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이야기

by 숨은 연못

어쩌다보니 올해 중반부터 몸에 이상이 생겨 이적지 병원을 드나들고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엄청난 미국의 의료비용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백신 두 번에, 링거에, 씨티검사를 위한 조영제, 내시경을 위한 프로포폴에, 게다가 다른 검사들은 제외하고도 피검사만 8번을 하면서 종종 바늘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나는 ‘혈관이 좋다’는 칭찬(?)을 잘 듣는다.

주변에서 혈관을 못 찾아서 피검사라도 할 양이면 팔이 온통 멍이 들고 고생하는 사람도 많이 봤기 때문에, 피를 뽑기 위해 내 팔에 튜브를 감은 간호사의 얼굴이 이내 환해지는 것을 볼 때마다, 내가 뭘 잘해서 좋은 게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라도, 그리고 무엇이라도, 좋은 게 있으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바늘이라고 하면 시계바늘도 바늘이고 뜨게바늘도 바늘이니 한쪽이 가늘어지는 긴 것은 통칭 바늘이라고 부르게 되기도 하고, 채혈을 하거나 통증을 치료하는 속이 비지도 않고 귀도 없는 침 바늘도 있지만, 내가 떠올린 바늘은, 물론 액체가 통과하도록 속이 빈 주사바늘과 실을 꿰도록 귀가 끝에 달린 바느질 바늘이었다.


이 두 바늘들은 쓰임새가 전혀 다른 것 같지만 사실 딱히 그렇지도 않다.


처음 우두 백신이 실험되던 시기에는, 천연두에 걸린 사람에게서 긁어낸 고름을 실험 대상자에 낸 상처에 바르기도 하고, 코에 마마환자에게서 나온 딱지를 갈아낸 것을 불어넣기도 했다지만, 병균을 묻힌 실을 손가락 새에 꿰매 넣기도 했다고 하니, 처음 백신은 주사바늘이 아니라 바느질 바늘에 의해 이루어졌던 셈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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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와 검지 사이, 햇볕이 붉게 통과할 만큼 그 엷은 살집에, 피가 점점이 베어있는 무명실 가닥 두 세 땀은, 팔에 푹 찔러넣는 주사바늘에 비하면 시어인 것도 같고, 문득, 솔잎 pine needles이 떠올라 초록 잎과 푸른 정맥이 연상되면서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느낌이 들었기도 하다.


인도 등 일부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귀걸이를 위해 귀를 뚫을 때 먼저 실을 바늘에 꿰고 매듭을 몇 개 지은 후, 귀를 뚫은 바늘을 그대로 지나가게 한 후 바늘을 빼고 실 매듭을 구멍에 두었다가 피와 진물을 흡수하면 다시 다음 매듭까지 실을 지나가게 하는 것을 몇 차례 반복하는 방법을 쓴다고도 한다. (아픈 게 싫어서 귀를 뚫지 않은 내게도 이 방법이 제법 ‘타당’하다고는 생각되어서, 거의 바느질 바늘이 이 과정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해도 적절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오래전 아이를 낳고 출혈이 심해서 긴급수혈을 두 팩 맞으면서, 팔에 들어온 굵은 주사바늘을 타고 피가 들어오면서 느껴지던 서늘함이 생생하다. 적은 적혈구 수와 심한 저혈압으로 일부러 찾아간 적십자 센터와 헌혈차에서 헌혈을 거부당한 나로써는 그로부터 내 몸에 들어온 그 감사한 AB형 피의 주인들에게 빚진 마음이 한구석에 앉아 눈치를 보고 있지만. ( 더구나 AB형은 이기적이다. 자기는 다 받을 수 있으면서 AB형에게만 줄 수 있으니까)


주사바늘은 1844년 프란시스 라인드라는 의사에 의해 개발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바느질 바늘은 선사시대부터 심지어 금속이 있기 전부터 존재했으니 정확한 그 역사의 시작을 짚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사바늘과 달리 이 꿰매는 바늘의 기본 기능은 그저 두 장 이상의 무언가를 맞대어 붙이는 실용적인 것인데도, 주사바늘과 마찬가지로 그 끝이 가늘고 뾰족하니‘위험’의 이미지를 먼저 불러오기도 하는 가보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저주받은 공주는 물레바늘에 손을 찔려 백년의 잠에 빠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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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불가사리 설화의 쇠를 먹고 사는 괴물 불가사리가 처음 삼킨 것은 항상 우리 주변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쇠로 만든 물건, 바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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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이 이야기를 처음 읽은 나는, 밥풀로 대수롭지 않게 빚은 것이 괴물이 된다는 것도 무서웠지만, 나중에 더 큰 것을 삼켜대는 괴물이 되었을 때보다 그 날카로운 바늘같이 생긴 것을 삼키는 존재라는 것이 더 섬뜩했던 기억이 난다.


또한, 한국말,‘바늘방석’에 담긴 이미지처럼, Needle을 동사로 쓰면 못살게 군다는 말이고 on pins and needles 은 매우 불안해 한다는 뜻이며 (쥐가 났을 때도 쓴다), a needle in a haystack은 비슷한 모양을 가진 바늘을 지푸라기 속에서 찾는 것만큼 찾기 어려운 것을 말힌다. 통을 구슬통에서 찾는 것과는 다르다. 마구 손갈퀴질을 하다가는 자칫 다칠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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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실을 꿰는 곳, 한국말의 바늘’귀’는 영어로는 eye눈인데, 입도 아니고 사실 둘 다 뭔가를 ‘넣기’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어쩌면 바늘의 귀도 애초에 속이 빈 주사바늘처럼 그렇게 뭔가를 ‘넣어 두는’ 것이 아닌, 사물을 담아 보고 소리를 담아 듣는 정도의, 무엇을 ‘지나가게 하는’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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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르는’ 수단이 아니라 실을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


살아온 시간들이 늘어나면서 내 몸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만큼 자연히 타인의 죽음이나 병 소식도 점점 잦아지고, 다른 것도 그렇지만 특히 ‘수술’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물론 수술을 해야 했던 애초의 이유와 정황도 마음이 쓰이지만, 아무리 ‘가벼운 수술’이라 할지라도 (가벼운 수술이란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 수술이라는 과정 전반이 관여하는 위험과 통증과, 몸과 마음의 회복에 들어가는 모든 시간이 나는 덩달아 아프다.

물론, 돈 세다 5만원권에 손 베어도 아픈건 아픈건데 부러 칼을 댄다는 것이 의미하는 ‘피할 수 없음’의 의미도.


하지만, 그래서, 나는 바늘에서 다시 위안을 찾는건지도 모른다.


바늘은 사실 모습과 기능이 아주 간단한 도구지만,

백신이나 약을 주사하고, 검사를 위해 피를 뽑거나 혹은 수혈을 하는 주사바늘과, 바느질 바늘 모두,

치료와 수술에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상처를 봉합하는 데도 여전히 쓰이고 있으니,

그렇게 바늘은 순간적으로는 뚫어 열지만, 좋은 것을 전달하고, 나쁜 것을 긁어내기도 하는 도구이고,

그리고 다시 닫아 치유하는 도구이니 말이다.

A-selection-of-needles-1-2-3-4-8-Larding-needles-hollow-and-split-proximally-to_Q320.jpg 다양한 수술용 바늘들


미움이나 걱정, 회한, 원망을 가지는 것은 주머니에 바늘처럼 뾰족한 것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것 같다던가.

문득 손을 찔러넣으면 다치는 것은 나 뿐인.

그러니,

끝이 보이지 않아 생각만해도 지치는 전염병과,

그로 인해 못하는 수많은 하고 싶은 일들, 수많은 가고 싶은 곳들, 만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적지 검사만 수천불을 쏟아 붓고도 아직도 원인을 찾지 못해, 의사들이 너무나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최악의 경우(?!!)의 수를 거론하는 나의 통증도,

오늘,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걸 일단 다하고 나면,

빈 것을 채우고 다시 내보내는, 혹은 실을 다 꿰어내고 나면 그만 놓아버려도 좋은 바늘처럼

단단한 곳에 가지런히 치워두고 나서야 하는 건가보다.


그러면 자꾸만 고개를 드는 날카로운 마음들도 가문비 나무 새순들처럼 피들피들한 연두 마음으로 새로 돋아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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