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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Apr 04. 2022

'경제적 자유'의 함정

돈을 벌면 우리는 자유로워질까?

올해 서른이 된 직장인 A, 그녀는 요즘 마음이 조금 불편해요.


며칠 전에 있었던 동창회 때문입니다. 동창회 내내 그녀는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대요. 그녀는 '재테크'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A는 주식이나 가상화폐, 부동산 투자에 한 번도 관심 가져 본 적 없습니다. 돈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그러나 요즘 들어 그녀는 부쩍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어디를 가도 재테크 얘기가 없는 곳이 없고, 미디어에서는 끊임없이 A를 다그쳤습니다. 월급 노동만으로는 '벼락 거지'를 면할 수 없다고 말이죠.


'경제적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자원들을 금융자산에 투입해야만 한대요. 주식도, 코인도, 부동산도 하지 않는 A. 그녀는 정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일까요?




몇 년 전, 비트코인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정부의 양적완화 정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커다란 변화가 있었어요. 주식이나 펀드, 가상화폐 같은 금융상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증했던 것이죠.


서점가에는 '부자 되는 법', '실전 부동산 투자' 같은 투자 실용서들이 범람하고, 방송계에서는「개미는 오늘도 뚠뚠」(카카오tv), 「정산회담」(jtbc), 「개미의 꿈」(mbc)등의 재테크 예능이 쏟아졌습니다.


동시에. 몇몇 '돈'과 관련된 멘토들을 필두로 경제적 자유라는 키워드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직업이나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정한 경제적 상태에 도달해야만 하고, 그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재테크에 모든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금융제도나 경제상식에 대한 시민의식 증대는 나쁜 것이 아니지만, 문제는 그에 대한 반(反) 작용도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A가 동창회에서 겪은 일과 같은 경우예요. 경제적 자유와 부가 시민사회의 유일한 정답이 돼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문화 도식에 따르면 보통의 사람들은 모두 '개미'가 되고, 많은 노력과 운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도 기껏 해봐야 '슈퍼개미'가 됩니다. 우리는 사람인데 말이죠.


경제적 자유의 이면에는 깊은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이 개미가 되는 과정에서 무엇이 희생되는지 우리들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에요.




오늘은 '자유'와 관련된 유명한 문학작품 하나를 소개하려고 해요. 영국의 작가 윌리엄 서머싯 몸「달과 6펜스」입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달과 6펜스」는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한 소설이에요.


런던의 평범한 증권 중개인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무미건조하고 따분한, 그러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예술혼에 사로잡힙니다. 그리고는 안정된 직업과 가족, 친구들 모두 버려버리죠. 오직 그림을 위해서요.


그렇다고 천재적인 재능으로 처음부터 대단한 성공을 거머쥔 것도 아니었습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스트릭랜드에게 화가로서는 기껏 해봐야 중간 정도 갈 것이라며 직업만은 버리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스트릭랜드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타히티 섬으로 떠납니다. 오직 그림에 대한 열망만 가지고 말이에요. 그리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이 강렬하고 단순한 이야기가 '경제적 자유' 하고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달과 6펜스」는 언뜻 보면 어느 광기 어린 예술가의 비극 정도로 읽힙니다. 그러나 실은 스트릭랜드의 이야기는 '삶에 있어서 진짜 자유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예요. 안정된 삶과 경제적 여유를 포기하도록 한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죠.


소설 속 스트릭랜드는 무난한 증권 중개인으로, 큰 부자는 아니더라도 여유 있는 생활을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림에 모든 걸 쏟으며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낡은 호텔에서 기거하고, 불결한 환경 때문에 심각한 병을 앓기도 했죠. 타히티에서 끝끝내 완성한 필생의 역작도 공개나 판매는커녕 불태워버립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스트릭랜드는 빵점짜리 인간인 거죠. 그러나 소설을 읽고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어요. 그가 떠나온 런던 증권가의 사람들과 스트릭랜드, 누가 자유로운 삶을 살았나요?




「달과 6펜스」라는 작품의 제목에서 6펜스는 영국의 화폐단위에서 가장 적은 금액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10원짜리 동전 정도 되겠네요. 말하자면 서머싯 몸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장 옹졸한 측면을 6펜스짜리 동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반면 달은 이상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서머싯 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동전의 세계를 떠나 자유롭게 달로 떠난 사람의 이야기였던 거죠. 


물론 그렇다고 작가가 '모든 사람들은 생계를 버리고 떠나야만 한다' 고 생각한 건 아닐 거예요.


단지 자유로운 삶이란, 각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마음껏 떠날 수 있어야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죠.




그러나 우리는 점차 달과 6펜스 사이에서 고민할 권리를 빼앗기고 있는 것 같아요. 하나의 삶의 양식을 정답으로 간주해버리는 분위기 때문에 말입니다.


자유의 사전적 의미는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미디어에서 전해주는 자유를 위한 조언은 이와는 정반대로 대치돼요.


노동 수익은 기본이고, N 잡을 가져야 하며. 항상 주식시장의 흐름에 눈을 떠있어야 하고, 여유자금은 모두 투자상품에 투입해야 해요. 생활비와 투자자금 외에 모든 것은 사치입니다. 커피 한잔, 외식이나 여행, 문화생활 등은 모두 '낭비'라고 인식하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돈 벌기를 위한 돈 벌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한다면, 그것만큼 얽매인 일상이 어딨을까요?




그것이 달의 세계든, 6펜스의 세계든, 세상 사는 방법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갈 때 정답은 있어요.


내가 가장 행복한 방향이 바로 정답입니다. 그렇기에 그 누구도, 어떤 사회적 당위도 개인에게 삶의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돼요.


스트릭랜드에게는 그림예술이라는 달의 세계를 찾아 떠난 것이 정답이었고, 소설 속 화자 '나'에게는 평범하고 안정적인 삶에 안주하는 것이 정답이었을 뿐입니다.


누구에게나 동전이라는, 자신 속의 대립한 양면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짜 가치는 경제적 자유가 아닌 '인생의 자유'인지도 몰라요. 


어느 날 문득 내가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의문이 든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뭔지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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