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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조신 Oct 29. 2020

Dear Mong-Go

M&A story

동생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너를 처음 보고 참 잘 생겨서 휴대폰 사주고 번호 따고 싶었지.



나와 살게 되었을 때, 사람들이 너의 사진을 보며 '원빈'고양이라는 별명을 지어줬을 땐 많이 우쭐하기도 했어. 잘생긴 외모만큼이나 멋진 행동들이 나를 감동하게 했었지. 그래서 네가 고양이가 아닐 거라는 의심을 참 많이 했었어.



살아가기 위한 마지막 선택에서 희망이 무너졌을 때, 삶이 싫어지는 순간 네 위로가 나는 참 고마웠어. 절망스러웠던 기억인데 네가 좋은 기억으로 바꾸어 주었지. 나에게 아주 많은 힘이 되어 지금까지 너를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것을 너는 알고 있을까?



동생과 헤어지고 눈물을 흘릴 만큼 많이 힘들어했으면서, 나를 의지해줘서 너무 고마워. 어쩌면 우리의 사정과 관계없이 인간을 다시 믿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너의 결정이 감사할 따름이야.



그러면서도 네게 더욱 의젓한 모습을 기대하곤 했었지. 너도 어린 시절이 있고, 어리광 부리기 위해 태어난 고양이인데 어느덧 내가 사람처럼 대하고 의지해서 힘들었을지도 몰라. 그런데도 묵묵한 너의 배려는 끝이 없더라.



나는 내 멋대로의 인간이라 언제라도 예의와 배려를 잊지 않던 너를 보며 많은 걸 배워야 했어.

너는 잘 교육받은 영국의 신사 같은 기분이 들었어. 그래서 내 방식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나에게는 조금 부족한 것이 있었고, 너는 그걸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했거든.



너와 함께가 되면서 나는 밝은 옷을 입게 되는 패션의 변화도 있었고(털 때문에 어두운 옷을 안 입게 되었어) 혼자 있을 너를 생각하며 얼른 집으로 가야 했기에 저축의 개념도 생겼지. 덕분에 대인관계는 좁아졌지만 더욱 깊어졌으니 좋은 결과라고 생각해. 너에게 부리던 애교를 사회생활에서 활용하다 보니 성격도 달라지고, 사람들과의 관계가 편해지기도 했었고 말이야.



조심성이 없는 나였는데 네가 전기선을 껌처럼 씹을까 봐 늘 전기를 조심했고, 위험한 물건은 떨어지지 않게 정리를 하게 되었고, 우리 둘 다 털갈이를 하니까 공기가 나쁠까 봐 청소도 자주 하게 되었지. 삶을 책임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너와 있으니 성실하게 회사도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아.



너를 통해 배운 삶의 시간들은 내게 의미를 갖기에 충분했고, 덕분에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하나님은 천사를 이미 보내주셨는데, 난 케어가 많이 필요한 사람이라 또, 천사를 보내줘서 이 세상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



네가 태어난 정확한 날짜를 몰라서 너의 삶의 시간을 예측할 수 없어 안타까운 하루하루인데, 네가 이사 오고 두 번이나 없어지고 하루가 지나서 찾았을 때는 정말 앞이 캄캄했어. 밤새 너랑 있던 추억을 눈물로 이야기하며 네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봐 잠을 설쳤지. 그 덕분에 너는 사료도 잘 먹게 되어서 좋았지만 말이야.(고양이는 죽을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면 식성이 착해진다더니 그 말이 맞나 싶어)



그래도 우린 다시 만났고, 세 번째 천사 덕분에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어 감사하지. 처음엔 눈에 보이도록 나이 듦이 애처로웠는데, 맑은 공기에 조용한 이 곳이 너를 더욱 건강하게 해서 함께할 시간이 길어졌다는 희망에 너무나도 기뻤어. 그리고 네가 이동할 동선도 넓어지고 호기심 많은 네가 매일을 구경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활발하게 지내줘서 상당히 희망스러워.



그리고 앙쥬를 챙겨줘서 너무 고마워. 네 덕분에 앙쥬가 건강하게 컸고 나 역시 안심하고 내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너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일을 만들어준 것 같아 마음이 좀 시원하진 않았어. 그래도 우리가 이제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잘 지내니까 너무 좋아.



앞으로도 지금의 그 모습으로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어. 구차하게 시간을 연장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지만 내가 아직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았으니까 그 점은 고려해줬으면 해. 그리고 부탁이 있는데, 산책 나갈 때 멀리는 안 나갔으면 좋겠어.




사랑한다.

나의 고양이.

몽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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