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shut down

in the air

by songsari

종종 공항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될 때가 있다. 이번 여행이 그러했다.

왜 영어 번역본으로 샀을까.

인천국제공항 입구로 들어서면 대각선으로 바로 보이는 작은 북스토어가 설레는 여행의 시작이다. 벽면에는 여행 가이드북이 세계곳곳을 여행하고 있고 내 여정의 행선지에 따라 집어 들고 한참을 들여보다 체크인에 나선다. 단일한 국가로 집필된 책이 아닌 스칸디나비아 3개국이 묶인 '떠나자! 북유럽 여행'의 첫 도시 코펜하겐 페이지를 정독하고 한층 자신감 넘치게 정보력을 획득했다.

장거리를 여행할 때면 항상 책 한 권을 챙겨, 괜스레 수하물 무게를 보태곤 한다. 올해는 빈 손으로 공항에 들어서 섰다가 북스토어 진열대에서 마음을 뺏긴 한강 작가의 ‘흰 ‘이라는 책과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비행에 대해

이제는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이 익숙해졌다. 2017년 보스턴행으로 13시간에 걸친 나의 첫 장거리 비행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혼자 하는 비행이라 설렘, 긴장, 흥분이 뒤섞여 매 순간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고 기내식에 감탄하며 혼자 기내에서 식사를 하는 뿌듯함에 취했던 기억이다. 소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들이 가득하다.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체인으로 된 가방 끈이 좌석에 끼여 승무원들이 좌석을 거의 분해해 주어 가방을 꺼냈던 기억. 로마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옆좌석의 중국인이 노란 종이에 빨간 잉크로 10시간 내내 알 수 없는 문자를 써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옆에서 흘깃거리며 잠도 못 자게 두려웠던 적도 있었다.

팩맨도 재밌어요.

랜딩 시작부터 위스키, 와인, 맥주로 끊임없는 음주 비행을 한 적도 있다. 몇 년 전에는 영화 ‘듄’에 꽂혀서 그것만 비행 내내 시청하다가 내리기도 하고 가장 최근 네덜란드에서 돌아올 때는 테트리스에 꽂혀 12시간 내내 테트리스 게임을 하며 탑 랭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난기류가 잦은 비행에서 멀미로 고생한 적도 있고 이유 모를 공포감에 휩싸여 긴 시간 괴로운 적도 있었다. 항상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을 빠르게 소비하기 위해 엔터테인먼트를 찾거나 비행이라는 행위를 잊기 위한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이번 비행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상을 벗어나 강제로, 어쩔 도리가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심지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나에게 비행과 여행은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압박, 매일의 루틴을 수행해야 하고 사람은 조금씩이나마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몸과 마음의 휴가는 언제나처럼 비행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미국행 비행기를 타면 항상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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