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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Lucy Jan 31. 2024

15화. 지금 누가 골골 소리를 내었는가?

일단 소자는 아니옵고.. 엄마아빠가 범인인 듯하옵니다.

큰일 났다. 1월 초부터 엄마의 발목을 잡았던 기침 몸살이 떨어질 생각을 안 하더니 오늘은 아빠가 창백한 몰골로 늦장 출근을 했다. 요즘 바이러스가 워낙 강해 쉽사리 몸에서 방을 빼진 않는다지만 셋 중에 둘이 쓰러지다니, 독수리 1호, 독수리 1호를 발령합니다.


아빠, 엄마는 타고난 신체가 건강한 체질은 아니지만 그 나이 또래에 비해서는 잔잔바리로 염증에 시달리는 일도, 약을 달고 살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물론 아빠는 몇 년 전 크게 아픈 적이 있지만 완치 후에는 별 무리 없이 잘 지내왔..지만 매해 간절기마다 꼭! 엄마가 이불 빨래를 한 직후에 감기 몸살이 와서 엄마를 성나게 했다. 대체로 아빠의 감기 몸살은 처음에 코가 맹맹한 단계(이때 아빠에게 "엇.. 뭔가 오고 있는데.." 하면 코를 킁하고 아니라고 부정한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로 시작해서 그다음 날엔 빠른 퇴근으로 몸살이 왔음을 알린다. 온수 매트의 온도를 뜨끈하게 높여놓고 쌍화탕과 감기약을 건네주면 평소 밤 11시까지 넷플릭스를 보던 아빠도 9시 반이면 순순히 침대에 눕고, 나머지 사람들은 고요 속에 아빠의 회복을 기다린다. 대체로 3~4일 정도면 사그라들 몸살이지만 횟수가 반복될수록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보기엔 몸을 움직이는 일이 거의 없으니 조금이라도 운동을 해서 몸을 덥히면 면역력이 한층 올라갈 텐데. 저 무거운 엉덩이를 어떻게 들썩거리게 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다.


엄마는 타입이 좀 다르다. 예민한 성정이지만 워낙 부지런하고 몸을 자주 움직인 덕분에 면역력은 굳건해 흔한 감기도 앓는 일이 뜸했다. 1년에 자발적으로 침대에 누울 만큼 아픈 적도 손에 꼽으니. 하지만 이번 감기는 뭔가 달랐다. 정확히 감기인지 무엇인지 모를 이놈은 엄마를 3일간 정신이 아득하게끔 앓게 만들었고, 2일은 눈이 엄청나게 충혈되고 눈곱이 눈을 못 뜰 정도로 나게 만들었으며, 나머지 20일간은 지독한 기침으로 엄마의 영혼마저 흔들어놓았다. 옆에서 보며 너무 답답한 마음에 검색을 해봤더니 요즘 유행하는 '아데노 바이러스'와 증상이 거의 유사했는데, 병원에서도 감기 증상에 쓰이는 항생제와 결막염에 쓰는 안약을 처방해 준다고 해서 집에 있던 안약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이후로도 기침날 때마다 마시라고 옥수수차도 뜨끈하게 끓여보고, 비타민 C를 섭취해야 한다며 귤을 몇 박스로 사다 나르고, 아빠와 번갈아가며 국밥을 사다 먹이고 면역력 향상과 기침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도 사보고, 도라지와 배를 그대로 담았다는 농축액도 먹여보고, 소식을 들은 언니 역시 기침에 좋다는 환을 택배로 보내왔지만.. 기침의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 뿐 예전처럼 드라마틱하게 낫지 않아 이 역시 고민이다.


자식이 나이 들면서 가장 속상할 때가 '나만 나이 드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부모님이 훨씬 나이가 든 것을 실감할 때'라고 하는데 요즘이 딱 그 짝이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아빠, 엄마는 혈기가 펄펄 끓는 꽃중년은 아니더라도 어디 가서 픽픽 쓰러지는 게 걱정될 사람들은 아니었는데. 아빠의 리모컨이 '생로병사의 비밀'을 향하고 엄마가 창고에 박혀있던 원적외선 기기를 꺼내와 이곳저곳 마사지하는 걸 발견할 때마다 괜한 분노와 유치한 치기가 울컥 올라온다. 100세 시대라며. 누구나 건강할 수 있는 장수시대처럼 이야기하면서 왜 60% 밖에 안 쓴 몸이 이렇게 고장 나고 삐걱거려야 하는데. 애초 우리 몸은 30대 후반까지 사는 것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소화 능력과 관절이 예전 같지 않을 때는 입에 잘도 올렸던 이야기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면 잇몸에도 닿고 싶지 않은 이야기다.


엄마, 아빠도, 특히 엄마 역시 이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한다. 엄마가 요즘 제일 성질을 부릴 때는 '내 몸이 왜 예전 같지 않지'를 스스로 실감할 때다. 손에 힘이 없어져서 자꾸 무언가를 떨어뜨리고, 시력이 나빠져 무얼 볼 때마다 2개의 안경을 번갈아 껴야 하고, 기억해야 할 것을 잊지 않으려면 눈에 띄는 곳에 적어야 하는 한결 번거로워진 일상이 엄마를 자꾸 화나게 한다. 나 역시 말로는 "근데 어쩔 수 없잖아"하며 엄마의 손발을 자처하지만 마음 한켠이 빠듯하게 조여 온다. 아픈 것도 분명 마음 쓰이는 일이지만 그런 상황을 겪는 게 엄마 역시 처음일 텐데, 스스로 속상함을 삭이는 게 더 목을 막히게 하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걸 나도 알지만, 어쩔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안방에서 들려오는 아빠의 몸살과 엄마의 기침이 만드는 골골 소리의 하모니를 들으며 착잡한 마음을 애써 접어본다. 적어도 곁에서 뭐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지금의 처지를 감사하게 여기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지. 몸살기도 기침도 언제까지나 이어지지 않을 거라는 걸, 아빠 엄마는 아직 그렇게 나이 들지 않았다는 걸 계속 이야기해 줘야지. 그깟 바이러스 따위 이전처럼 얼큰한 국물이면, 시원한 목욕이면 한 번에 나아질 수 있는 거라고, 아직 그럴 수 있다고 이야기해 줘야지. 내일은 좀 나아지길 바라며 엄마아빠 몰래 기도를 해본다.


맵싹한 거 먹고 빨리 나으라고 엄마가 소원한 만두전골도 먹었다. 제발 빨리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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