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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누 Nov 01. 2020

19살에 300만 원 들고 캐나다로 왔다 #18

그리고 이민에 성공했다



#18 룸메이트 J



어느 날 문득 은행에서 카드 거래내역을 보게 되었다. 애초에 갓 20살이 된 나는 내 명의로 된 계좌 및 카드도 처음이었고 평소에 워낙 꼼꼼히 가계부를 쓰던 버릇이 있어 특별히 계좌 거래내역 잔액 등을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었다.


그래도 지난 몇 달간의 거래내역을 봐도 크게 놀라울 건 없었다. 하나하나 다 기억이 났었고 가난한 유학생이었기에 매번 신중히 지출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예상치 못한 고정지출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이사하기 전 J와 같이 사용했던 인터넷이었다. 




왜 수개월 동안 나는 이걸 몰랐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니 쉽게 알 수 있었다. J는 내게 본인은 계속 인터넷을 사용해야 하니 번거롭게 인터넷을 해지하지 말고 명의를 바꾸자고 했다. 순진했던 걸까, 멍청했던 걸까, 나는 알아서 한다는 J의 말에 인터넷 통신사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넘겨줬었고, J는 인터넷을 본인 명의로 양도한 것이 아닌, 연락처 정보만 수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원래 이메일로 받던 인터넷 인보이스를 못 받게 되었고 수개월 동안 J가 내는 줄 알았던 인터넷비를 자동이체로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난 나 자신을 탓한다. 어렸다, 어리숙했다 라는 핑계를 대기에도 부끄럽다. 10살 초등학교 3학년 때 온라인게임에서 만난 사람에게 집 전화번호와 개인정보를 알려줬다 엄마한테 혼났었는데, 그때도 J에게 쉽게 개인정보를 넘겨주는 거 보면 20살의 나도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보다. 




J에게 페이스북으로 연락했다. 앞서 말했듯 나의 부주의도 컸기에 좋게 해결하고 싶었다. J는 부정했다. 그럴 일이 없다며 몇 번이고 강조했고 꽤나 진심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가 캡처해놓은 거래내역과 인터넷 회사와 상담하며 확인받은 사실들을 보내주니 J는 가면을 벗었다. 적반하장이었다. 이제 와서 어쩔 거냐는 말투였다. 많이 실망 한나는 J를 쏘아붙였더니 그는 내 페이스북을 친구 삭제 후, 블락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더 이상 보고 싶은 얼굴도 아니었기에 집까지 찾아가고 싶진 않았다. 다른 룸메이트 형 누나들에게 연락해보니 J는 평소처럼 잘 지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J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J는 장문의 메시지를 페이스북에 남겼는데, 자기 주위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말고 이상한 소문 퍼트리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었던 나도 장문의 메시지를 남겼지만 전송되지 않았던걸 보니 J는 자기 메시지만 남기고 다시 나를 지웠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거리 신호등 건너편에 J가 서있는 걸 봤고,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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