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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은 연못 Sep 22. 2023

하와이의 식물 이야기

8) 하와이 생태계(1)

하와이의 (그리고 아마도 대개의 열대의) 꽃들이 대개 생김새와 색이 때로는 과하게 화려하고 나무는 대개 무언가가 주렁주렁한 이유는 이런저런 학설 외에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는 듯 하지만, 인간이 꽃을 본능적으로 좋아하도록 진화한 이유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본능이라지만, 그 '아름답다'는 느낌을 꽃에게서 받는 이유) 꽃이 핀 자리를 알아두면 거기에서 음식을 얻을 수 있어라는 학설을 읽고 마음이 외려 든든해졌던 기억이다. 먹도 못할 꽃을 마냥 좋아라 하고 있을 때도 우리는 밥벌이(?!)의 본능은 잊지 않고 있는, 뭔가 으르렁이 남아있는 존재라는 느낌이었달까.


사람들은 나이 들면 꽃이 좋아진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나는 딱 원래 좋아하던 정도로만 좋지 나이 먹는다고 꽃이 더 좋아지지도 않고 괜히 애먼 꽃밭에 들어가 사진을 찍어대고 싶은 생각도 전혀 들지 않는 걸 보면, 그저 나이 들면 아이들 다 커서 떠나고 여유가 생기면서 정신 차리고(?) 주변을 둘러볼 기회가 더 생기고 그러다 보면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꽃도 보이는 것뿐이 아닌가 생각하곤 한다. 토끼보다 거북이가 더 길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 하지 않던가.

양희은 선생 말 따나 아이들은 지들이 꽃이고, 꽃보다 더 더 좋은 것들이 많게 바쁘게 살았던 것일 게다.


하와이의 모든 꽃과 나무를 여기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머무르는 동안 가장 자주 접하고 정들었던 나무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그대들이 하와이에서 물놀이하고 바다 보고 쇼핑을 즐기다가도 가끔 고개를 들었다가 우연히 '만나면 반가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Banyan tree


하와이에 산재해 있는 Banyan tree. 바냔나무는 부처가 해탈을 했다는 바로 그 보리수나무(정확히는 벵갈 보리수)로, 성장, 힘, 자기 성찰등을 의미한다.

Alaska의 키가 엄청난 spruce가문비나무의 거대함과 달리, 뿌리가 가지로부터 주렁주렁 뻗어 나와 옆으로 crown이 무한정 가로로 벌어져 나갈 수 있다고 한다,

지만 나에게 바냔나무는,

너른 공원 등에 따로 그늘막을 설치하지 않아도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서늘한 우물들이고, 나무 밑 공간은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 메워져, 파도 소리가 잘 안 들릴 정도로 제일 시끄러운 게 인간인 관광지에서도 이 나무 밑에 서면 아늑한 새소리 커튼 안에 들어와 잠시 쉴 수 있는 쉼터가 되어주곤 했다.


octopus tree


우리 라나이 Lanai(하와이에서 발코니를 이르는 말) 앞 문어나무 octopus tree에 (나무 이름은 나뭇잎 난 생김새를 보면 설명이 필요 없다고 더 긴 설명을 한다) 어느 날 꽃방망이가 피어오르더니 벌과 갖은 새들이 자주 찾아오는 걸 보니 꽤나 달콤한 게 많은 꽃인가 싶었다. 그래서 안경을 쓰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특히 햇살이 뜨거워지면 꽃봉오리에서 달콤한 꿀이 녹아 나와 가지에 맺힐 정도였다!


알래스카의 우리 집에는 발코니 처마에 새 먹이를 사다 달아놔도 아무도 안 와서 시무룩하던 차에 이것도 호강이라, 공부하고 책 읽고 글을 쓰다가도 한 번씩 넋을 잃고 새들을 바라보았었었는데, 그렇게 한 달 정도 장사(?)를 하더니 어느 날 그만 가게 문 닫고 치워버렸는지 새도 벌도 더 이상 찾으러 오지 않았다. 아마도 수분이 필요할 때만 쓰고 버리는 모양이니, 정주고 사랑 주고 마음도 줬지만 그대는 나를 두고 떠나가느냐! 아~~~~ 얄미운 사람, 아니 얄미운 나무다.


Rainbow shower tree

나무 키가 커서 멀리 서나 꽃이 보여도 그 밑을 지나다닐 때는 꽃이 있는 줄도 모르다가 바람이 불면 우수수 색색의 꽃봉오리와 꽃잎들이 떨어져서 올려다보게 하는 이 나무 이름은 Rainbow shower. 노랑꽃이 열리는 Golden shower과 붉은 꽃이 열리는 apple blooms 이 자연 교배되어 한 나무에서 색색의 꽃이 열리는 ‘완벽한’ 나무가 되었단다. Wild rose나 bougainvillea처럼 꽃이 처음 피었을 때는 진한 색이다가 자라면서 색이 점점 옅어지는 꽃나무들은 알았어도 거짓말같이 노랑부터 빨강까지 색이 제각각인 나무는 처음이다.


무지개 꽃, 꽃 무지개


Monkeypod.

4차선을 덮는 나무의 크기를 보이기 위해 차가 지나갈 때 찍었다.

호놀룰루 전역에서 종종 보이는 Mokeypod.

한 나무의 Crown이 길 건너까지 그늘을 드리우도록 크게 자라는 나무에는 부챗살 모양의 깃털 같은 분홍색 꽃이 지고 나면 조롱조롱 열리는 씨깎지가 원숭이 귀걸이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우이에 있는 나무 하나는 무려 1 에이커를 덮을 정도로 크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 오기 전에 한번 이 나무를 보거나 가볼까 했었는데 그만 화재가 나서 포기하고 말았지만.  

마우이에서 유명한 바냔 나무도 화재에 피해를 입었지만 살아남았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 나무 얘기는 따로 안 하는 걸 보니 건재한가 보니 다음에 가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Palm tree

와이키키를 걷다 보면 물론 야자수가 흔하지만 코코넛은 열려있지 않다.

하와이 포함 '열대의 풍경'에 없어서는 안 되는 팜 트리(코코넛트리)는 내가 본 것만도 서너 가지는 될 정도로 여러 종류고, 와이키키 근처의 가로수용 코코넛 트리(?)에는 사람들 머리 위로 코코넛이 떨어질까 우려하여 코코넛이 열리지 않는 것을 쓰는 까닭이다.

하지만 농가로 들어가면 길가 가로수(?)에 코코넛이 주렁주렁 열려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단, 코코넛 속을 먹으려면 들입다 돌로 찍기라도 한다지만 주스를 마시려면 겉껍질부터 안에 nut부분까지 도끼 machete가 있어야 주스를 남겨놓고 깔 수 있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 눈앞에 열려 있어도 그림의 떡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무인도에 코코넛 트리밖에 없으면 어쩌나 하고 잠시 쓸데없고 하릴없는 구체적인 걱정을 해보았다.


bougainvillea부겐빌리아

하와이에만 피는 건 아니지만 예쁘니까.

나도 어디 가나 꽃잎 걷어 말리는 걸 좋아하는데, bougainvillea부겐빌레아는 나뭇잎과 꽃의 중간쯤 되는 다양한 색의 포엽이 막상 작은 하얀 꽃보다 아름답고 창호짓장처럼 색이 그대로 곱게도 말려진다.

어린 시절 가을이면 넉넉히 들여놓던 사과상자에 사과를 낱낱이 싸고 있던 분홍색종이와도 닮아 볼 때마다 조심스레 쓸어보게 된다.


candle nut tree

알래스카 주 나무는 spruce 가문비고, 하와이의 주 나무는 마카다미아 넛과 친척인 candle nut으로, 동그란 초록 열매들 안에 든 nut씨앗이 ‘초를 켤 수 있을’ 정도로 기름이 많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조그맣고 동그란 초들 이 열리는 나무라니!

나무나 꽃은 항상 라틴 학명보다 별칭을 알고 나면 더 친근해진다.

하와이는 아시다시피 보시다시피 마카다미아 넛으로 유명하다.


Plumeria

하와이안들이 귀에 꽂고 다니는 ‘바로 그 꽃’ 중의 하나인 Plumeria는 코를 박으면 방향제로 많이 쓰이는 ‘바로 그 열대꽃 향기‘가 진하게 난다. 한 번씩 포르르 떨어지는 꽃을 곧잘 주울 수는 있어도 꽃에 수분이 많아서 금세 변색되고 아무리 해도 그 색을 살려 말려지지 않아 아쉬웠는데, 문득 물에 띄워보았더니 그래도 하루이틀 더 예쁘게 버텨주어서 좋았다.

무궁화의 일종이지만 수술이 더 큰 hibiscus도 커다란 빨강, 노랑, 보라꽃이 한 번씩 툭툭 떨어져서 귀에 꽃아 보기는 했는데 꽃에게 미안해서 그냥 고이 눌러두었다. 히비스커스는 플러메리아보다는 잘 마르는 편이지만 역시 살아있을 때의 화려한 모양은 보존되지 않는다.


하와이에 도착하면 환영의 의미로 목에다 걸어주는 Lei는 저렴한 조화도 있지만 냉장고에 들은 채로 싱싱한 것을 팔기도 하는데 하와이에서 잘 자라는 꽃들은 따거나 꺾으면 금방 시들어서 집을 장식하기는 힘들다. 그러고 보면 하와이에서는 관음죽이나 소철 등 한국에서 집에서 실내관상용으로 쓰는 화초들이 길에 심어져 있다. 그러고 보니 무릇 화초라는 것들은 건조한 하와이처럼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따뜻한 것을 좋아하는 것들이다.


하와이가 거대한 온실인 셈,

아니, 관상식물이 있는 우라 모두는

자그마한 하와이를 집에 하나씩 가지고 있는 셈이다.




하와이에 있는 동안은 꽃그릇을 문진삼아 아침 녘에는 서늘한 라나이에서 꼰 다리를 꺼떡꺼떡 흔들며 일기를 쓰곤 했다. 요즘은 대개 그저 전날 있었던 일, 오늘 할 일을 적는데 급급한 일기.


급급하다는 말 : 나이가 드니 부쩍 정말이지 ‘부지런히’ 담아두지 않으면 사라지는 게 너무 많아져서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생각보다 쉽게 잊히는 게 반가운 것들도 더러 있다는 것도 배웠지만.


Other Minds(Peter Godfrey-Smith)에서는 생물(문어나 갑오징어 등 두족류의 ‘또 다른 경로로 진화한’ 고등생물에 대한 책이다)은 반드시 누군가를 대상으로 감정이나 의사전달 broadcast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혼자만의 행위로도 자신과 미래의 세상을 바꾸어나가는 것이라며 인간이 일기를 쓰는 것을 예를 든다. 혼자 일기를 쓰는 것으로 미래의 나와 내 행동을 바꾸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을 전혀 안 해본 건 아닌 거 같은데, 문득 뭉클해진다.

오늘치를 적으려고 일기장을 펼치면 어제의 내가 나에게 한 말이 보인다는 것.

그리고 오늘의 내 일기로 인한 미래의 나의 변화를 책임져야 하는 행위, 일기 쓰기.


훗날 오늘의 일기를 펼치면 곁에 놓여있었던 플러메리아 꽃과, 라나이 앞에 꿀이 글자 그대로 뚝뚝 떨어지는 문어(!) 나무 꽃에 모여드는 작은 알록달록 귀여운 새들, 그리고 파랗고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 모두 미래의 나에게 함께 말을 건네면 좋겠다.








#한달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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