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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이 Dec 03. 2021

빈 연구실에서 합격 전화를 받았다.

드래프트_처음이자 유일한 외국인 구단 직원

일본은 특이하게 기업 채용도 입시처럼 대부분의 회사들이 정해진 일정에 맞춰 시작하는데, 교복처럼 정해진 리크루트 수트라 불리는 검은 정장과 검은 구두 그리고 암묵적으로 정해진 화장법까지 외국인인 내가 보기에는 특이한 광경이었다. 한국에서는 학부 졸업 조건 중에 하나이기도 했고 취준생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토익과 같은 어학시험을 준비하는 대학생은 외국계 지망이 아닌 이상 거의 없기도 하고 서류전형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다. 인턴이라고 해도 하루 혹은 길어야 1~3개월인 직업체험 같은 인턴이 대부분이었고, 우리나라처럼 휴학을 많이 하는 분위기도 아닌지라 대학교 3학년 겨울이 올 즈음에는 너도나도 슈트를 준비하고 SPI라고 불리는 많은 회사들이 채택하는 입사시험을 준비하거나 관심 있는 회사의 입사설명회를 다니기 시작한다.


나는 대학원 석사과정 1년 차를 마치고 연구주제로 한창 고민을 할 때이기도 했고 입학 때부터 한국으로 바로 귀국하여 일을 하고 싶었기에(물론 계속 학문의 길을 걷고 싶었지만 반학기 만에 너무 험난한 길임을 깨달았다.) 학부 후배들이 검은 정장을 입고 캠퍼스에 나타날 때면 신기함이 더 컸었다. 석사과정 졸업 예정자인 동기들도 하나 둘 정장을 입고 연구실에 나오기 시작했고 논문보다 SPI 문제집을 보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논문도 취업도 어느 하나 결정 나지 않은 나 자신이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엄마랑 통화하는데 모처럼 일본서 공부도 했는데 거기서 일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어차피 석사논문 때문에 학부생처럼 많이 지원하지 못할 거고 일본서 여자 외국인 석사과정 학생을 뽑아줄 곳이 많이 없을 거란 걸 알기에 경험 삼아 철저히 관심 있는 곳 그리고 평소 궁금했던 회사 대여섯 곳의 입사설명회를 가봤다. 예를 들면 롯폰기 힐즈 전망대 연간 패스를 갖고 있을 만큼 좋아해서 이를 운영하는 모리빌딩 입사설명회에 가는 식이었다. 스타디움을 연구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고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는 스타디움 비즈니스를 주 사업으로 하는 기업이 몇 군데 있어서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체크하며 다녀오기도 했다.


벚꽃이 피고 본격적으로 서류전형이 시작되던 즈음에 나도 최종적으로 지원할 회사의 입사서류를 작성했다. 코로나19 이후로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학교 생협에서 판매하는 학교 로고가 박힌 손으로 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우편으로 제출하는 경우도 적지는 않았기에 외국인인 나는 원서 하나를 작성하는 것만으로도 꽤 노력을 많이 들여야 했다. 진작에 블라인드 채용과 인터넷으로 제출하는 한국의 시스템을 생각하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컴퓨터로 내용을 작성하고 입사지원서류로 문제가 없는 일본어인지 어휘나 표현을 일본인 친구에게 검토받고 그제야 완성된 원고를 검은 볼펜으로 써내야 했다. 일본은 손으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을 꽤 중요시하는 문화가 있어서 작성하다 틀리면 수정테이프가 아닌 처음부터 다시 작성을 해야 해서 신중하게 한 자 한 자 써 내려갔다. 그렇게 손으로 쓴 서류를 접수받는 곳을 두 군데 정도 작성해서 우편으로 보내고, 컴퓨터로 지원하는 곳은 마감일까지 수정에 수정을 하다 제출을 마쳤다. 대부분의 대기업 신입 공채는 서류전형, SPI(한국의 인적성 테스트), 그리고 면접 2~3번을 거치는 게 보편적인 채용 프로세스라 과제를 제출하거나 합숙을 하며 채용절차를 진행하는 한국에 비하면 조금은 덜 부담스러운 것 같기도 하다. 


운 좋게 돔 구장과 구단을 함께 소유하고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서류전형을 통과하고 같은 연구실 동기와 학부 후배랑 함께 시험을 보러 갔다. 일본 애들도 떨어지는데 내가 붙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시오도메의 멋진 대기업 빌딩에 들어가 본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어느 날, 시험도 통과가 되었으니 면접을 보러 오라는 메일이 왔다. 안타깝게도 같이 시험 보러 갔던 연구실 동기와 학부 후배는 연락을 받지 못하였는데 그 후 둘 다 더 잘 맞는 곳으로 무사히 취뽀에 성공했다. 일본에서 첫 취업 면접이라 많이 떨렸는데 면접 코칭도 돈 주고 하는데 무료로 일본어 실전면접 연습하는 거라 생각하고 편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최종면접을 앞두고 있었고, 회사가 있는 후쿠오카까지 면접을 보러 다녀왔다. 꽤 두둑한 면접비를 받을 수 있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후쿠오카 여행을 겸한 최종면접은 떨어져도 만족이었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홀로 연구실에 있는데 전화를 받게 되었다.


출신도 전공도 다 달랐던 동기들과 절차탁마했던 연구동 3층



나) 여보세요

담당자) 어디 어디 회사 인사부 T입니다. M상 전화 맞나요? 

나) 네. 제가 M이에요. 안녕하세요. (내심 탈락 전화인가 싶어 긴장했다.)

담당자) 지금 전화통화 괜찮으신가요?

나) 네, 괜찮습니다! (다행히도 연구실에 나 밖에 없었다.)

담당자) 최종면접 결과 전해드리러 전화했어요. 

M상과 함께 일하고 싶은데 저희 회사에 입사해 주실 수 있나요?

나) 오-!!!! 고맙습니다!! (최종면접 느낌이 좋기는 했지만 정말 최종 합격이 될 줄은 몰랐다.)

담당자) 기뻐해 줘서 다행이에요. 입사해 주실 수 있는 거죠?

나) 네! 고맙습니다! 설마 내정받을 줄은 몰랐어요.

담당자) 기쁜 답변을 들을 수 있어서 저도 좋네요. 솔직한 심정은 어떤가요?

나) 기뻐요! 최종면접으로 후쿠오카에 갔던 게 마지막일 거라 생각했거든요.

담당자) M상이 기뻐해 줘서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지금도 기억나는 그때의 통화내용은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던 기분과 입사해 줄 수 있냐고 물어봤던 이야기, 그리고 솔직한 심정을 들려달라고 했던 이야기가 인상적이라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일본 신입 공채는 동시에 수많은 회사들이 채용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도 많은 곳에 지원하고 중복으로 합격되면 최종 합격을 했더라도 입사하지 않는 경우가 꽤 많기 때문에 여쭤보신 것 같다. 다행히도 내가 지원했던 기업 중에 가장 가고 싶은 곳이었기 때문에 망설임은 없었고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정말 순수하게 기뻤다. 무엇보다 내 힘으로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제로부터 준비하고 시작하여 당당히 이뤄낸 성과여서 더욱 기뻤다. 대학원 입학은 '유학생'이라는 조금은 덜 완벽해도 이해받을 수 있는 신분이지만 이번에는 일본 학생들과 같은 위치에서 같은 경쟁 과정을 통해 얻은 성과기에 더 큰 성취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통화가 끝나고 바로 한국의 가족들과 오후의 제미시간(지도교수와 학생들의 세미나)에 지도교수님과 연구실 선후배, 동기들에게 보고를 했다. 


상상도 못 했던 일본에서의 취업, 그야말로 미지의 세계로 떠날 여정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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