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방귀를 잘 뀌어서 고마워요."
저녁식사를 마치고, 대화를 나누다가
가족들에게 고마운 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5살 막내가 할머니는 요리를 잘해주고,
아빠는 책을 잘 읽어주고,
오빠는 잘 놀아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다가
엄마 차례가 되니 하는 말이,
"엄마는 방귀를 잘 뀌어서 고마워요."
다들 한바탕 웃는데, 당사자인 나는 다른 의미에서 웃음이 났다.
어이없기도 하고, 놀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그런데 아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
남편에게 듣고 나니 눈물이 났다.
위암 3기로 위를 다 제거한 후
아무래도 정상적이지 못한 몇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방귀다. 병을 앓기 전보다 배에 가스가 잘 찬다.
그래서 방귀도 많이 뀌게 되고 냄새도 심한 편이다.
아이들도 처음에는 좀 참아주는 거 같더니
요즘에는 엄마 방귀 냄새 고약하다고 핀잔을 주기 일쑤다.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방귀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라서
방귀가 나오려고 하면 민망한 상황을 안 만들기 위해
베란다나 현관으로 자리를 피해서 해결하고 온다.
어느 날 내가 없을 때 아이 아빠가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했나 보다.
엄마는 많이 아파서 병원에 있었지만
이제 건강해져서 우리랑 같이 있는 건데
아팠던 게 아직 안 나아서 방귀가 나오는 거고,
방귀가 나오는 건 엄마가 우리랑 같이 있다는 거니까
엄마가 방귀를 뀌더라도 너무 싫어하지 말자고 말이다.
아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우리 5살 막내가,
생후 6개월부터 2년 가까이 엄마와 떨어져 컸던,
아기인줄만 알았던 우리 딸이 그 말을 이해했나 보다.
얼마 전부터 방귀만 뀌면
"구수하다~ 향기 좋다~" 했던 이유가 그거였다고 생각하니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내 딸이 많이 컸구나 싶었다.
놀리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약한 방귀 냄새에도 엄마랑 같이 있음에 좋았나 보다.
엄마랑 놀고 싶다는 말에, 떼쓰지 말라고 했었는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할 때 그 말의 무게를 왜 가볍게 생각했을까?
초등학교 오빠들을 챙기느라
혼자 잘 놀고 말 잘 듣는 예쁜 막내와 많이 함께하지 못해서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미안하고 고맙고 만감이 교차했던 하루였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매일매일 더 많이 사랑해줘야겠다.
이제 '방귀쟁이 엄마'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