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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Mar 29. 2022

내 미래가 불안할 때

이유 없이 불안할 때 우리는 어떡해야 될까? 

올해 29살이 된 직장인 J. 요즘 그녀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불면증인데요. 언제부턴가 밤만 되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불안감에 새벽까지도 잠들지 못하곤 해요.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는 음악도 들어보고, 명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불안감은 쉽사리 없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피곤한 몸상태 때문에 신경도 날카로워지는 것 같고, 그러다 보니 더 불안하고, 악순환의 반복입니다.


항상 피로에 시달리다 보니 회사에 출근해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해요.


주변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아봐도 그때뿐, 해결되는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딱히 별다른 일이 없는데도 견딜 수 없게 불안할 때, 우리는 어떡해야 할까요?




사실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이라는 감정에 시달리는 사람은 J 말고도 아주 많을 거예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은 사람은 한 해에 57만 명, 즉 100명 중에 1명은 불면증을 겪고 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이 통계는 병원을 방문해서 병명을 진단받은 사람들만을 집계한 수치예요. 즉 남들에게 말 못 하고 속으로 불면증을 앓고 있는 분들까지 합친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잠들지 못하는 밤을 겪고 있다는 말이 돼요.


이러한 불면 현상은 특히나 직장인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한국 직장인들의 평균 수면시간은 6시간 6분, OECD 평균에 비해서 2시간 20분이나 적습니다.


이 정도 수치라면 개개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토록 잠들지 못하는 밤을 보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불면증의 원인은 단연코 심리적인 불안입니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불면증과 불안증을 거의 같은 의미로 쓰곤 해요. 


심정적으로 불안해지면 잠들지 못하고, 잠들지 못해 피로해진 몸과 정신은 불안증을 더더욱 부추기게 됩니다. 끔찍한 악순환이죠. 고통에 시달리다 못한 사람들은 결국 병원이나 술에 의지하게 돼요.


독일의 사회학자,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은 현대사회를 「불안사회」라고 이름 붙였어요. 공동체에 전반적인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일상적인 환경이 지극히 산발적이고 혼란하게 되면서, 불안은 현대인의 고질적인 현상이 됐다는 것이죠.


하지만, 실은 현대인의 '불안'에는 환경적인 요인보다 더 본질적인 원인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의 근본적인 상태, 즉 인간의 기본적인 밑바탕이 바로 불안이라는 거죠.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불안을 '근본 기분'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즉, 두려움이나 기쁨, 분노 같은 감정들과는 아예 다른 성격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에 따르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불안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내가 사는 이유는 뭐지?' 혹은 '내 존재라는 건 뭐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저 태어난 대로 묵묵히 살아가는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불안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거죠.


아닌 게 아니라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불안'에는 조금 특이한 면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감정의 원인이 되는 대상이 딱히 없다는 점에서 말이죠.


이를테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나를 무섭게 하는 원인이 명확합니다. 


엉망인 보고서를 들고 성격이 불 같은 상사에게 보고해야 된다던지, 실적이 전혀 없는데 인사평가를 받아야 한다던지, 퇴직 후 미래가 막막하다던지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런 두려움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명확합니다.


분명한 원인이 있기 때문에, 개개의 원인에 맞는 실질적인 해결방법을 도출해내면 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상사에게 먹힐만한 변명거리를 생각한다던지, 아니면 자기 계발에 집중할 수도 있고, 제2의 직업을 준비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구체적인 원인 혹은 대상이 없는, '왜인지 불안'한 감정에는 대처하기가 대단히 곤란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기는지 조차도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불안을 일반적인 다른 감정들과는 명확히 구분했던 것이죠.




그런데, 중요한 점은 하이데거는 이 불안이라는 근본 기분을 마냥 부정적이게 보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사람만이 스스로 존재 이유에 의문을 던질 수 있고, 그로 인한 불안을 통과하면서 결국에는 승화로 나아간다고 생각했죠. 근본적인 불안을 통해 참된 인생을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불안과 고민을 통해, 일종의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비슷한 상태에 도달하면 우리는 비로소 이 근본 기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주어진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일 있게 된다는 거죠.


멋진 말이긴 한데, 너무나 철학자다운 해답이죠? 실제로 지금 당장 불안과 불면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들에게 바로 와닿는 해법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데거의 생각은 충분히 숙고해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적어도 매일 밤 엄습하는 불안이라는 것이 나에게만 찾아오는 건 아니라는 점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태생적인 문제이고, 나한테만 발생한 '고장' 이 아니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됩니다. 적어도 불안 때문에 안절부절못할 필요는 없는 거죠.




물론 당장 불면의 밤에 시달리고 있는 J에게 하이데거가 내려줄 수 있는 실질적 처방은 '어쩔 수 없어' 정도일 겁니다. 뭔가 무책임해 보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어쩔 수 없다'라는 말만큼 위로가 되는 게 없어요.


실제로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현대인의 고질적인 불안증이 그렇습니다. 


해결될 수 없는 일에 맹렬하게 달려들다 보면 문제는 악화되기 마련이에요. 오히려 어떻게든 해결해야 된다는 날카로운 생각이 불안을 더 심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란 것은 대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할 때 더욱 불안한 법이에요.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도 성숙한 태도입니다.


어느 늦은 밤, 불안이라는 커다란 감정이 찾아왔을 때, 그 감정을 친숙하고 부드럽게 대해 보세요.


아, 이 감정은 나를 좀 더 성장시키고, 내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줄 원동력이 돼줄 거야. 하면서 말입니다. 


마법 같은 극적인 일이 벌어지지는 않더라도, 분명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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