따라 주문하다 보면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메뉴들 위주로 고르게 된다. 반찬용기가 많이 나오는 족발, 보쌈, 회보다는 박스 하나와 피클 용기 정도 나오는 피자, 종이 포장으로 감싸진 햄버거 정도.


4. 혹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은 거 아닌가요?

아빠야 회사 근무로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적지만 엄마와 나는 완전한 집순이다. 가끔 집밥 먹는 게 지겨워 외식도 하고 밖에서 음식도 사다 먹긴 한다만 깨어있는 시간의 80% 이상을 집에 있는 철저한 집순이기에.. 전기세랑 난방비는 꼬박꼬박 나옵니다.


그나마 주기적으로 나오는 쓰레기는 아빠가 아침 대용으로 먹는 베지밀의 멸균팩, 휴지, 비닐 포장재 정도다. 가끔 쓰레기양을 보거나 우리의 소비 패턴을 보며 "세상에 우리 같은 사람들만 있었으면 지구 온난화를 30년 정도는 미룰 수 있었을 텐데"하다가도 "그럼 경제가 망했을 것 같긴 해"하며 엄마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이런 사람이 있고 저런 사람이 있고, 남들이 쓰는 만큼 누군가 안 쓴다면 총량은 줄어드니 나름 긍정적인 방향이 아닐까. 작정하고 쓰레기를 줄 여보자하는 마음보다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것에 집중하되 최대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방향이면 좋지 않을까 하며 살아온 것 같다. 때때로 보면 미니멀리즘을 실천하겠다고 무색의 수납함을 사거나 벽을 도배하거나 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내가 먹고 마시고 취한 흔적을 최대한 적게 만드는 것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미니멀리즘의 형태가 아닐까 싶다. 이상 '쓰레기' 미니멀리스트의 실천 방법들과 소심한 주장이었습니다.


*일상의 한 장면

나: (쓰레기를 보며) 근데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사나?

엄마: 글쎄, 근데 엄마가 봐도 가끔 좀 심할 때가 있긴 해.

나: 남들 그렇게 산다고 우리까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엄마: 맞아, 그렇긴 한데....

나:..... 심하긴 해.

엄마: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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