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빼고.
2022년 3월의 어느 날 남편이 문득 말했다.
"5월 말에 부모님이 지인 결혼식 때문에 3박 4일간 스페인에 다녀오신다는데 우리더러 같이 가자고 하시더라고. 나는 휴가를 못 낼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러면 와이프만이라도 데리고 가고 싶으시대. 여행경비도 다 내주신다는데 부모님 따라 스페인 다녀올래?"
여행경비 부분에서 좀 갈등을 하긴 했지만 시부모님께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오실 때마다 부럽기만 했던 나로서는 거절할 수가 없는 제안이었다. 남편은 곧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서 나도 따라갈 거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다음 날 시어머니께서는, 결혼식에 참석하는 대신에 카나리아제도에 있는 테네리페로 1주일간 다녀오는 것으로 일정을 바꾸자고 하셨다.
아니... 그러면 경비가 더 많이 들게 되잖아요...
내 경비는 내가 내겠다고 해도 안 들으실게 뻔하니 그냥 이번에는 두 분이서 오붓하게 다녀오시고 다음에 따라가겠다고 말씀드렸다. 내 속을 알리 없는 시어머니와 남편은 그럼 원래 일정대로 바꾸면 같이 갈 거냐고 번갈아가며 물어왔다.
"아직 시간은 있으니 주말 동안 좀 더 고민을 해 본 후 월요일에 알려다오. 우리는 네가 함께 갔으면 정말 좋겠구나."
"우리 부모님이랑 여행 가는 게 불편한 건 아니지? 정말로 너를 편하게 생각하시고 엄청 사랑하시는 거 알잖아. 나는 못 가더라도 와이프는 다녀오면 좋을 것 같은데... 거기 정말 좋다던데..."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사실 결혼 전에는 출장이 아닌 이상 게스트하우스나 저렴한 숙소에 묵는 편이었다. 나 때문에 시부모님께서 고급호텔 1주일의 숙박료를 지불하시도록 만들고 싶지가 않았다. 사실 호텔비 이외에도 비행기표나 현지 식사비 역시 만만치 않을게 뻔했다.
주말이 지난 후 시어머니께서 또 한 번 메시지를 주셨다.
"거기 가면 수영복차림으로 햇빛도 실컷 쬘 수 있을 거야!"
카나리아제도가 더운 곳인가? 괜스레 궁금해서 검색을 해 봤는데 글쎄! 거기가 바로 윤식당 촬영지란다. 아... 그럼 가야지... 나는 그날 저녁에 남편에게 말했다.
"나, 시부모님 따라갈래. 대신에 호텔비랑 비행기는 내 생일 선물로 당신이 내는 걸로 해. 시부모님이 다 내주시는 건 죄송해서 안될 것 같아."
남편은 그제야 내속을 이해했다는 듯이 후련한 표정을 지었고 바로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려서 말씀드렸다. 시어머니께서는 곧장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을 마치신 후 호텔과 비행 편 정보를 나에게 보내주셨다. 속전속결!
대신 시어머니께서는 자서방이 경비를 반만 부담하도록 하셨다. 나머지는 내 생일 선물이라고 하시며.
우리가 묵게 될 호텔의 사진들을 몇 장 보내주셨는데 갑자기 너무나 설레기 시작했다. 유튜브로 윤식당 편을 검색해 보며 가고 싶은 곳을 마음속으로 꼽아보기도 했다. 내가 시부모님을 위해 훌륭한 짐꾼이 되어드려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생일 선물로 시부모님과 떠나는 휴가라니...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