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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마워숲 May 28. 2021

-회사를 그만 두자 샤넬백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소비를 줄이다#1

파리에서 산 처음이자 마지막 샤넬백

‘그래, 이건 5년간 열심히 일한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난 그럴 자격 있어’

나는 파리의 어느 샤넬 매장에서 가방을 사기 위해 1590유로를 지불하고 있었다.


 우리는 신혼여행지를 대략 유럽으로 정하고 각자 한 도시를 고르기로 했다.남편은 영화 노팅힐을 좋아했기에 런던을 선택했고 나는 파리를 선택했다.

파리에 가고 싶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샤넬의 본고장에서 샤넬백을 구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압구정에 있는 패션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월급이 들어오는 날에는 어김없이 회사에서 운영하는 여러 의류 브랜드가 돌아가며 패밀리세일이란 것을 했다.세일을 50%씩 70%씩 해도 나에게는 비싼 옷들이었다.

같은 팀 언니들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구경을 가면

뭐라도 사야 할 것만 같아서 가격표를 보고 또 보고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들었다 놨다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얄궂은 옷 하나를 사고는 싸게 샀다며 득템 했다며 뿌듯해하곤 했다.


해외출장이라도 잡히면 티켓 발권이 된 후부터는

인터넷 면세점에서 평소에 못 사는 비싼 화장품을 사고 살 것도 없으면서 또 뭘 사야 하나 눈이 빨개지도록 모니터를 노려봤었다. 비행기 체크인 후 면세품을 찾아서 올 때면 왠지 잘 나가는 사람이 된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패션회사를 다니던 그때의 나는 유행에 맞는 옷을 입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았고 남들 눈에 명품백 하나 없는 내가 초라해 보일 것만 같았다.





그렇게 온갖 이유를 붙여가며 사온 샤넬백은

행여 흠집이라도 날까

가방 모양이 망가질까

전전긍긍하며 아주 가끔씩 들고 다녔고 외출 후에는 가방 안에 빳빳한 종이를 넣어 모양이 무너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다시 옷장 안에 잘 넣어두곤 했다.


 결혼 후 일 년 뒤 나는 그토록 원하던 퇴사를 했고,

텍스타일 디자인 브랜드를 만들어 패브릭 소품들을 판매했다. 나는 내가 제작한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일이 더 많았고 대중교통으로 지하 작업실로 출근을 하느라 신혼여행에서 산 샤넬백은 옷장 안에서 나오는 일이 그다지 없었다.




그즈음 남편과 데이트하다 들른 서점에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사사키 후미오)의 책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미니멀 라이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미니멀 라이프 지만 당시에는 정말 신선했고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버려야 할 물건 중에는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샤넬백을 떠올렸다.그 샤넬백은 나의 분수에 맞지 않는 물건이었던 것이다.

얼마 뒤 몇 번 들지도 않은 그 샤넬백을 구매 당시 가격의 반값 정도를 받고 처분했다. 그러고 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 가방이 아쉬웠던 적은 없었다.

샤넬백뿐만이 아니었다. 한동안 나는 회사에서 산 옷과 가방들을 지역 중고 앱을 통해 처분하고, 또는 기증했다.






처음부터 불필요한 소비를 한 셈이다.

있어 보이고 싶었고 이 정도쯤은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던 소비였다  

내가 갖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남이 보는 나를 위해 산거였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물건과 동일할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남이 보는 나를 위한 소비는 하지 않는다.

남들이 다 가진 것이 나에게 없다고 해서 불안하지도 않다. 옷을 살 돈으로 책을 사고, 내게 필요한 수업을 듣는다. 명품백 살 돈으로 가방을 만드는 수업을 들었고 그때 만든 가방들을 자주 들고 다닌다.

남편 가방도 만들어줬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가방도 만들어 선물했다  그렇게 만든 가방을 들고 다닐 때의 내 마음은 너무나 편안하고 누가 가방이 이쁘다고 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혹시

사도 사도 채워지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물건을 모시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조금은 무리한 소비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 있지 않을까


당당하게 사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에게 맞춤옷 같은 소비를 잘 하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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