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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우주 #αKT-D34-23A-BK2T-DJ877-4085-5UUT96Zb-yt56∞Ω
이 우주는 198x 년 겨울에 갈라져 나왔다.
아버지가 반대하시는 걸 엄마가 상담교사로 번 돈으로 혼자 밀어주셔서 시작한 재수 끝이었다.
가령 아버지 출퇴근 하실 때 우리 모두 현관으로 달려 나가 나란히 서서 인사를 해야 했고, 혹 꾸중이라도 들을라치면 무릎을 꿇고 있던 다리가 저려서 일어나다 쓰러지도록 제법 엄한 '가정교육'을 주창하던 집의 규칙(?)을 깨고 나는 아버지와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마주치는 걸 피했고 아무도 그런 나를 건드리지 못하던 일 년이었다.
이날 엄마는, 아직 발표일자가 아닌데도 이미 발표를 한 학교가 있다는 말에 계속 통화 중인 합격자 확인 센터로 끊임없이 전화를 하고 계셨고, 이층 내 방 전화기까지 끊임없이 울어댔고 (옛날 아날로그 전화는 연결된 한 전화로 전화를 하면 다른 선도 따릉 따릉 울렸었다), 나는 -아직도 철없이- 성탄절이라도 좀 지나고 결과를 알았으면 싶어서 원망스럽고 미칠 것 같아 방석을 머리에 둘러쓰고 있었고, 잠시 후 집은 조용해졌다.
이 우주에서의 내 남동생은 이층 참으로 뛰어 올라와 '누나 붙었대!'하고 아직 변성기의 흔적이 남아있는 목소리로 외치고 내려가는 대신 칙칙한 분위기 봐서 '알아서 기고' 있었고, 나도 뛰어 내려가 엄마에게 확실하냐고 묻고, 엄마의,
"이거 봐, 니 이름 이게 내가 받아 적은 거야. 번호를 대니까 그 여자가 니 이름을 대길래 나도 모르게 받아 적은 거야. 맞아!"
말에 종이쪽지를 받아 들고 마치 거기 뭔가 답이 있는 듯 들여다보는 일 따위는 없었다.
그래도 순전히 다시 내 귀로 다시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몰래 두 번이나 전화를 해보는 대신, 나는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번 전화를 걸어본 후 다시 학교에 직접 가서 확인했고, 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은 없었다. (당시는 발표 예정일보다 주로 조금 이르게 발표하는 전화확인과는 별도로 발표 예정 당일날 학교에 종이에 프린트도 아니고 큰 종이에 손으로 합격자 번호를 써서 붙인 명단이 붙었다)
이 우주에서는, 기분 좋게 방 한가운데로 끌어다 놓은 침대 속에서 마음 놓고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있는 내 방으로 아버지가 올라오셔서는,
"아이고 얼마나 잘 되었는지 모른다"
고 머뭇거리며 축하를 하시고, 그러니까 나는 또 공연히 다시 서러움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미안하기도 해서 나의 '착한 자식 파업'(?)을 거기서 끝 내는 대신, '내 그럴 줄 알았다'는 아버지의 차가운 얼굴이 있었을 뿐이고, 나는 일껏 나를 믿어준 엄마를 볼 낯도 없다. 재수도 겨우 했는데 삼수는 말도 안 되고, 떨어지면 같이 집 나가자던 친구들 중 하나 역시 배짱지원을 해서 떨어졌지만 며칠 후 기적적으로 추가합격이 되어서 (라테는 전기, 후기, 전문대로 나뉘어 한 번에 딱 한 학교 과 세 개 지원이었기 때문에 추가 합격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나마 최후 낙방은 나 혼자였다.
나는 대학입시에 실패한 우주 중 하나에서는 그 분홍신을 신고 계획대로 '집을 나갔다.'
그리고, 그 삶은 아마도 실제로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갈라져 나간 우주는 유난히 우수수수 많다.
대학낙방 자체는 개인에게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겹쳐서 다른 어떤 사건보다도 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서글프지만 한국은 학연 지연으로 많이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의 나는 이 글을 쓰는 세상에서의 나와 어울리는 사람들도 전혀 '다르고', 사는 곳도 사는 방식도 주어지는 기회도 '다르다'. 위로 올라가도 끝이 없고 아래로 내려가도 끝이 없는 세상에서 꼴에 우열을 말하는 게 아니라, 대학이 다라는 것도 아니라, ( 세상의 무엇이 '다'인가) 그저 나는 이 세상을 잘 모른다는 말이다.
이만큼 살면서 세상의 많은 이국적인 음식을 많이 먹어본 지금도 엄마가 해주시는 밥만 먹다가 고등학교 들어가 처음 쫄면 맛을 보았을 때의 그 쫄깃한 식감과, 대학교 들어가서나 처음으로 먹어 본 입에서 살살 녹는 순두부의 식감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듯, 모든 ‘경험’이라는 것은 ‘체감’이고 나에게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 모르는 것에 대한 상상도 어렵지만, 아는 것을 배제한 세상에 대한 상상도 어려운 탓일 게 디.
모르는 곳에서는 방황을 할 밖에 없다.
그래서 이 우주는 아직도 내게 무한히 열려있다.
열려있다는 것은 무한의 '가능성'이기도 하지만 무한의 실패와 좌절도 의미하기에 나는 이 우주가 들여다보기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정해진 결과(팔자?)는 없을지 몰라도, 개인 성품과 성향이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는 방향, 수순이라는 것을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무엇을 '억지'로 하거나 '흐름'에 역행하는 수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행동조차 개인의 성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되면 되게 한다'지만 애초에 그런 성향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도 중요하고, '사람일 마음먹기 달렸다'지만 누가 그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도 다르다. 사람을 죽여서 살인자가 아니라 살인자가 사람을 죽이는 거라는 범죄심리학자의 말처럼, 애초에 뭔가를 억지로 하는 사람과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다.
우리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의 작고 큰 노력이 무의미해질 것 같으니까 그렇겠지만 그 작고 큰 노력조차도 할지 안 할지는 누구에게 달려 있는가. 뇌수술이나 호르몬 조절로 성격이 바뀌는 인간이, 아니 맛있는 걸 먹기만 해도 세상이 달라 보이는 인간이.
그래서 때로 나는 멈칫한다.
'모든' 일에 이유가 있는 게 아닐지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의 작고 큰 행동은 큰 흐름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모든 건 흘러가는 물 위로 완전히 무작위로 던져진 풀잎 같은 것이고, 강이 흘러가 모이는 곳은 다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
그래서 이 평행우주에서도 나는 뜻밖에 많이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아니, 어떻게 어떻게 해서(?), 조금 다른 기억을 가지고, 그러나 이 순간쯤에는 정확히 똑같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현 기준우주에서 나는 대학 선지원 제도 첫해에 재도전을 했던 세대다. (제도가 너무 자주 바뀌었고 아이가 한국에서 대학을 안 나다녀서 이게 언제 끝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같은 교실서 시험을 본 학생들끼리 경쟁을 하는 것이었고, 나중에 합격자 발표가 나고 오리엔테이션을 갔더니 다른 아이들이 나를 모두 빨강부츠로 기억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 바로 그 물려받은 낡은 빛바랜 분홍부츠 말이다.
당시는 여자는 재수를 별로 하지 않던 터라 대부분의 아이들은 '학생들'이 신는 신을 신고 왔는데, 나는 쉬는 시간마다 천하에 쿨하게 '빨강'부츠를 신고 (굽을 갈았으니!) 또각거리며 다니더라며.
이번에도 망하면 큰일인데, 싶어 내심 불안에 덜덜 떨고 있던 내 안의 내가 보이지 않았던 게다.
나는 이때 시험을 마치고 돌아와 답도 맞추지 않았고 ( 선지원이라서 어차피 잘 봤거나 못 봤거나 '그 아이들' 5명 중 4명만 제치면 되는 싸움이었어서 그랬던 거라 지금도 나는 학력고사 몇 점 맞고 대학 간 줄 모른다. 서울대 갈 실력이었다 -그렇다 서울대가 아니다- 한들 의미 없고, 형편없었다 할지라도 배 째. 들어갔어), 같은 맥락으로(?) 나는 그 전년 고등학교 졸업식도 가지 않았다. 이미 3년 정근상장은 발부되었고 (고질적인 편도선염으로 1학년 시작하자마자 덜덜 떨면서 하루를 버틴 다음날 이미 결석을 하루 한 상태였다. 한 번씩 편도선염으로 고생을 했는데 어쩐지 나이 든 후로는 편도선염에는 걸린 적이 없고 20대 말까지는 코피도 하루에 몇 번씩 쏟았는데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배 째.
요즘에는 그냥 직장이 가까운 곳으로 옮겨 나오거나, 심지어 부동산 투자로라도 독립을 하는 것이 별 일도 아닌 것이 된 모양이지만, 나는 배우자와 삶의 다른 장을 열게 되기라도 해야 '집을 나오던' 구세대이기도 하고, 내가 아무래도 조금(?!) 멀리 떠나온 사람이라는 이유에서인지 나는 '집을 떠난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우주와 여기서 갈라져 나간 나를 생각하면 삶이 망가졌을까 걱정하기보다는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다.
아무리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더라도 떠난 사람은 떠난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아니까.
그러나 다음의 우주는 내가 아니라 내 삶의 중요한 사람 하나가 우리 집에서 사라진 우주이다.
그림 : The Swing - Jean-Honoré Fragon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