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원숭이가 무작위로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첫 '글자'(단어 말고 알파벳)를 우연히 제대로 찍는 경우의 수는 1/26이고, 두자를 우연히 맞게 찍는 경우는 1/676(26x26)이다. 글자 수가 늘어날수록 가능성은 가히 천문학적으로 줄어들어서, 무작위로 타이핑을 해서 언젠가 셰익스피어의 작품 하나를 우연히 다 찍어내는 경우의 수는 몇 장의 종이에 다 쓸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무한대'는 아니다.
무한대를 기준으로 하면, 원숭이가, 그리고 그대와 내가 무작위로 두드린다 할지라도, '언젠가' 로미와와 줄리엣을 찍어낼 수 있는 것은 '가능'하다.
'무한대'는 '무한'대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대 크기의 우주에서 무한개의 행성이 있는 우주에서는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의 수뿐이 아니라, 바로 '우리와 똑같은 인류가 살고 있는' 행성도 존재할 뿐 아니라, 무한대이다.
따라서, 내가 이제부터 기록하는 각 평행우주는 '공상'이 아니라 2021년 10월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무한대의 평행우주 중 몇몇의 절대 사실이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갈림길을 만나고, 여러 가지 중 선택을 해야 하고, 크고 작은 결심을 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우리의 우주는 평행으로 갈라져 나간다. 이 결정들은 종종 전반적으로는 삶에 별 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다시 중심 언저리의 가닥으로 수렴되지만, 다시 또 다른 선택을 하면서 복잡한 모양을 엮어나가게 된다. 이는, 마치 실 하나로 시작해서 계속 더해지고 다시 겹치고 갈라져 나가며 조금씩 넓어지는, 마치 땋아 내린 긴 머리를 거꾸로 뒤집은 듯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분명 끝에 다다르지 않고 끊어진 가닥들이 있다.
내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우주,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의 우주는 내가 존재하도록 만든 여러 가지 변수에 관련이 있는 부분으로서는 의미가 있을 것이지만, 외려 내가 이미 죽어버린 우주는 내게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하나의 우주가 없어진다는 말, 혹은 하나의 도서관이 없어진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다.
나에게 없는 것은 남은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는 그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대개 우리의 크고 작은 선택으로 바뀐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적어도 '의식적인' 결정이 아닌 것들로 결정되기도 한다.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는 말로, 뭔가 우리 세상에 '우주적인 질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Shi* happens. 살다 보면 똥 밟는 수가 있다,
는 말로, 불가항력에 대한 변수를 인정하고 털어버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는 대체로(!) 후자 쪽이다.
내가 평행 우주를 기록하는 이유는 ‘가지 않은 길’이 아쉬워서가 아니다.
물론 어느 우주에서 나는 유명인일 수도, 큰 부자일 수도, 아쉬운 데로 자라면서 좋아하는 걸 잘 얻어먹고 자라서 지금보다 키가 좀 더 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지금 그럭저럭(!) 행복하고, 딱히 인생을 바꾸어놓은 ‘결정적인 순간’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 수많은 옵션 중에서 외려 제법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It could be worse.
*얼마든지) 이보다 못할 수도 있다.
쯤.
불가피하게 혹 '후회'할 것이 있다고 있더라도 (있다), 급기야 타임머신의 이야기로 이어지는, '돌아가 뭔가를 바꾸어놓고 싶다'는 생각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미국의 어느 조사기관이, 객관식 선택이 아니라 자유의견으로 '인류에게 하나의 신기술을 바란다면 써보라'라고 하자, 응답자의 무려 10퍼센트가 '타임머신'을 썼다는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 반면, 같은 연구는 동시에, 응답자가 나이가 많아질수록 타임머신이 무료 코로나 백신처럼 주어진 대도 별로 내켜하지 않는 것을 보이기도 했다고도 한다.
그 이유를 추측하자면, 젊은 사람들은 여기 조금 저기 조금 뜯고 꿰매고 닦고 조이고 기름 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쯤(!) 산 사람들은 아마도 바꾸고 싶은 것이 없다기보다는 (그럴 리가!) 그걸 바꾸는 것이 큰 그림에서는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걸 얻고 바뀐 시간을 다시 '앞날을 모르고' 살아내야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불안감에서 오는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영어 표현으로, '아는 악마가 모르는 악마보다 낫다 (= 다루기 쉽다)' 같은 것이랄까.
영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에서 보이는, '운명을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심오한(?) 논지는 차치하고, 도대체 그 시리즈가 5까지 나온 것을 보면 한 인간이 (사고로 =본의 아니게 ) '죽는' 방법만도 얼마나 다양하고도 많은가를 잘 알 수 있지 않은가. ( 4까지인 줄 알고 있었는데 세상에 지금 팩트 첵을 해보니 5이다!)
후회를 취미활동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도, '과거를 돌이킨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또한 위험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미국의 원조 정통 공상과학 소설가 필립 케이 딕스 (1928-1982)의 단편, “A little Something for Us Tempunauts’ (맥락상 ‘우리 시간여행사에게 남은 소중한 선택’,쯤으로 번역할 수 있겠다)에서 몇 명의 템퓨넛(우주항공사 astronaut에서 temp시간을 붙여 만든 말로 tempunaut-‘시간여행사’) 은 본인들의 사망으로 이어진 사고를 막아보려고 몇 번이고 시간여행을 하다 지쳐 스스로 그만 두기를 결정하고, 스티븐 킹의 총 5권에 달하는 ‘다크 타워’ 시리즈도 ‘잘할 때까지’(?) 반복하는 지옥 같은 여정을 상징하는 것이 바로 다크 타워이고, 러시아 영화 ‘조하의 비밀’ 역시, 인류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 비밀의 두루마리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때까지 시간여행을 반복하는 남자의 이야기이며 (딱히 러시아 사람들이 인류의 운명을 걱정할 때는 아닌 것 같지만), 최근 샬리즈 테론이 주연한 미국 영화 ‘The Old Guard 더 올드 가드’도 죽고 싶어도 죽어지지 않는 자들의 비참한 운명을 논하지 않는가.
사실은, '우리의 삶은 대개 우리의 크고 작은 선택으로 바뀐다.'는 위의 문장은 전혀 의미가 없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해서, '나'라는 존재가 있거나 있었던 모든 우주 중 내가 주목하는 가장 초기의 평행우주는 아직 나에게는 '선택'의 능력이 없는 와중에도 갈라져 나왔으니까.
이미지 출처 : https://www.inverse.com/science/parallel-universe-clai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