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개봉한 권상우 김하늘 주연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권상우가 김하늘에게 묻는다.
"샴푸 뭐써?"
그러자 로맨틱한 무드를 깨는 김하늘의 대답,
"비누 쓰는데?"
대사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나를 비롯한 영화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웃었던 부분이다.
그런데 이건 2003년이었기에 가능했던 웃음 포인트였다. 지금은 비누로 머리 감는 사람 많을 테니까.
사실 나도 샴푸 대신 비누, 그러니까 샴푸바를 쓴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이제 한 3년 정도 된 것 같다. 샴푸바를 쓰기 전에는 '물비누'라는 코코넛 유래 순비누 성분인 제품으로 머리도 감고, 몸도 씻고 얼굴도 씻었다. 미니멀 라이프 책을 통해 알게 된 물비누. 이것 하나면 클렌징 폼, 샴푸, 바디워시가 필요 없어진다. 물비누 리필만 사서 계속 통 하나에 쓰고 있으니 나름 기존의 생활 방식대로였다면 버려질 플라스틱 통 2~3개를 줄인 셈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물비누 리필용 봉투였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샴푸나 바디 워시 등을 사는 것에 비해 비닐에 들어있는 리필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탄소배출을 70%는 줄일 수 있다지만, 비누를 사용하면 이 마저도 줄일 수 있으니 샴푸바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공방에 수업을 들으러 오셨던 수강생분께 샴푸바를 선물 받게 되었다. 나는 그 샴푸바 덕분에 비누로 머리를 감는다고 생각했을 때 흔히들 떠올리는, 손가락에 머리카락을 쉽게 가르며 지나가지 못하는 뻑뻑하고 왠지 모를 건조하고 부스스한 상태에 대한 오해를 완전히 걷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샴푸바에 입문하고부터는 샴푸바로 머리 감고, 비누로 얼굴과 몸을 씻는다. 내 머리카락은 샴푸를 쓸 때보다 건강해 보이고, 머릿결이 뻣뻣해지지도 않는다. 사실 씻을 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비누 하나로 머리도 감고, 몸도 씻고 얼굴도 씻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미니멀리스트들 중에는 '도브'비누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씻는 사람들도 있는데 찾아보니 도브 비누는 약알칼리성인 일반 비누(SOAP)와 달리 '신뎃 바(Syndets)'라는 비누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비누 성분에 코코넛 오일 유래 계면활성제를 배합한 약산성 세정제인 것. 그래서 세정력은 조금 떨어질 수 있지만 보습력이 좋고, 우리 피부가 PH 5.5이고 도브가 PH6 이니까 온몸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찾아보니 도브 외에도 세타필 비누, 아비노 비누 등을 올인원 비누로 추천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피지 폭발하는 지성 피부라 망설여진다. 뭐 꼭 올인원 비누를 쓰지 않더라도 괜찮지 않을까? 샴푸바든, 숙성비누든 대부분의 비누는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지 않고, 포장도 대부분 종이포장이니까. 대부분이라고 표현한 것은, 종이박스 포장이 된 설거지 비누를 구매한 적이 있는데 속 포장이 비닐이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뒤로 설거지 바는 미리미리 동구밭의 설거지 바 벌크포장을 구입한다. 가끔 지인에게 설거지 바를 한 덩이씩 선물하기도 한다.
플라스틱 쓰레기도 생기지 않고 기능도 동일한 샴푸바가 있음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마트에서 샴푸를 사고, 린스를 사는 이유는 뭘까? 흔히 많이 사용하는 샴푸, 컨디셔너 등의 제품은 대기업이 만들고 광고하는 제품들이다. 제품 원가의 70%가 광고비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대기업의 제품 광고를 접하게 된다. 온갖 기능성에, 예쁜 모델의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보며 왠지 내 머릿결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장 보러 간 마트에서 샴푸가 떨어져 간다는 게 생각나고 고민 없이, 아니면 행사 나온 직원 아주머니가 권하는 1+1 샴푸를 집어 들게 된다. 스타벅스에 사람이 많은 이유는? 스타벅스가 자주 존재하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매장을 보고 얼마 가지 않아서 또 다른 스타벅스 매장을 본 경험, 많이 있지 않은가? 이렇게 자주 매체에 노출이 되었기도 하거니와 기본적으로 인간은 변화보다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하던 것을 계속하는 것에는 에너지가 들지 않지만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경험해본다는 것은 처음에는 꽤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에는 용기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플라스틱 용기에 든 제품을 줄 일 수 있는 방법을 인지하고 나서도 여전히 현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빙하가 녹고, 북극곰이 먹을 것이 없어서 쓰레기를 뒤지고 뱃속에 플라스틱만 가득한 해양동물의 사체가 발견됐다는 뉴스 기사를 접해도 그게 당장 나에겐 그 어떤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나 하나쯤이야 지금까지 처럼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 있는 샴푸를 계속 쓰고, 컨디셔너도 쓰고, 바디워시도 쓰는 것이 뭐 얼마나 환경에 영향을 끼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런데 거꾸로, 우리나라 인구 전체가 나 하나라도 바꿔보자는 마음으로 모두가 종이포장이 된 샴푸바만을 구매해서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대기업이 계속해서 분리수거도 잘 안 되는 복합소재 용기에 담긴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를 생산할까? 수요가 없으면 공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CD플레이어가 나오자 워크맨이 사라지고, MP3 플레이어가 나오자 CD플레이어가 사라지고,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자 MP3플레이어가 사라졌다. 샴푸바가 나왔으니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샴푸가 사라지길 기대하는 것은 너무 헛된 바람일까?
이 바람을 담아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니 비누향이 느껴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