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평행 우주 #αKT-D34-23A-BK2T-DJ877-4084-SW1S76-54TGV88-dogcatn21KV54Ω
이 우주는 199*년 8월에 갈라져 나왔다.
나는 어느 작은 산부인과에서 거의 3일 동안의 난산 끝에 아이를 '순산'하고는, 피를 너무 흘렸고, 피를 사러 보낸 아이 아버지도, 아이 옷을 가져오라는 핑계로 집으로 보낸 엄마도 없이 싸늘한 분만실에 혼자 남아 결국 죽고 만다.
고작 스물 여덟 인 대학원생 젊은 아버지가 혼자 아이를 키우기는 힘들었을 테니 시댁에서 추진한 사람과 딸아이를 데리고 금세 새장가를 간 우주도 나왔을 것이고, 어려서 배 타고 나간 신랑을 몇 달이고 기다리는 삶이 버거워 낳아놓은 아들을 젖을 뗀다는 핑계로 시가에 놓고 친정으로 가 사실은 아이를 버리려고 시도한 경력이 있는 시어머니는 딸손자쯤은 가뿐하게 외갓집에 맡기게 하고 아들만 새 장가를 보낸 우주도 나온다. (이걸 애 아버지가 동조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또 다른 이야기인데, 거의 30년 전의 당시 한국의 분위기로 봐서는 그랬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버려진 아이를 친정식구들이 돌보았을 것인가가 또 다른 의문이라면, 나는 그들이 '그 정도는 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우주에서 우리 아이는 나를 모르고 자란다.
그래도 잘 자랐을 것이다.
조니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이 아이의 모든 장점은 내가 잘해서 있는 것이 아니고, 단점은 내 성향을 닮아 그런 것이니까 아이는 지금처럼 밝고 잘 자랐을 것이다, 내가 없어도.
누가 이 아이의 엄마를 하고 있어도 그 여자가 운이 좋을 뿐이다.
아이가 나를 모를 뿐.
그러니까 괜찮다.
내가 그걸 못 봐서 그렇지.
내 새끼.
바로 직전까지 힘을 주라고 하다가 갑자기 조용하더니, 이제 힘주지 말라며 간호사가 지혈을 위해 내 배를 눌러대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것은 몇 년간 악몽의 주 소재가 되었다.
그 개인병원의 의사는, 전날 밤 내가 응급으로 들어갔을 때 술자리에서 호출을 당한 거였고, 다음 날 저녁까지 거의 24시간 진통을 하고 있는데도 분만촉진제를 놓아주지 않았고, 다시 그다음 날 아이를 낳기까지 진통도 너무 오래 했고 아이도 커서 출혈이 심했다. 사태의 책임을 수습하려 병원에서 우리 가족에게 시도한 범죄은폐 시도(?)는 모두 사실이다.
그리고 '싸늘한 분만실' 또한 상투어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세상에 분만실에 에어컨을 어찌나 세게 틀었는지, 피를 흘려서기도 했겠지만 너무 추워서 몸이 덜덜 덜덜 떨렸고, 추우니 어떻게 좀 해달라고 하려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그냥 누워 고개를 돌려보니, 혼자 누워 울지도 않고 눈을 동글 거리고 있던 아이가 둘로 보였었다.
의사와 간호사에는 허둥거리며 연신 혀를 내밀어보라고 하고 눈을 까뒤집어 보고 있었고, 겨우 손짓을 해서 귀에 속삭이다시피 다리라도 좀 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의사는 피를 너무 흘려서 뇌에 피가 안 가면 큰일 난다며 그대로 두었다. 당시 들어와 본 남편의 말에 의하면 분만실은 피바다였다고 한다.
마침 여동생이 당시 남자 친구이던 현남편과 들러 피를 사러 대신 가지 않았으면 혼자 남겨질 뻔했던 것도, 그 바람에 신랑이 남게 되어 가족들을 일단 모두 제거하려던 시도가 무산되자 슬그머니 병원에 있던 아기 옷을 입혀 내놓았고, 그러니 엄마도 허둥지둥 집에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즉 내가 가족들에 둘러싸여 여하튼 죽은 우주가 있을 수도 있었지만, 어떻든 동생이 택시를 잡아타고 쌩하니 다녀와 건네준 제대로 냉장도 되지 않은 비닐봉지에 든 피 두 팩을 맞고 나는 살아났다. 혈액원에서 아이스 박스도 없이 왔다고 혼났다고 했다.
의사가 팔에 정맥주사 바늘을 꽂는데 간호사가 '보이세요?' 하고 묻던 생각이 나고( 노안이면 적어도 굶은 바늘로 남의 팔을 찌를 때는 알아서 돋보기를 낍시다), 팔에 차갑게 들어오던 피의 느낌과, 관에 한 방울의 공기가 흘러 들어오는 걸 지켜보면서, 혈관에 공기가 들어오면 안 좋다던데 하고 오지랖 걱정을 하던 것도 모두 어제처럼 생생하다.
수혈을 받고 있는 사이 비로소 엄마가 정신 차리고 퇴원하는데 쓰일 아이 용품을 가지러 가신 사이, 지금 잠이 들면 깨어나지 못할지도 모르니 못 자게 하라는 의사의 지시로 신랑은 자꾸 나를 깨우고 있었는데, 어지러운 가운데 문득 손을 뻗었는데 뭔가 따뜻한 것이 닿았었다.
둘둘 쌓여 간호사가 놓고 간 채로 울지도 않고 누워있는 아기였다.
내 아기의 손이었다.
그 해 여름은 아직도 기록이 깨지지 않은 최고기온을 기록한 지독한 마른장마의 해였고, 아이를 낳고 누워있던 병실에 비로소 촐촐 히 비가 내리고 그날부터 더위도 한풀 꺾였다. 나중에 작명소에서 지어 온 이름은 아이가 사주에 불이 모자라다는 이유로 불 화 변이 들어있는 이름에는 잘 쓰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나는 미신을 전혀 믿지 않지만 그 이름을 쓰기로 했다. 그 가뭄에 비를 내리게 한 아이니까.
물같이 맑은 아이니까.
내 새끼.
존 어빙의 책 중에 “A Widow For One Year” 에는 액자형 동화가 하나 나온다. 마루에 있는 문과 그 안에 무엇이 들었을지 두려워하는 아이의 이야기.
가끔 글을 쓰다 보면 어쩐지 자꾸만 피하고 싶은 얘기가 있거나, 반대로, 고장 난 레코드처럼, 혹은 시어머니 아들자랑처럼 자꾸 반복해서 ‘기어 나오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들은 마치 카펫 밑에 어딘가 자꾸 걸려 넘어지는 부분 같기도 하다. 바닥에 마치 숨은 문의 문고리가 있기라도 한 듯 있는지도 몰랐는데 마음이 자꾸 ‘켕기는’ 것이다.
Steve Rastic and Melanie Tem 부부의 ’The man on the ceiling’이라는 단편은, 공포물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모든 것의 상징으로서의 ‘천장에 매달린 남자’는 실제로 존재한다는,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야기를 쓴다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혼자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는지 모른다. 이른바 horror 호로 작가라고 하면 얼핏, 귀신 얘기 좋아하고 무서운 것(?)도 없는 사람들인 것 같지만 사실은 이들이 가장 인간 깊은 내면의 공포를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나도 생각해 온 일이다. 두려움의 대상을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자신 안에서 그것들을 두려워하는 원인을 알아야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공포물을 쓸 수 있는 것. 즉 잘 쓰인 공포물은 무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서운 것을 이겨내게 하기 위한 이야기들이다.
나는 어려서는 무서움을 많이 탔다.
그래서 어쩌다 집에 혼자 있는 날이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가 이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까 봐 무서워 고개를 내밀지 못하고 있었고, 엄마가 자칫 미리 말도 없이 외출하신 날 뜻밖에 빈 집에 먼저 돌아오기라도 하면, 그 뉴스 시간에 나오는, 몸을 따라 그린 그림들이 어느 방에 남겨져 있을 것 같아 덜덜 떨면서 이층 아래층을 누비고서야 마음을 놓았고, 천둥번개를 무서워했고, 어둠을 무서워해서 밤에도 불을 켜고 잤다.
식구들은 내가 무서워하는 것들보다 그런 나를 더 무서워했고 (죄송합니다), 야단도 쳤다가, 용돈에서 전기값을 제하겠다고 겁도 주었다가, 타일러도 보았다가 하는 엄마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던 것이다.
아이 낳고 나서 어둠도 천둥번개도 무서워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죽을 뻔하다 퇴원을 해서 일단 친정으로 산관을 하러 갔지만, 마침 엄마는 동생 결혼 준비로 바쁘셔서 나를 돌보기 힘드셨기에, 하필 이때 아이를 낳고 며칠 후 4주간의 군 훈련을 받으러 들어간 에코가 돌아오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하는데도 삼칠일이 지나 그냥 우리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당시 신혼살림을 살던 집은 작은 단독 주택이었는데 우리 아버지가 아이 물품이랑 우리를 태워다 놓고 돌아가신 그날 밤은 게다가 마침 천둥 번개가 무섭게 몰아쳤다.
집에는 아이와 나 단 둘.
그런데 말입니다. ( 김상중 목소리 )
아이에게 마지막 우유를 먹여 재워놓고는 불을 끄고 어둠 속에 누워 눈을 뜨고 있는데도, 세상에, 어쩐지 어둠이 전혀 무섭지가 않은 것이다!
아이 하나 내가 못 지키겠냐 (천둥번개로부터??),는 생각 반, 그리고 온전히 내 것인(?!) 내 아이가 곁에 있어 외려 든든하다는 생각 반, 그랬던 것 같다.
더 이상 나는 어디 가든 '혼자'가 아니었다.
갑자기 아무것도 무섭지 않은(?) 강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귀신같은 건 없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달까. 나는 귀신을 무서워해서 겁쟁이였던 게 아니라, 똑바로 바라보았으면 실체를 알았을 것을 그저 피하고 외면하는 방법밖에 모르는 겁쟁이였다는 것.
죽은 사람은 죽고 없지 아무것도 남지 않고 그저 그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내 아이에게 낳아 준 엄마가 없는 우주의 나는 무서운 것이 많은 사람으로 죽은 것은 조금 슬프다.
내가 없는 우주를 생각할 때 나의 기분은 회한 같은 것이 아니라 결국 삶은 한 우주에 한 바퀴 돌아갈 뿐이라는 생각이다.
내가 있거나 없거나 아이가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 기도 같은 것인가 보다.
내가 다른 집에서 자란 평행 우주의 나도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믿듯이, 하지만 그 우주의 나에게는 덕분에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우리 언니, 내 여동생, 내 남동생 모양의 빈자리가 있듯이, 그리고, 그 우리 아이가 없는, 있는 줄도 모르는 평행 우주에서 내가 가졌던 것 같은 우리 아이 모양의 구멍을 가지고 살아갈지도 모른다.
딱 내 모양의, 희미한, 흐린 날 드리워지는, 있는 듯 없는 듯한 그늘.
내가 그다지 몸집이 크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다음에 들여다볼 우주는 갈라져 나갔지만 지금은 서로 닮아있고, 처음에 말했듯이 때로는 수렴하는 '땋음'에서, 그리고 나의 조신의 꿈에서의 '공명'처럼, 우리의 모든 평행 우주는 커다란 고리로 한 덩어리로 굴러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림 : Rachel giving birth to Joseph Painting - Francesco Furi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