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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Feb 07. 2024

16화. 나도 아빠 딸은 처음이야

이런 부녀 관계도 있습니다.

이제껏 캥거루족을 소재로 많은 글들을 써왔지만 아빠를 전면에 내세운 글은 이번이 처음이다. 장문의 글 중 콕콕 박혀있는 '엄마아빠' 혹은 '부모님'이라는 표현이 없었다면 한부모 가정이나 이혼 가정으로 착각할만큼 아빠의 언급이 적었던 것은 실제로 아빠와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아빠와 가깝지 않다'는 말은 그 말을 꺼낸 나 자신은 정작 상관 없지만 듣는 이로 하여금 약간 눈치를 보게 만드는 말이기도 했다. 홍시에서 홍시맛이 난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아빠랑 친하지 않아서 친하지 않다고 말한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 당황할 일인가? 싶다. 방송에서나 온라인 상에서 정말 친구처럼 아빠와 장난도 치고 데이트도 하고 카톡도 하는 딸들을 많이 봐왔다만 일단 나는 해당이 안된다. 우리 아빠 또한 딸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하는 아빠는 아니다.(나는 아직도 아빠에게 존댓말을 쓴다) 또, 언니는 아빠와 성격이 닮아 통하는 구석이 있을지 몰라도 엄마를 닮은 나는 아빠와 물과 기름처럼 붕 뜨는 구석이 있어서 서로 그리 편하게 대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아빠는 순간순간 변하는 내 기분을 감지하지 못하고, 나는 아빠의 무사태평함과 말로 꺼내지 않은 수많은 생각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 벌어진 서로간의 이해는 30년간 두텁게 벽으로 만들어져 현재도 서로의 속마음을 거의 알지 못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런 사이를 보고 '그게 무슨 가족이냐', '그게 무슨 부녀 사이냐'하며 아빠와 내 사이를 의심하겠지만 사실 우리 사이는 아주 평탄하고 고요하다. 연인이나 친구 관계도 서로 이야기를 많이하고 자신의 것을 공유해야 서로 화도 내고 친해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하겠지만 그 최소한의 이야기도 하지 않는 관계는 일정한 평행선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집에 살지만 엄마를 매개로 서로에게 벌어지는 굵직한 일상들만 공유될 뿐이고, 그에 대한 언급은 가끔 있는 식사자리나 마주칠 때 "~~했다며?" 혹은 "아빠 ~~하셨다면서요?"라는 짧은 문장으로 구체화되었다가 금새 증발될 뿐이다. 이게 정말 사이가 안 좋은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아빠에게 반발감이나 미운 감정이 있느냐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예전에 엄마가 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아빠가 우리를 키우는 중간에 그런 말을 했단다. 본인은 딸을 키워본 게 처음이라 아직도 언니나 나를 대하는 게 어렵다고.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좀 어이가 없었다. 누구는 딸 키우는 예행연습이라도 하고, 딸을 한 100명 키워봐서 잘 키우나. 잘 모르고 매 순간이 당황스럽고 지난해도 노력으로 커버해야하는 게 부모 아니야?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들고, 나와 함께 나이들어가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 아빠가 겪었을 그 막막함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아무리 부모라도 지금 내 나이에 두 딸을 키워내야하는 입장이었으면 나라도 힘들었을 거다.


그리고 드러내지 않아도, 아빠가 나를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알아서 전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때 야근이 끝나고 집 근처로 걸어오고 있는데, 그 시간에 나와있을 일이 없었던 아빠가 현관에 서있었다. 왜 나와계시냐 물으니 내 마중을 나와있다고 해서 웃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엄마한테 물어보니 요즘 회사일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아빠가 걱정이 되서 나온것 같다고. 그 땐 너무 충격받아서(우리 아빠가 마중을? 우리 아빠가 마중을?? 우리 아빠가 마중을???) 일기에도 쓰고 감동해서 행복상자에까지 적어두었다. '아빠가 내 마중을 나왔다'. 생각해보면 어버이날 잘 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해준것도 아빠고, 지금처럼 회사를 관두고 꿈과 현실에 대해 고뇌할 때마다 그 시간을 모두 이해해주고 엄마에게 나를 다그치지말라며 배려해준 것도 아빠였다. 오죽하면 내가 엄마에게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엄마인데 정작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건 아빠다'라고 말할 정도니.


티비에서 다정한 딸과 아빠의 모습을 보면 지금이라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아빠에게 살갑게 말이라도 한번 더 걸고, 괜히 걸어갈 때 팔짱이라도 껴야하나 고민이 들지만 생각만해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등에서 식은 땀이 삐죽삐죽 솟아오른다. 어쩌면 아빠도 말은 안해도 딸이 그렇게 먼저 다가와주길 바라고 있는지도.. 아빠와 이런 부분에 대해선 전혀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대체 내가 아빠에 대해 아는 건 얼마나 될까. 나도 아빠 딸이 처음이라 이리 어색한 부분이 많다 변명해보려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궁색하다. 오늘 퇴근하고 들어오는 아빠에게 인사와 더불어 다른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볼까. 아니면 그저 서로를 적당히 이해하는 지금 선에서 우리는 계속 살아갈까.

아빠랑 관련된 사진을 올리고 싶었는데 사진이 1도 없다 세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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