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정 딸 같은 며느리
"우리 딸이에요, 예쁘죠?"
우리가 머무는 동안 산타크루즈의 하늘은 자주 흐렸다. 한 택시 기사님께서 테네리페섬의 남쪽 해변으로 가면 그곳에서는 항상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하셔서 오늘 우리는 그곳으로 파란 하늘을 보러 갔다.
잔뜩 구름 낀 하늘아래 황량한 벌판을 한 시간 정도 달렸더니 거짓말같이 하늘이 맑아졌다. 이런 줄 알았다면 애초에 산타크루즈 대신에 이쪽으로 호텔을 잡았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의 이름은 플라야 데 라스 아메리카스 (Playa de las Americas)
이곳 역시 원래는 검은 모래 해변이었는데 인공적으로 흰모래를 깔아놓은 곳이라고 한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지만 산타크루즈처럼 쌀쌀하지 않은 훈훈한 바람이었다.
시어머니께서는 가장 먼저 해변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가셨다. 어머님께서 원피스를 잔뜩 고르시길래 나도 몇 벌 골라드렸는데, 결국 어머님께서는 내가 골라드린 원피스로만 3벌을 구입하셨다.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입으니까 편하고 예쁘다. 네가 잘 골랐어!"
"제가 또 원피스 고르는 안목은 좀 있거든요, 호호"
"니 거는 내가 골라줄까?"
"아뇨, 괜찮아요. 저는 어머님이 고르신 옷들을 봤거든요..."
사실 어머님께서 돈을 쓰시는 게 싫어서 한 말인데 어쩌다 보니 버릇없게 말해 버렸네.
우리 고부의 허물없는 대화를 들으신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어머님께 나와의 관계를 물으셨고 시어머니께서는, "우리 딸이에요, 예쁘죠?"라고 망설임 없이 대답하셨다.
어머님께서는 호텔에서도 종종 "그거 우리 딸이 주문한 거예요."라고 하시며 나를 딸이라고 부르곤 하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겉으로는 표현 안 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뭉클하다. 이것이 바로 딸 같은 며느리인가 보다. 며느리조차 자신이 딸인지 며느리인지 애매해질 정도로 격식이 없는 관계랄까...
파란 하늘이 너무 신기했다. 이 순간에도 이 작은 섬의 반대편은 먹구름으로 뒤덮여있겠지. 아마도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산의 영향인듯하다.
해변을 걷다가 바다 전망이 좋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어머님! 여기도 어머님 방석이 있네요!
시어머니는 맥주, 아버님은 에스프레소, 그리고 나는 드디어 샹그리아를 주문했다. (한잔씩 파는 곳이 없어서 그동안 못 마셨다.)
"너 아이스크림도 먹을래?"
나는 아이스크림 한 스쿱 정도를 생각하고 먹겠다고 대답했는데, 나중에 보니 어머님께서 나를 위해 주문하신 것은 커다란 프라페였다.
"저 오늘 생일인가요! 혼자 다 먹기에는 너무 많은데요."
"생일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되지."
아, 그럼 되겠네요! 나는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먹었다.
아버님께서는 에스프레소와 함께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티라미수를 주문하셨다. 나더러 먹어보라고 하셨지만 내가 샹그리아에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면서 이것까지 뺏어먹으면 양심도 없지 싶어서 거절했다.
나는 잠시 후 해변에 혼자 나가서 맨발로 해변을 잠시 걸었다. 파도가 왔다 갈 때마다 모래가 반짝반짝 빛났고 마른 모래는 정말 부드러웠다.
차로 돌아가는 길, 빠에야 배달을 가는 한 남자의 뒤에 바짝 붙어서 걸어오시던 어머님께서는 냄새가 너무 환상적이라며 저녁에 빠에야를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오예! 드디어 빠에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