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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Dec 10. 2021

그렇게 신입사원이 되어 간다.

1회 초_일본 프로야구 구단의 입사연수

한국에서는 경험이 없어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본 신입 공채에서는 보통 최종 합격 연락을 받으면 내내정(内々定)을 받았다고 하고 직접 회사에 가서 최종 합격증과 같은 내정서(内定書)를 받으면 다음 해 4월에 입사까지 가계약과 같은 관계가 이어진다. 내정 수락하는 서류에 내 도장을 찍고 내정서를 받기에 회사 측에 내가 입사할 곳은 이곳임을 확인해주는 것과 동시에 입사 전까지 필요한 준비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확인을 하는 것이다. 회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내정서를 받고 입사까지 길게는 10개월 혹은 반년 정도의 시간이 있기 때문에 그 사이에 업무에 필요한 기초지식을 익히도록 숙제를 내주거나 방학 때 짧은 합숙연수를 하거나 인턴 형식으로 직접 회사에서 아르바이트처럼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 인사부에서 우편으로 보내주는 사회인 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지식들을 담은 책자와 월간으로 발행되는 구단이자 회사의 잡지가 도착했다. 입사 전까지 컴퓨터 숙제도 있었는데 우리나라 대학생이라면 초딩 때 다 할 법한 수준의 MS오피스 기본 책의 과제들이어서 입사 전에 방학숙제처럼 몰아서 작성하고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 달에 한 번씩 '흥미의 안테나'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자유롭게 리포트를 작성해야 하는 과제가 있었다. 제출한 내용은 나머지 입사동기와 한 기수 윗 선배들에게 공유되었고 한 해 먼저 업무를 경험하고 있는 선배들의 코멘트와 함께 피드백을 받았는데, 현재 업무와 어떤 접점이 있는지도 알 수 있었고 서로의 관심분야를 알 수 있어서 입사 후 내가 코멘트를 작성할 때는 은근히 기다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회사에 때 묻지 않은 화려한 K-피피티 실력을 뽐낼 수 있어서(학부 때 공모전에서 잠깐 이름을 날렸다.) 처음이자 유일한 외국인 사원으로 기죽기 싫어 공모전 수준으로 디자인을 해서 제출했는데 다행히도 K-피피티가 돔에서도 잘 먹혀서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그리고 매 달 제출하는 숙제 말고도 입사 전 처음이자 마지막인 현장연수가 있었는데 바로 야구 시즌이 끝나고 진행되는 유일한 이벤트인 팬 페스티벌. 한국에서는 크게 실시하지 않는 것 같은데 일본에서는 거의 모든 구단이 선수들의 휴식기가 시작되기 전 홈구장에서 이번 시즌 큰 응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평소에는 가깝게 다가갈 수 없던 선수들과 가까운 거리에서 다양한 행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하나의 이벤트로 자리 잡고 있다. 리그 우승 혹은 일본 챔피언이 되었다면 그 전후로 카 퍼레이드도 실시하는데 내가 입사하기 전 시즌에는 우리 팀이 일본 정상을 차지해서 성대한 축하 이벤트가 계속해서 진행되었다.


입사 전, 시즌 종료 후 실시되었던 팬 페스티벌 연수 전 날의 후쿠오카 시내 우승 퍼레이드

팬 페스티벌 연수에서는 일일 알바의 형태로 다양한 팬 서비스 현장에서 팬이자 우리의 중요한 고객인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느끼고 반대로 회사에서는 어떠한 준비를 하고 어떠한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민간인으로 경험하는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된다. 우승 퍼레이드에서는 도쿄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시민 모두가 팬이 되어 응원하는 후쿠오카의 열기에 적잖이 놀랐다. 


다음 날 이뤄진 팬 페스티벌 연수 당일에는 굿즈샵에서 진행하는 경품 이벤트 요원으로 잠깐 일을 했는데, 참가상인 과자를 건네드려도 싫은 기색 없이 고맙다고 말씀해주시는 많은 분들의 모습에 일하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직접 선수를 만날 수 없는 팬들에게는 이러한 작은 경험 그리고 즐거운 추억을 굿즈라는 상품에 담아 구입하고 그걸 집으로 가지고 가신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에겐 어쩌면 생에 단 한 번이 될지도 모르는 오늘 이 야구장에서의 추억을 최대한 즐거운 시간으로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게 되었다. 나의 작은 일이 누군가의 추억의 일부분이 될 수 있다니 참 멋진 일이 아닌가! 


아직도 그날 직접 고객을 만나 느꼈던 감정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이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산업, 물론 일상의 모든 곳에서 공통되는 이야기 일 것이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 소중한 추억을 완성시킬 내 일의 보람과 그 일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던 짧고 강렬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현장연수였다. 그리고 1년 뒤에는 엄청 베테랑이 된 것처럼 그 장소에서 뭐라도 된마냥 신입사원들을 안내하고 있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추억이다.


공식적인 첫 출근 날

팬 페스티벌 연수가 끝나고 도쿄로 돌아온 나는 연말연시를 즐길 새도 없이 연구실 전우들과 아침 밤으로 연구동 3층에서 고군분투했고 가까스로 석사논문을 완성하여 다행히도 동기 전원이 함께 도쿄에서 벚꽃과 함께 수료식을 맞이할 수 있었다. 애초에 석사과정 2년만 도쿄에 있을 예정이라 짐을 늘리지 않으려고 했기에 짐은 많이 없었지만 후쿠오카에서 서울보다 더 먼 도쿄였기에 은근히 이사 준비와 정이 든 사람들과의 송별회로 시간이 금방 지났고 정신없이 후쿠오카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렸던 후쿠오카에서의 첫날은 아직은 쌀쌀했던 방 안에서 처음 보는 야경과 함께 두려움과 설렘으로 잠이 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4월 1일, 전국의 신입사원들이 입사식을 갖는 그날은 일본 대부분 회사의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날이면서 신입생과 신입사원, 전근, 이동 등 새로운 출발을 하는 사람이 많은 날이다. 뉴스에서도 다양한 새 출발의 모습을 보여주는 날이라 몇 년 지나 평범한 4월 1일을 맞이하니 모두의 새 출발 기념일이라 괜히 애틋한 기분도 들었다. 전날 밤, 떨리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것과 처음이자 유일한 외국인 사원 그것도 한국인이라는 것에 혼자 괜히 부담을 느끼며 걱정이 더 컸던 것 같다. 낯선 집에서 선잠을 자고 익숙지 않은 검은 구두와 슈트를 입고 돔으로 향했다. 낯선 것 투성이인 후쿠오카에서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입사 후 처음으로 사원식당에서 동기들과 점심식사

입사식은 평범한 일본 회사 스타일로 진행되었다. 회사 건물이기도 한 돔 VIP 라운지에 금색 병풍과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고 단 4명뿐인 신입사원을 위해 신입사원보다 더 많은 임원이 참석을 했다. 회사에서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도 느껴졌고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사식을 마치고는 옆 호텔 레스토랑에 가서 사장님과 신입사원의 점심식사 자리가 있었다. 현해탄이라고 하는 후쿠오카 앞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곳이었지만 내내 긴장을 해서 우리 모두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동기들과 돔에 있는 사원식당에서 선수 라운지에도 제공되고 있는 사원식당의 인기 메뉴인 카레를 함께 먹으며 긴장을 풀었다. 어디를 가든 눈치를 보며 항상 넷이서 함께했던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혼밥 하지 않으면 끼니를 때울 수 없는 환경에 적응하며 사원식당에서 가벼운 눈인사를 대신하게 되었다.


업무용 휴대폰 케이스도 같은 거로 함께 맞추기

입사식 이후로는 업무에 필요한 다양한 서류작성과 비품관리에 대해 안내를 받았는데 일본 회사에서 일하면서 놀라면서도 가장 편했던 것은 업무용 휴대폰을 따로 배부받았다는 점이다. A사가 매우 밀접한 관계사라 적어도 2년에 한 번씩 휴대폰을 교체해주셔서 개인폰보다 업무폰이 더 최신인 적도 있었다. 모든 비용은 물론 회사가 부담하는데 그만큼 제약이 없으니 열심히 일해야 함은 함께한다. 주변 지인들 모두 단말의 형태는 다르지만(그래서 아직까지 피쳐폰이라 불리는 폴더폰을 많이 쓰기도 하는 것 같다.) 대부분 회사에서 업무용 휴대폰을 따로 받아 일을 했는데, 일본에서는 아르바이트라도 기본적으로 업무시간 중에 개인 휴대폰을 사용한다는 개념이 잘 없기도 하고(일본 지인들이 한국에서 많이 놀라 했다.) 암묵적으로 금기시되어 있기도 해서 회사에서 업무용 휴대폰을 따로 배부하는 것 같다. 물론 정보보안의 이유도 있는데 우리 회사의 경우 정보유출에 대해 매우 엄격했기에 업무용 휴대폰에는 담당부서의 허락이 없으면 SNS 어플을 다운로드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개인 카톡이나 라인, 위챗으로 업무연락을 하던 한국 혹은 대만, 중국 관계사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곤란한 적이 꽤 많았다. 공식적인 커뮤니케이션 툴인 메일로 업무협의 데이터를 남기면서 공유하는 방식이 돌발상황이 생겼을 때 빨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나는 적응하는데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모두가 업무용 휴대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두의 번호를 알 수 있어 이름만 안다면 업무 중에는 직접 전화로 대응하는 일이 많았고 가벼운 채팅은 구글 행아웃이나 문자로 해결 가능했다. 퇴근 이후에 오는 연락이나 휴일에 연락을 받지 않아도 정말 급한 일 아닌 이상 회사에서 뭐라고 하지도 않았고 워낙에 휴일이 불규칙적인 회사여서 입사 후 업무의 온오프가 잘 되지 않아 힘들어했을 때 인사부에서 휴일에도 계속 업무 생각을 하지 않도록 보지 않을 수 있으면 아예 꺼둬도 괜찮다고 해주셨다. 사실 한국에서의 직장생활 중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런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 문화에 관한 부분인데 내가 일본에 있던 시간만큼 한국도 많이 변했다고 하니 내가 걱정하는 만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듯 조금은 다른 일본의 신입사원 적응기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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