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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가다의 작은섬 May 10. 2024

나 참 애쓰며 살았다.

거절 앞에서 '나'로 존재하기 (2024.05.06. 월)



어젠 식구들과 함께 자주 가는 순댓국집에 아주 오랜만에 갔어. 일부러 번잡한 점심시간을 피해서 느지막이 을 나섰지. '저희 가게는 3시에 브레이크 타임이에요. 2시가 조금 넘어서 미리 말씀드려요. 그리고 지금 주방장님이 시장에 가셔서 순댓국만 주문 가능해요. 괜찮으시겠어요?'


식구 수대로 순댓국을 시키고 가만히 앉아서 순댓국이 나오길 기다리는데 '죄송해요. 순댓국이 3인분만 것 같아요.' 요셉과 눈을 마주치며 나갈까 말까 우물쭈물하는데 사장님이 그러시더라. '다른 데 가셔도 돼요'


식당을 나서는데 기분이 좀 그렇더라. '이 집은 칼 같다고 해야 하나? 딱 (운영) 기준이 있는 거 같아'라고 말하며, 내 본마음을 깊숙이 감췄지. '재료가 떨어져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하는 요셉에 한마디에 (기분이 좀 불편하고 거북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렇잖아? 재료가 다 떨어진 거고, 때마침 주방장이 없었을 뿐이고, 그냥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이잖아.


물론 비도 오는데 애써 찾아간 그 집에서 밥을 먹지 못하니까 예상하지 않았던 다른 일을 해야 하는 번잡스러움이 불편할 수 있지. 그건 그럴 수 있는 마음이야.




있잖아.

내가 아주 어릴 때 말이야.

시절 한 부분 중

아주 아주 아주 힘든 시간이 있었어.


작고 매우 연약했던 난,

내가 의도하지 않은

그 힘든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때론 한껏 가시를 세워야 했고

때론 한껏 '탓'을 해야 했고

때론 한껏 매달려야 했고

때론 한껏 웃어야 했고

때론 한껏 감춰야 했고

때론 한껏 가만히 있어야 했어.


지금의 난, 그 시절의 나보다

아주 크고 아주 힘이 세단다.

더 이상 가시를 세우지 않아도

탓하지 않아도

매달리지 않아도

애써 웃지 않아도

감추지 않아도

가만히 있지 않아도 되는데


나는 아주 자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도 모르게

그때 그 시절 그 순간 살아내기 위해

사용했던 그 방법대로 살아가.


나 참 애쓰며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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