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용 Jun 27. 2023

점점 뻔뻔해지는 며느리

시댁이 나에게는 농장이고 슈퍼마켓이다.

2020년 8월 9일


아침에 시어머니께서 그헝프레에 야채와 과일을 사러 가신다며 같이 가자고 메시지를 보내셨다. 오늘은 필요한 게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몇 시간 후에 다시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이것저것 많이 산 게 있어서 나눠주고 싶은데 이따가 너희 집에 들르마."

"힘드신데 제가 가지러 갈게요. 감사합니다!" 

시댁에 갔다가 주시는 것만 챙겨서 바로 나오면 서운하실 것 같아서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잔 직접 따라서 마시며 시어머니와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토마토소스를 만들려고 했는데 토마토가 별로 좋지 않아서 안 샀단다. 미셸더러 다음 주에 농장에 가서 많이 사 오라고 시킬 거야. 그러면 우리 같이 토마토소스를 만들자꾸나. 그전까지 혹시 토마토소스가 부족하면 더 챙겨가거라. 지하실에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솔직히 시어머니께서 주신 토마토소스가 우리 집에도 넘쳐나는 중이다. 그중 어떤 건 뚜껑에 2015라고 써져있었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시댁의 정원에는 여러 가지 과일들이 싱싱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포도, 레몬, 토마토, 무화과 그리고 미라벨- 

이게 레몬이란다. 케비아 레몬이라던가...? 껍질이 단단하고 신기하게 생겼다.

시어머니께서는 익은 토마토들을 따다가 그대로 봉지에 모두 담아서 주셨다. 그 외에도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 한가득 챙겨주셨다. 시댁에 있던 장바구니들이 이런 식으로 자꾸 우리 집에 쌓여만 가는 중이다. 



내가 시댁에서 지낼 때 시아버지께서는 식사 후 항상 치즈를 드셨는데 고르곤졸라 치즈를 드시려고 할 때면 시어머니께서는 그건 요용 주려고 산 거니까 다른 치즈를 드시라며 타박을 주곤 하셨다. 오늘 고르곤졸라를 새로 사 오셨다고 하시며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반을 뚝 잘라서 싸 주셨다. 나머지 반은 시아버지 거라고 하셨다.

샐러드는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씻어서 담아주셨다. 



그리고 소고기는 그헝프레 정육코너 총각이 너무 친절해서 자꾸만 사게 된다고 하셨다. 바로 수비드로 요리할 수 있도록 진공포장까지 해서 주셨다. 



이렇게 자꾸자꾸 챙겨주시니 내가 마트를 안 가고 자꾸 시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가득 찬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시댁을 나오면서 나는 시아버지께 쇼핑 잘하고 간다며 인사를 드렸다.


"쇼핑 끝내고 저는 이만 갈게요! 여기가 저한테는 슈퍼마켓이고 정육점이고 농장이네요. 하하!"

  

참 뻔뻔한 며느리다. 그래도 우리 시부모님은 그 말이 맞다고 하시며 같이 웃어주신다.

작가의 이전글 시어머니께서 챙겨주시는 새집 살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