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은 연못 Sep 21. 2023

와이키키에서 잘 차려 벗는 법

7) 옷, 뭘까?

하와이에 사는 분들이 꼽는 하와이에 사는 우스개 장점 중에는, '하와이에 살면 더워서 일 년 내내 티셔츠나 입고 다니니 옷값이 안 든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외려 와이키키 근처에서는 사실 너무나 '잘 차려 벗은' (옷 잘 벗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아는 사람은 안다) 사람들이 많아서 그나마 그것도 거짓말이다 싶다. 옷은 천 값이 아니라 디자인 값인데 여름옷이라고 더 싸면 비키니는 제일 싼 옷이어야 한다.

단, 하와이에서는 크록스 하나면 사시사철 난다고 하는데 알래스칸은 신은 많이 필요하다. 패션 아이템이라서가 아니라 어느 집이나 식구마다 여름 슬리퍼부터 영하 30 도용 부츠까지 신발장이 그득하다. 젊은이들은 영하 10도에도 반바지 입고 슬리퍼 끌고 다니는 것도 다반사지만. 청춘은 봄이요 봄은 꿈나라.


사실, 특별히 대도시에서 특정직업을 가지지 않는 한, 그리고 그대가 특별히 패셔니스타가 아니시라면 미국에 살면 대개 옷값이 안 든다. 미국에서는 혹시 잠옷바지 입고 슈퍼마켓을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눈 깜짝하지 않는다.

하긴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처럼 옷을 잘 차려입는 사람들을 보기 힘들다. 그대가 오늘 '대충' 입고 나온 것도 나오기 전에 혹시 거울을 한 번 힐끗 보았으면 웬만한 미국 기준으로는 잘 입은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나도 미국에 오기 전(생)에는 일단 구두만도 철철이, 깔별로, 굽 높이, 용도(?)별로 수켤레가 있어야 했던 것 같다. 

언제나 넘의 눈을 의식하는 체면강국 코리아는 칭찬도 남과 비교해서 해야 한다.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아야 하고, 남달라야 하고, (다수 중에) 빼어나야 하고, 누가 뭐래도 최고여야 하고, (남에게) 내로라하게 잘나야 하고, 누구보다도 잘나고, 어디 내놔도 빠지지/뒤지지 않고, 그것을 뽐내야지, 

독야청청 혼자 잘나면 안 된다.

*'내로라하다'는 나이로다,의 준말로, 내가 최고로다, 는 뜻이다.


친구도 그냥 친한 친구면 안되고 좋아도 그냥 좋으면 안 되고, 꼭 누구를 찝어 친, 애라 불러서 나머지 '최'가 아닌 사람들은 시무룩하게 만들고 마는 우리는 도대체 이 비교질 언제 그만두는 걸까. ( 그냥 하는 말이라구요? 아무에게나 그렇게 '의미 없는' 수식어 붙이는 것도 재미없습니다)


아무튼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인의 기준으로는 대충 누더기를 입고들 다녀서 내 반생애를 미국에서 사는 동안 나도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렸고, 용도(?) 상관없이 대충 계절에 맞는 곳 몇 벌로 일 년을 나는 비슷한 사정의 미국 거주 친구들끼리는 인천공항에는 우리가 한국사회에서 ‘인간의 행색’을 갖추고 공항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미용실이 갖추어져 있다는 반(만) 우스개 소리를 할 정도다,


실제로,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 알래스카로 가는 비행기 게이트 앞에 앉아 있노라니 우리를 싣고 갈 알래스카발 비행기가 도착해서 사람들이 나오는데, 어쩌면 하나같이 보풀 일고 목 늘어진 데다 때 타서 시커먼 후디를 걸쳤는지, 문득  비행기 안을 수리하던 분들이 나오시나 하다가, 아 맞다 우리 다 원래 그렇게 입고 다니는 거였지! 하고 웃었었다.

너무 반가워서.

나도 나름 관광지에 왔답시고 하와이에서는 ‘잘 벗으려’ 노력을 하고 있었나 보다. 껄껄.


많은 이들이 비키니(때로는 monokini!!) 차림으로, 때로는 서핑보드를 호랑이가 잡아먹은 떡장수 어머니 모냥 머리에 척 이고 맨발로 두 블록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오가는 것을 바라보다 보면 아담과 이브모양 벗고 다녀서 하와이를 천국이라 그러나 하는 생각을 해 보긴 한다.

하지만, 매일같이 비치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다 보니, 무엇보다 사람 몸은 정말 백 명 이면 백, 천명이면 천 가지 모양새를 가지고 있다는, 너무나 당연한 생각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안 그래도 시골쥐로 살아온 지 오래지만 점점 더, 누가 무엇을 ‘입고’ 있는가 하는 건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인간이 나이와 성별과 몸매(?)와 장소와 유행에 따라 ‘되는 옷’ ‘안 되는 옷’이 존재한다는 것도 우스워지고, 급기야는,

우리 다 이 모든 다른 몸에 맞는 옷을 잘도 골라 걸치고 두르고 덮고 가리는구나

하다가, 다시,

저렇게 각기 다른 모양의 천조각들에 우리 다들 잘도 몸을 맞추고 끼우고 ‘들어가’ 있구나

하는 느낌마저 들던 것이다.


Mind of Raven (Bernd Heinrich)에서, (두족류와 더불어) 까마귀과 동물들의 지능의 표상 중 하나가 개체를 구별하는 능력이라기에, 요즘 내겐 한국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똑같이 생겨 보이는 것도 노화퇴행의 일환인가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외려 이렇게 다 다른 ‘몸’들은 얼마든지 그 개성을 감지하겠는 걸 보면, 사실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얼굴은 구분하지 못해도 문제없지 않나 싶다.


어차피 우리는 옷과 얼굴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니까.

표정과 몸짓과 목소리와, 헤어지며 안을 때의 등에 와닿던 손의 온기 같은 것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것이니까.


와이키키에 오면 우리 모두 자유로워지자. 

그리고 그러기엔 입든 벗든 옷 자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겠다. 

이전 07화 하와이가 '지상낙원'인 이유 혹 아시는 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