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조니가 생기지 않은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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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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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우주는 1990년대 중반 봄에 갈라져 나왔다.


나는 아직 대학 4학년이고 에코는 졸업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우리는 에코의 봄학기 대학원 합격자 발표를 보러 안암동으로 향하고 있다.

택시 뒤좌석에 앉아서 오른쪽 사이드 미러로 비쳐 보이는 운전석 옆자리 에코의 얼굴이 세상에 어찌나 글자 그대로 걱정으로 오만상을 찡그리고 있는지, 그전에는 가끔 철없다고 생각하던, 항상 밝고 근거 없이(?) 자신 만만하던 모습이 다 그리울 지경이었다.

그 우주 속에서의 그는 결국 낙방을 했고, 며칠 전 만나 얘기한 데로 우리는 발표 며칠 후 2년 여의 만남을 정리하고 헤어졌고, 그는 울었지만, 대학졸업 후 제때(?) 순서대로 시집을 가게 되어있는(우리 페미니스트 동지분들이여, 누구나 나 때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구시대적인 당시의 사회적 요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은 분명 내 과오지만, 우리 집 가정 사정과 형편상 우리 자매는 모두 '어떻게 해서라도' 집을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컸다는 것 정도는 이해해 주세요) 우리 집 사정으로 내가 군대 (당시) 3년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를 순순히 보내주었고, 그렇게 다시는 전화연락도 없었고 만나지도 않았다.

나는 그와 헤어진 후 이 남자 저 남자 소개를 받아보다가, 내가 좋다면서도 내가 '싫어하는 것을 안 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던 한 남자가 집, 학교, 직장 앞으로 쫓아다니며 죽자고 매달리는 통에 거절하면 무슨 일을 저지를까 무섭기도 하고, 그것도 사랑아겠지 생각하며 그냥 정착을 했고(!),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는 데로 결혼을 했다. 때때로 싫었던 이유가 불거지면 나는 때때로 후회도 하지만 완벽한 결혼이 어디 있겠는가 생각하며 살아간다. 나는 아들이 하나 있고, 아들은 '여러모로 남편을 닮은,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서' 아빠와 더 가까운 편이다.

남편은 전공도 살리지 않고 내 뜻을 무시하고 친구 따라 일확천금 사업에 손을 대다가 사장이 부도를 내고 도망가는 바람에 관련분야에 신용을 잃고, 그저 친구 사업을 돕는 정도의 일만 하고 있고, 나는 번역을 해서 함께 가계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딱히 불행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나를 잡지 않았던 에코를 떠올리고, 나를 잡지 않는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것이 내게 안전’한 느낌을 주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지금 남편이 그렇게 '사랑'을 호소할 때 사실 그게 약간 위협적으로 느껴졌었고, 그래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자’는 생각에서 결혼을 결심했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다는 메시지는 뜻밖에 상대방에게 바람직한 것이 아니기도 쉽다.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 혼자서도 잘하고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결혼해서도 잘 산다는 말이 있듯이, 살면서 때때로 서로 기대어 갈 수 있는, 의지가 되는 상대는 모순적으로 아마도 ‘서로가 없어도 잘 살’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처음 에코를 소개해 준 선배 소식통으로 들은 바에 의하면 에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군대를 다녀와 취직하고, 이렇게 저렇게 소개받아 만난, 선배 말로는 '어딘지 나를 닮은 듯도 한' 여자와 수월히 결혼도 하고 그럭저럭 직장인으로 잘 살고 있다. 천성이 무르고 낙천적인 그는, 여기서 갈라져 나간 또 다른 우주에서는 이 우주에서처럼 계획한 데로 오래 걸리는 공부를 버텨내지 못하고 괜히 친구나 동생의 꼬임에 넘어가 사업을 벌였다 망하거나, 편법 이민을 도모하거나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우주에서만큼은 다행히 평탄하게(?) 잘 살고 있다. 아이는 둘이라나. 성별은 모르겠다.

알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에코는 어딘가에서 살아갈 것이지만 이 우주는, -8을 제외하고는 얼마든지 현 우주에서의 내 아이, 조니가 없게 만들 수 있었던 모든 우주 중 마지막 우주다.

그리고 그런데도 이 아이의 존재를 모르는 내게 어딘가 그 아이의 빈자리가 있는 우주다.

거의 만날 뻔했던 사랑하는 우리 조니가 없는 자리를 내가 모를 수가 없다.




나는 현 기준 우주에서 이때 실제로 에코와 헤어질 궁리를 진지하게 했었다. 고작 대학원 떨어진 것을 '뒷바라지' 못 하고, 고작 군대 2년 반을 (당시는 3년에 이런저런 할인?을 받으면 2년 반 정도였다) 못 기다리고 그랬다고 '나쁜 사람'과에 들어갈지 모른다. 그리고, 사랑은 한 거냐고 물을지 모른다.

사랑?

흠. 사랑.


수많은 사랑 노래만큼이나, 그 노래 가사만큼이나 사랑에 대한 '학설'(?)은 많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류근 작사)다고 김광석은 탄식했고, 민경훈은 아프니까 사랑이죠(강은경 작사)라고 호소한다. 임영웅은 별빛 같은 나의 사랑 (설운도 작사)을 노래하고, 누가 사랑은 향기로운 꽃보다 더하다고 그랬(박동률 작사)냐며 남궁옥분은 불평의 목소리를 높인다.


사실, 결국 그때 대학원 합격 후 결혼하기로 하고서도 1년 정도 시간을 포함 연애기간 3년 동안 가령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날 때마다 나는 이별을 가차 없이 고려했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바로 그 반대의 이유였다.

일단 결혼을 하면 남은 평생 함께 할 사람인지를 확실히 해야 했던 것뿐이다. 어차피 제도일 뿐인 결혼이란 걸 반드시 '해야 하는' 것도 절대 아니고, 살다가도 반드시 헤어질 일이 있으면 헤어져야 하니 이혼이 낙인도 아니지만, (내 아이에게도 늘 미리 해 두는 말이다) 그래도 한번 내가 '당시' 내가 가진 칩 (칩은 살다 보면 또 쌓이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니까)을 다 밀어 넣어 올인을 했으면 끝까지 잘 살고 싶었다. 우리 집에서 가운데 낀 잉여의 존재로서의 나는 평생을 갈, 무조건 내편, 내 짝, 내 친구 하나를 찾고 싶었고, 또 그런 아이를 낳고 싶었고, 그래서 누구를 만나든 감정으로든 조건상으로든 행복한 결혼의 가능성이 없으면 가차 없이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대학원을 붙고 결혼을 했다고는 하나 결혼을 하고도 에코는 10년을 더 가난한 '학생'을 했고, 그래서 나름대로 우리는 오래 경제적으로 힘들었고, 그래도 참으로 행복했다. 지금도 이른 아침 강의가 있는 날 내가 일어나기 전에 꼭 아침인사를 적어놓고 나가고, 매일 나갔다 들어오면 꼭 내 얼굴을 보고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가는 이 사람을 생각하면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괜스레 눈물이 나기도 하는 (이 사람도 가끔 나를 생각하면 그렇다고 한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살리기 위해 골수쯤은 기꺼이 뽑아 줄 수 있지만 (혈액형이 안 맞아서 다른 장기는 안타깝게도 주고 싶어도 못 준다), '정신이 나갈' 정도로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 건 아니었나 보다. 그냥 '때가 되어' 결혼을 했다고 해서 나도 별 수 없는 가부장제 부역자라고 하면 그렇다, 할 말이 없다.


언젠가 '사랑은 돈이고 시간'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고 백 프로 동감했었다. 말뿐이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얼마나 기꺼이 '나누는가'를 본다는 말이다. 성적인 대상에의 사랑은 결국 정욕이라는 말도 기꺼이 동감한다. 결혼이나 동거, 동반은 시간이 가면서 드러나는 인성으로 '지켜지는' 것이지만 애초에 만지고 싶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고, 이따금 비극으로 이어지는, 사랑으로 착각하는 동정이나 연민, 집착이나 도착 등 많은 감정은 사랑이 아니기도 하다.

사랑은 행동이다.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고 그래서 몰라도 할 말 없어야 한다. 혹 알아서(?) 알더라도 알아챈(!) 사람의 덕이지 모르게 준(?) 사람의 덕은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뻐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을 즐기지만 그것이 장기적으로 나를 너무 힘들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하나 덜먹고, 조금 덜 가지고, 조금 더 무거운 걸 들고, 조금 더 멀리 가주는 것이 대단히 힘들지 않고 때로는 내가 좋은 걸 더 가지는 것보다 더 기쁘지만, 즉, 내가 조금 '순간적'으로 믿지는(?)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만족도로 인한 나의 기쁨 대비 효용의 한계치가 있다는 말이다.

미셀 오바마가 말했듯이, 결혼이 50/50이라고 생각하면 실망한다. 누군가는 희생을 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한쪽이 믿지기만 하는 장사(?)는 망한다. 내가 위에서 내 골수를 기꺼이 빼준다고 말했지만, 그건 바로 그 사람도 내게 내가 그의 간이 조금 필요하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언제, 얼마나?"라고 물을 것에 백 프로 확신을 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국은 가족이라도 장기기증을 할 때 조금이라도 본인의 의사가 아닌 것 같으면 법으로 심사대상에서 즉시 제외가 되게 되어있다 - 무슨 이유로든 의심이 되어 한번 제외되면 절대 물릴 수 없다!- '자식 된 도리'로, '형제니까'라는 이유로 '당연히'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사랑이 의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나는, 나의 골수 수여 가능자의 머리를 잘라준다.

미국 와서 가난한 학생시절에 생활비를 아껴보려고 서툴게 시작한 것이 이제는 익숙해져서 20년이 넘도록 미국에서는 미용실을 전혀 가지 않는다. (한국에 가서는 우리 둘 다 한국 미용실의 훌륭한 서비스를 즐기러 최대한 자주 다닌다) 예전에는 에코가 보는 티브이를 같이 봐가며 여유 있게 자르기도 했지만, 이젠 노안이 심해져서 먼 것 가까운 곳 번갈아 보는 게 힘들어 블루투쓰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머리만 보고 깎는데, 앞머리를 손질하고 옆머리 길이를 갸웃갸웃 길이를 맞추고 있으면 에코는 티브이를 보다가도 내 눈을 마주치며 찡긋찡긋 빙글빙글 장난스러운 얼굴을 하고, 다 자르고 나서 보드라운 솔로 꼼꼼히 어깨와 얼굴을 머리카락을 털어낸 다음 신문지 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둘둘 감아 버리다 보면 세월이 가며 흰머리가 늘어가는 것도 보인다.

다 자르고 나서, 가운은 에코가 머리를 감으러 들어가 빨고, 나는 높은 의자를 치우고, 바리깡 코드를 뽑고, 청소기를 돌리고, 그러고 나면 몇 푼 돈 아끼자는 게 아니라 이제 눈이나 몸이 힘들어서 내가 못 할 날이 오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 나라라도 구한 양 마음이 퍽 좋다.

둘 다 희끗희끗 우리의 시간은 이렇게 함께 간다.


사랑은 희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모든 관계는 주고받는 것이고, 가족 포함 어느 한쪽이 기울면 그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나는 나만 좋기보다는 '모두'가 좋아야 행복하기 때문에 늘 모두를 살피는 천생 '가운데 태어난' 아이지만, 마찬가지로 '나를 포함한 모두'가 좋지 않으면 '다' 좋기 어렵다.

나는 무려 이것이 '옳다'라고 생각하지만,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그저 나다. 내 생각은 내 생각일 뿐이고 정답은 아니다.




이런 지금의 내가, '저런' 혹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이런' 사람이 되도록 만든 것이 '모두' 나의 의지로 결정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나의 크고 작은 경험과 결정 중, 어느 정도 크고, 어느 정도 작은 부분이 다시 다른 것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며, 더 나아가, 어느 '정도'가 큰 것이고 어느 정도가 '작은' 것인지 조차 당시에는 알 수 없다.

이런 부분을 생각해 볼 때 주로 거론되는 '나비효과'가 작은 일이 큰일이 될 수 있다는 양적인 개념이라면 새옹지마는 질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운수 좋은 날'처럼 당장은 좋은 일인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그렇지 않았던 일들,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따금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묻혀 지나간 얼핏 사소한 일이 살면서 두고두고 생각 키고 되살려지고 살면서 의사결정 전반에 영향을 주게 되는 일이 있다.


다음에 들여다볼 우주 둘은 각기 다른 시기에 갈라져 나갔지만 지금은 서로 닮아있고, 처음에 말했듯이 때로는 수렴하는 '땋음'에서, 그리고 나의 조신의 꿈에서의 '공명'처럼, 우리의 모든 평행 우주는 커다란 고리로 한 덩어리로 굴러가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그림 : Goodbye, 1892, Alfred Guill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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