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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Dec 17. 2021

나는 일본의 신입 스포츠마케터

1회 말_구단 관계자가 되어가는 과정

입사식을 마치고 인사부에서 진행하는 각종 서류와 제도의 설명, 사내 시스템의 오리엔테이션으로 일주일이 지나고 본격적인 신입사원 연수가 시작되었다. 내가 입사한 다음 기수부터는 그룹 전체 신입사원 합숙연수에도 일부 참여했는데, 약 10여 년 만에 신입사원 공채를 재개했던 윗 기수와 우리 기수는 후쿠오카 시내의 다양한 기업들이 함께하는 신입사원연수에 원데이 클래스처럼 참여하였다. 미디어에서 접하거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한국은 채용과정에서 합숙을 하기도 하고 입사 후 연수도 프로그램이 다양하고 길게 합숙을 한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구단 업무 자체가 현장 중심이기도 하고, 시즌이 막 시작한 시기여서 일본의 사회인으로서 반드시 익혀야 할 비즈니스 매너만 배우고 바로 현장에서 연수를 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교환학생으로, 대학원생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조금이나마 일하는 일본 사회에 대해 경험할 수는 있었지만 본격적인 사회인으로서의 첫 발을 떼려니 일단 언어도 걱정이 되었고 흔히 혼네와 타테마에라고 알려진 일본인 특유의 커뮤니케이션(예를 들면 사내정치나 이지메 같은?)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컸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동기들과 함께 비즈니스 매너를 주제로 한 외부 연수로 향했다. 다행히도 우리와 비슷한 얼굴을 한 신입사원들이 가득했고 강사님은 우리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신 듯 불안함과 궁금함이 가득한 4월의 신입사원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비즈니스 퍼슨으로 익혀야 할 기본예절도 친절히 알려주셨다.


연수를 하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역시 매뉴얼의 나라라고 불리는 일본의 비즈니스 매너. 언어적 특성으로 자신을 낮추거나 상대방을 높이거나 혹은 상황을 친절히 설명하는 표현을 익히는 것은 물론이고 상황마다 다양하게 사용되는 어휘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되는 작은 매너들이 굉장히 자세했다. 예를 들면, 업무로 외국 관계자들을 만나 처음 인사를 나눌 때 서로 명함을 건네받게 되는데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명함지갑에서 명함을 꺼내어 주시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연수에서 배우기로는 명함은 각자의 얼굴임으로 내 것은 물론이고 상대방의 명함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명함지갑을 꼭 소지하고 거기에 깨끗하게 보관을 해야 한다고 한다. 건네 줄 때도 내 얼굴을 건네는 것이기 때문에 브랜드 로고가 보이지 않는 명함지갑의 뒷면에 명함을 올리고(강사님 표현으로는 쟁반이라고 하셨다.) 예의를 갖추어 건네고 받는 것 또한 예의를 갖추어 두 손으로 받아 다시 명함지갑 위에 올려 두는 것이 매너라고 한다. 물론 명함을 다루는 예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받은 명함은 바로 명함지갑에 넣으면 안 되고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테이블 위에 명함지갑 위에 올린 명함을 계속 두면서 상대방의 이름을 실례가 안 되게 정확히 말하고 얼굴을 익히는 것이 매너라고 한다. 만약에 상대가 여러 명이라면 조금 복잡해지는데 그 경우에는 직급이 높은 사람을 명함지갑 뒷면인 '쟁반' 위에 올리고 나머지는 어쩔 수 없이 땅바닥이 되는 테이블 위에 올려두면 된다.


이러한 얘기를 한국의 지인들에게 하니 거의 대부분 ‘피곤하게 뭘 그렇게까지...?!’하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게도 충격적인 J-예절은 도쿄 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에서 등장해 유행어가 된 ‘오모테나시’라는 일본식의 환대 방식이자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이 아닌가 싶다. 회사가 있던 지역인 규슈가 일본에서도 지방에 속하고 보수적인 문화(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남존여비가 심한 지역이라고 종종 이야기를 들었다.)가 강한 곳이라 연수내용이 일본의 보통보다 조금 더 엄격한 수준이었을 수도 있는데 이런 사소한 것을 시작으로 택시나 회의실에서의 좌석배치, 전화받는 방법, 메모를 작성하는 방법, 손님이 왔을 때 대응하는 방법, 보고/연락/상담(일본어로 각 단어의 앞 글자를 따면 호/렌/소라고 하는데 이는 일본어로 시금치라는 뜻이다.) 하는 방법 등 신입사원들이 회사에서 큰 문제없이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룰을 가르쳐 주시는 것 같았다. 다양한 장면을 롤플레이로 직접 해보면서 실전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게 연습시켜 주셨는데 인사와 명함 교환은 여러 번 해도 어려워서 나중에 진행된 영업본부 연수 때 선배들을 따라다니면서 많이 하니 조금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어 초보 티를 가까스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 기초 연수를 마치고 바로 회사 내의 각 부서 연수에 투입되었다. 우리 구단은 NPB 12 구단 중 가장 큰 규모의 조직이었는데 입사 당시는 정직원이 약 200명 정도로 퇴사할 무렵에는 280명 정도로 많이 늘어났다. 사원수가 많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구단이 구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자세히 하자면 매우 길어지는데 간단히 말하면 한국과 달리 일본은 민간기업이 구장을 소유 및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이 제도상 다양하고 그 권리 또한 각 구단과 각 구장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행사되고 있는데 우리 구단은 깔끔하게 구단이 구장을 소유하게 되면서 구단을 운영하는 회사와 구장을 운영하는 회사가 합쳐져 다른 구단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부분은 스타디움을 좋아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나에겐 매우 큰 매력이었고 회사에 입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나중에 그만큼 해야 할 일도 많았다는 것을 크게 느끼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스포츠마케팅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이 구단과 구장을 한 조직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조직에서의 연수는 구단과 구장을 운영하는 각 부서를 돌아가며 직접 현장에서 선배들과 일을 하며 때로는 아르바이트 스태프와 함께 하며 회사가 하는 다양한 사업들과 그 접점에서 고객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보이고 어떻게 느끼는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었다. 평소에 호기심이 많고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스타디움의 다양한 곳에서 일을 할 수 있어 개인적으로는 매우 즐겁고 배운 것도 많은 연수였다. 나중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후배들에게 입사하고 가장 즐거웠던 시간이 그 때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첫 주는 회사의 수입을 책임지는 매우 중요한 부서인 영업본부의 각 부서를 돌았는데, 작게는 시즌티켓이라고 불리는 정규시즌 연간회원권부터 크게는 펜스나 돔 내부의 다양한 간판광고 계약을 책임지는 곳이다.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지역 내 방송국, 전국적으로 유명한 대기업, 지역 중소기업, 지자체 등 다양한 곳을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후쿠오카 시내 지리도 잘 모르고 규슈라는 지역을 잘 알지 못해서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듣는 이야기나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었다. 일주일 동안 함께 다양한 고객들을 직접 만나며 지역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 팀인지, 이 브랜드의 힘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또 한국에서 온 것, 회사의 첫 외국인 사원이라는 것만으로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다. 감사하게도 몇몇 분은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부서 발령 이후에 영업 선배들을 통해 내 안부를 여쭤봐 주셨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도 소중하게 여기는 멋진 사회인 선배님들의 모습에도 많이 배웠다.


규슈 신칸센을 타고 남쪽으로 가다 보면 보이는 팜 시설

그다음은 우리의 입사와 함께 문을 연 후쿠오카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지역의 팜(2, 3군) 시설에서의 연수였는데, 예정 며칠 전에 쿠마모토에 큰 지진이 일어나 신칸센으로 이동하면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일반전철을 타고 1시간 걸려 이동을 하게 되었다. 전철 운행도 잦은 편이 아니어서 매일 아침 금방 눈이 갈 정도로 큰 선수들과 함께 출근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팜 시설은 지역사회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원 같은 시설을 목표로 시합이 없는 날에도 시설에 방문할 수 있게 다양한 행사도 진행했다. 가장 놀랐던 점은 평일 낮 2군 시합을 유료로 진행했는데 몇 천석 되는 자리가 꽉 찼다는 점이다. 이렇게나 사랑받는 구단이구나!라는 점과 동시에 이렇게나 사랑해주시는 분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빠르고 정확한 대응, 조금 주저하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사진 찍어드리겠다고 말을 걸거나, 웃으며 인사하고 안내하기 그 정도였다. 더불어 팜 시설은 규모가 돔에 비해 작은 만큼 모든 것을 담당부서가 해야 했는데, 그중에 하나였던 식음매장과 굿즈 매장에서 함께 즐겁게 일했던 아주머니들을 잊을 수 없다. 몇 분은 나를 처음 보는 외국인이라며 한국을 너무 좋아하신다고 연수가 끝나는 날 돔으로 안 가고 여기서 계속 일하면 안 되냐고 말씀을 해주셔서 마음이 괜히 찡하기도 했다. 이후에 부서 배정을 받고 팜 시설을 담당하는 선배가 가끔 그곳을 갈 때마다 아주머니들께서 ‘M짱은 잘 지내? 왜 안 놀러 오는 거야~’라고 말을 전해달라고 인사를 해주셨는데, 퇴사 전까지 직접 관련된 업무가 없어 다시 가보지 못한 건 매우 아쉽다. 다들 건강히 잘 계시면 좋겠다.


돔 지붕처럼 관계자 외 출입금지 구역을 맘껏 누볐던 연수 시절

이후에는 돔으로 돌아와 돔 지붕부터 선수단 벤치까지 정말 원 없이 돔을 돌아다녔는데 처음에는 미로만 같던 돔 내부 구조도 조금씩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모든 부서에서의 시간을 세세히 남기자면 너무 글이 길어져 정말 일부만 풀어보았는데 신입사원 연수기간은 매일이 신기하고 즐거운 발견, 새로운 배움과 감동이 가득했다. 매일 연수가 끝나면 일기처럼 손으로 직접 쓰던 일지는 각 부서의 선배들이 직접 코멘트를 써주셨는데 꼭 초딩 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컴퓨터로 일본어를 쓰는 건 어렵지 않은데 나는 한자가 완전히 익숙하지는 않아 사전을 찾아가며 손으로 쓰니 다른 동기들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마지막 주자가 되고는 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 일 수 있지만 나의 부족함을 매일 느끼는 시간이어서 퇴근시간이 매우 좋기도 했지만 조금 싫기도 했다. 이후에 일을 하며 힘들 때 가끔 보거나 부서 이동은 물론이고 퇴사할 때도 그때 일지를 먼저 챙겼는데 정말 열심히 흡수하려 했고 많은 선배들의 따뜻한 코멘트가 그대로 남아있어 지금도 콧잔등이 시큰해지기도 하다.


돔 지붕이 열리고 선선한 바닷바람과 멋진 노을이 돔 안으로 들어올 때 가장 멋진 홈

연수기간 중 짧게나마 경험했던 다양한 부서들 시합 운영, 티켓, 퍼실리티(시설관리), 홍보, 팀 운영, 팬클럽, 식음, IT, 이벤트, 응원팀, 대표전화, 굿즈 등 단 한 번의 시합을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 한 번의 시합을 성립하게 하는 우리의 상대팀인 비지터 팀을 비롯해 우리 회사 사람들 뿐만 아니라 경찰서와 소방서와 같은 관공서, 교통 인프라, 수많은 협력업체와 아르바이트 스태프가 없다면 어느 한 부분도 매끄럽게 진행될 수 없음에 감사함과 존경의 마음이 절로 생겼다. 그와 동시에 우리 나름대로 맛있게 차린다고 차린 밥상을 맛있게 드셔주시는 수많은 고객(굳이 팬이 아닌 고객이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고 싶다.)이 있기에 프로팀이 있고 프로리그가 있고 프로스포츠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팬데믹 상황에서 더 절절히 느꼈던 프로야구의 존재 이유, 그리고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시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더욱이 소중함을 느꼈다.


학교에서 배웠던 스포츠마케팅은 머리가 점점 커지는 지식이었다면 실제로 돔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배운 스포츠마케팅은 마음이 점점 커지는 감동이었다. 이렇게 나는 일본에서 구단 관계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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