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이 나에게는 농장이고 슈퍼마켓이다.
2020년 8월 9일
아침에 시어머니께서 그헝프레에 야채와 과일을 사러 가신다며 같이 가자고 메시지를 보내셨다. 오늘은 필요한 게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몇 시간 후에 다시 시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이것저것 많이 산 게 있어서 나눠주고 싶은데 이따가 너희 집에 들르마."
"힘드신데 제가 가지러 갈게요. 감사합니다!"
시댁에 갔다가 주시는 것만 챙겨서 바로 나오면 서운하실 것 같아서 냉장고에서 콜라를 한잔 직접 따라서 마시며 시어머니와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를 잠시 나누었다.
"토마토소스를 만들려고 했는데 토마토가 별로 좋지 않아서 안 샀단다. 미셸더러 다음 주에 농장에 가서 많이 사 오라고 시킬 거야. 그러면 우리 같이 토마토소스를 만들자꾸나. 그전까지 혹시 토마토소스가 부족하면 더 챙겨가거라. 지하실에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솔직히 시어머니께서 주신 토마토소스가 우리 집에도 넘쳐나는 중이다. 그중 어떤 건 뚜껑에 2015라고 써져있었다. 그래도 나는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시댁의 정원에는 여러 가지 과일들이 싱싱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포도, 레몬, 토마토, 무화과 그리고 미라벨-
이게 레몬이란다. 케비아 레몬이라던가...? 껍질이 단단하고 신기하게 생겼다.
시어머니께서는 익은 토마토들을 따다가 그대로 봉지에 모두 담아서 주셨다. 그 외에도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 한가득 챙겨주셨다. 시댁에 있던 장바구니들이 이런 식으로 자꾸 우리 집에 쌓여만 가는 중이다.
내가 시댁에서 지낼 때 시아버지께서는 식사 후 항상 치즈를 드셨는데 고르곤졸라 치즈를 드시려고 할 때면 시어머니께서는 그건 요용 주려고 산 거니까 다른 치즈를 드시라며 타박을 주곤 하셨다. 오늘 고르곤졸라를 새로 사 오셨다고 하시며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반을 뚝 잘라서 싸 주셨다. 나머지 반은 시아버지 거라고 하셨다.
샐러드는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씻어서 담아주셨다.
그리고 소고기는 그헝프레 정육코너 총각이 너무 친절해서 자꾸만 사게 된다고 하셨다. 바로 수비드로 요리할 수 있도록 진공포장까지 해서 주셨다.
이렇게 자꾸자꾸 챙겨주시니 내가 마트를 안 가고 자꾸 시댁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가득 찬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시댁을 나오면서 나는 시아버지께 쇼핑 잘하고 간다며 인사를 드렸다.
"쇼핑 끝내고 저는 이만 갈게요! 여기가 저한테는 슈퍼마켓이고 정육점이고 농장이네요. 하하!"
참 뻔뻔한 며느리다. 그래도 우리 시부모님은 그 말이 맞다고 하시며 같이 웃어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