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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같은 며느리

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by 며늘희

10. 딸 같은 며느리



아들뿐인 집안에 시집간 녀자들에게 끊이지 않는 과제는 딸이 없어 적적했는데 다행히도 네가 들어와 딸의 빈자리를 채워줄 거라는 시부모님들의 환상이다. 시어머니들은 본인도 누군가의 딸이었지만 부모로서 딸이라는 존재를 감당해보지 않아서일까_ 딸이라는 존재에 대한 막연히 예쁘고 좋은 드라마만 보신 거 같다. 그런데 나는 우리 아빠 엄마의 딸이지 어느 날 갑자기 시가의 딸이 될 순 없다. 상견례 때부터 자연스럽게 내뱉으시던 예쁜 딸 하나 생겨 너무 좋습니다. 라던 말로 나를 정말 딸로 받아들이시기로나 한 걸까? 물론 그때 우리 엄마도 듬직한 아들이 생긴 것 같아 기쁘다- 대답했더랬지. 그런데 며느리 대접 바라는 사람은 많아도 사위 대접 바라는 이는 없듯이 엄마는 남편에게 진정한 아들이길 결코 기대하지 않는다.



엄마는 고집불통인 나에게 커서 너 같은 딸 낳아 키워 보라고 소리치곤 했다. 나 같은 딸이 어때서? 라고 늘 생각했지만 돌이켜보면 나 같은 딸도 찾기 어려울 듯하다. 찾기도 어려운 나 같은 딸을 기필코 딸로 맞이하시겠다니_ 시부모님은 정말 딸을 키워보지 않아서 딸 같은 며느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계신 것일까?





한때는 딸의 역할만 가지고 있었던 엄마는 시집을 오고 나서 맏며느리로써 시가의 집안일을 도맡아 하였고 본인의 친정에는 잘 가지도 못하였다. 나는 외가 친척들 이름도 다 못 외운다고 하면 감이오는 가? 아빠는 고모들 얼굴이 모두 보고 싶어 모든 식구들이 모일 때까지만 있자고 했다가 친가 친척들이 모두 모이면 너무 늦었으니 내일 가자고 했었다. 그러다 내일이 와도 같이 아침은 먹고_ 점심은 먹고_ 하다 보니 외갓집에 갔을 때 외삼촌뿐 아니라 이모들 마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친가 쪽 사촌들 이름은 알지만 외가 쪽 사촌들은 이름은 고사하고 첫째 외삼촌과 둘째 외삼촌도 헷갈려했으며 누가 누구의 자식인지 선긋기 놀이를 하라고 하면 모두 틀릴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내가 어릴 적부터 봐 오던 엄마는 명절이면 전을 부치고 회장실 갈 틈도 없이 앉아서 일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쓸고 닦고 손님이 오든 고모들이 오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과 술을 먹는 모습이 아니라 부엌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었다. 어릴 적에는 그런 엄마가 안쓰러워 보이지도 않았고 그게 엄마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다. 학습의 결과였다. 이것이 엄마가 할머니 집에서 하는 보통의 생활이구나 했었다. 나이가 먹고 나서야 엄마라는 존재가 내가 좋아하던 할머니 집에서 딸 같은 며느리가 아닌 일손으로 취부 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엄마는 고모들이 많은 집에 시집간 덕에 딸 같은 며느리의 환상을 채울 필요 없이 할머니의 일손덜이 가 된 것이다.


어릴 때는 엄마가 하는 모든 것이 재밌어 보이는 법. 전을 뒤집을 때면 나도 하고 싶다 옆에서 치덕였고, 부엌을 오가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내가 하겠다 소매를 걷어붙이기도 하였다. 그때마다 엄마가 하는 말이 있었다. " 하지 마 이런 거 배울 필요 하나 없어 ! " 그랬다. 엄마는 자신처럼 딸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설거지 한번 시키 적 없었고 식사 도중 "엄마 물~" 이라는 말 한마디에 군소리 없이 삼십 년 넘게 아직까지도 척척 대령하는 것이 우리 엄마이다. 엄마는 밥 해 버릇하면 밥하는 사람이 되고 설거지 잘해봤자 기껏해야 되는 것이 설거지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혼기가 차오를 때도 음식 하나 가르치려 하지 않으셨고 본인이 해줘도 되고 사 먹어도 되니 배울 생각이랑 꿈에도 꾸지 말라하셨다. 엄마는 하는데 나는 왜 하면 안 돼? 라고 집안일이라는 것이 그저 하고 싶었던 철없고 엄마의 고충은 하나도 모르던 어리기만 하던 그때의 딸이 물어보면 너는 나중에 이런 거 해주는 아줌마 쓰는 집으로 시집가라고 말하셨다.


엄마는 그렇게 원래가 책 읽는 아이는 책과 가까운 사람이 되고 뛰어노는 아이는 운동하는 사람이 되며 무슨 일이든 나서서 도우려 드는 아이는 일복 많은 사람으로 살게 된다 하셨다. 엄마의 나름의 철칙 덕분에 나는 다른건몰라도 집안일은 일체 시키지 않으셨다. 덕분에 외식만 하는 집으로 시집가서 설거지 복은 확실히 없는 거 같다.


하지만 그렇게 고이고이 자라난 나는 엄마의 소원과 달리 죄송스럽게도 나 같은 딸을 아직은 낳지 않았고, 아줌마를 쓰는 마나님이 되지도 못했다. 딸은 후에 낳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불고집 쟁이 딸내미라도 사랑할 거랍니다) 일하는 이모님은 글쎄, 평생 못쓸 거 같아요 엄마 ㅜㅜ



농경사회에서 자식은 노동력의 원천이라고 하였던가.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일하던 시절을 거쳐 지금이라는 시간이 왔기에 더 이상 자식들은 노동력으로 취부 받지도 않고 며느리는 일손으로 단정 지어지지 않는다. 세상이 변하여 대대로 내려오던 집안의 일을 하던 며느리는 딸 같은 며느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단지 나는 그 중간쯤 되는 과도기의 시점에 서 있기에 며느리로서의 의무와 책임은 다 하면서도 살갑고 어여뻐야 하는 딸 같은 며느리라는 직무도 부여받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적어도 엄마가 말한 집안일만 해야 하는 사람으로 성장하진 않았다. 엄마가 바라는 딸은 게으르고 불평 많더라도 하고 싶은걸 마음대로 해야만 하는 고집불통인 딸이었고 가끔 손님이 오실 때면 늘 해오던 일인 거 마냥 몸에 베인 듯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수저를 예쁘게 놓는 아이이면 되었다. 하지만 시가에서 바라는 딸 같은 며느리는 디비누워 티브이를 보다 식사시간이 다가오면 수저만 달랑 놓는 것이 아닌 식사의 준비와 상차림 그리고 식사시간의 리액션을 창 착한 미소 밝은 여자인 것이다.


결혼한 후에야 나는 싱크볼에 내가 먹은 밥그릇을 치우던 딸이다. 엄마는 그마저도 어차피 너의 자식 놓으면 백날 할 것. 내 자식 그릇은 내 몫이라며 상치 우는 것 마저 도움받지 않으려 하였다. 딸을 가진 엄마는 기대치가 없다. 하지만 시가에서 바라는 딸은 엄청난 기대 속에 집중당하고 있다. 과일은 잘깎는지 음식 솜씨는 있는지 시부모에게 연락은 자주 하는지 그들 말에 거역은 안 하는지..


기분 좋지 않은 날에는 침대에 쳐박혀있다 씻지도 않고 배고픔만 해결하러 엄마의 밥을 구역 구역 먹을 때도 엄마는 무슨 일인지 묻지도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도 않고 기분 내키지 않은 딸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길 바라지도 않는다. 시가의 딸 같은 며느리는 절대 기분 좋지 않은 날이 없어야 하며 시부모님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방실방실 웃으며 리액션을 충실히 이행하며 시월드의 모든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


하도 딸 같은 며느리를 원하시기에 이에 질린 어떤 며느리가 시가에 가서 바로 소파에 누워 엄마 배고파를 외쳐봤다는 사연도 있다. 그만큼 당신들이 원하는 딸이라는 존재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드라마에서 보던 시어머니의 팔짱을 끼고 사근 거리는 남의 집 며느리는 극본에만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시어머니 또한 막내 고모 둘째 며느리는 그렇게 본인 시어머니를 모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목으로 넘어가는 음식도 입까지 갖다 대 드리며 항상 볼 때마다 팔짱 끼고 있다며 부러워하신다. 글쎄, 어머님이 말씀하시는 며느리와 고모님 사이의 유대관계가 더 돈독하지 않을까요? 라고 반박하고 싶다. 아니면 고년이 대단한 여우 며느리던지_ 나는 적어도 막내 고모님은 둘째 며느리에게 상처되는 말을 매번 하진 않으시니 그 며느리가 저리 행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설마 돈을 팍팍 쓰며 이것저것 사준다고 하면 딸 같은 며느리로 변신할 것 같은가?

각자의 취향이라는 것이 있어서 시모가 이쁘다 사주시는 옷이나 신발도 자신을 인형 놀이한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돈 많은 시모가 이것저것 사주면 다음에 입고 가야 한다는 압박감과 착용샷을 후기로 남겨드려야 해서 부담스럽다는 며느리들의 사연도 있다. 물론 나는 지금껏 옷이나 신발을 선물 받은 적이 없어서 그렇게 백화점에서 무언가를 사주는 시어머니에 대해 부담스러운 감정이라는 것은 1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의 시모는 언제나 자신이 맘에 들어 샀다가 작거나, 집에 와서 다시 보니 아니다, 싶은 것들을 너 좋아할 거 같아 준다고 하시며 내가 맘에 들어하길 강요하고 계시니 말이다.



딸 같은 며느리를 원하시면서 딸이 가진 본능은 무시하고 자신을 보필하는 예쁜 인형을 상상하신다면 그만 포기하시길 바란다. 많은 시모들이 바라는 어여쁜 속눈썹 붙인 인형 같은 딸은 당신에게 반말도 하지 않고 대들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딸들은 아빠 엄마에게 반말을 찍찍 내뱉으며 발악 발악 자기주장을 펼치며 싸우며 시도 때도 없이 울며불며 서운한 것이며 해달라는 것이 천지이다.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치는 딸을 맞이하고 싶으시다면 당장 말씀하셔라. 세상 모든 딸들이 그러하니 _


내가 어머니라고 우리 엄마를 부른다면 아마 엄마는 놀래자 빠질 것이다. 어릴 적에 학교에서 존대에 대해 배우던 날로 나는 아빠 엄마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려 노력한 적이 있었다. 엄마는 너무 어색하고 정감 가지 않는다고 너는 평생 어린 딸로 자신을 엄마라 불러달라 요청하셨다. 그리고 아빠는 존댓말만 하되 아버지는 뭔가 멀게 느껴진다며 사양하셨다. 그런데 시모가 바라는 딸 같은 며느리가 어머님~ 이라 존대하지 않고 반말이나 큰소리를 내며 대화 도중 말도 자르고 자기주장을 펴낸다면 당신이 원하는 어여쁜 딸은 아니지 않은가? 실상 딸들은 그렇게 예의 바르지 않다.


그저 사근사근하고 살랑 사랑하기만 바라면서 그 이면은 절대 보지 않으려 하면서 좋은 것만 가진 딸을 날로 원하신다면 욕심쟁이가 아닐까 싶다. 나는 며느리로서 예의를 지키고 부름에 달려가고 나름 극진히 그리고 충분히 여러분을 모시고 있다. 그러니 며느리로서만 원하시고 진정 딸로는 원하시지 않으시면서 매번 전화 올 때마다 최선을 다해 웃고 방문하면 얼굴의 천만 가지 근육을 이용해 광대를 승천시키고 있는 나에게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은 그만하셨으면 좋겠다.




아들만 두어 남편과 아들 둘이 목욕탕 가면 혼자 탕에 가서 씻는 것이 외로웠다는 수많은 아들 부심 시모들이 같은 여자끼리 목욕탕에 가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의 많은 딸들은 엄마랑 어릴 적에는 목욕탕에 가서 벌거벗고 인형놀이도 하고, 초록 때수건이 너무 아파 살갗이 벗겨지면서도 이것이 끝나면 뚱뚱한 바나나우유를 먹을 수 있다는 그 시간을 기대감에 견뎌내긴 했었다. 하지만 이차 성장기를 거치며 여자가 된 많은 딸들은 사춘기와 함께 벌거벗고 다 같이 모여있는 그곳을 피하게 되었으며, 나는 어쩌다 누군가와 함께 찜질방을 갈 일이 생기더라도 옷을 홀랑 벗어야 하는 그 탕에 들어가는 것만은 시간차를 두고 씻자며 서로의 자연인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기도 하였다.


그러니 서른 넘은 며느리들에게 제발 그런 제안조차 하지 마시길 바란다. 나의 시모도 사우나 중독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다. 결혼 전부터 남편은 엄마가 사우나를 좋아해서 같이 가자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엄마랑도 안 간다- 제발 부탁이니 그런 말 듣지 않게 해 달라 사정했다. 그러나 시모는 설마 그렇게 모든 내용을 전해 들었더라도 자신이 말하면(아니, 상하관계인 시어머니인 내가 명하면) 내가 돌아설 줄 알았나 보다.



요즘 며느리한테 사우나 같이 가자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데 너도 그렇니 ?
 


남편 말 마따라 말하는데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뱉으시는 분이 이번엔 나름대로 생각을 골똘히 하고 돌려 돌려 펼쳐낸 아이디어 같았다. "이러이러하다던데 ~ 너도 그러니?" 라고 묻는 걸 보니 너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렴 ! 어서 ~ ! 라며 눈빛마저 강압적으로 나에게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많이 고민하시고 한마디 한마디 내뱉으셨지만 나는 그때만큼은 당신이 원하는 딸 같은 며느리가 되어 단호하게 내주장을 내세웠다. "저는 사우나 안 다녀요." 실상 당신들이 원하는 딸은 이렇게 단호하답니다- 라며 똑바로 내 의사를 전달하였다. 그리고 제가 말했잖아요. 세성 많은 딸들이 2차 성장 이후 엄마랑도 탕에 안 간다고요. 더불어 우리 엄마도 나랑 목욕탕 가잔 소리 꺼낸 지 백만 년 된 거 같단 말이다.





시부모님은 우리 아빠 엄마처럼 나를 딸로서 위해 생각해주진 않으면서

자신들은 나를 딸로 생각하는데(정말?) 너는 내 맘과 같지 않다고 세상 서운함을 다 표하신다.


이전에 시어머니는 나에게 전화하여 너는 너희 엄마 모실 생각만 하고 있냐고 우리는 언제 초대할 거냐고 말한 적이 있다. 신혼집에 자주 들락거리셨으면서 오라는 소리 없다며 내게 섭섭함을 표하시고, 정작 우리 엄마는 온 적 없고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음에도 나는 나를 낳아 키워주신 우리 엄마를 모시면 안 되는 상황을 만드셨다. 시부모님은 나에게 사돈댁 잘 계시냐고 물으시지만 내가 그곳에 자주가길 원치도 않으시고 본인들을 더 케어해주길 바라신다. 내 마음이 나를 낳아 키워주신 아빠 엄마보다 당신들에게 향하길 바라시는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당신들이 실상 가져보지도 못했던 딸의 역할을 강조하신다. 나는 즐겁게 야유회에 나와 오리배를 젓는 것처럼 얼굴로는 웃고 발밑으로는 고군분투하고 있건만 본인들이 섭섭함을 느껴놓고 그 서운한 원망을 딸처럼 생각한다던(진심 그렇게 생각하시느거 맞냐고?) 나에게 돌리는 것은 이기적인 것 같았다. 낳아 키운 아들보다 어느 날 만난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원하시면서 며느리가 다녀갔고 며느리가 무엇을 자신들에게 어떻게 해주었다는 것을 단톡 방에 올리기 바쁘고 지인들에게 말하기 바쁘다. 그리고 그런 증거의 사진이나 이야깃거리가 없어지게 되면 그렇게 딸처럼 생각한다던 며느리인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 되었으며 세상 최악의 며느리이자 나쁜 X이 되는 것이다.






같은 시간을 공유한 적 없으면서 서른이 넘은 성인 사람을 자신이 낳아 키운 자식과 같이 여길 수 있을까?

딸은 딸이고 며느리는 며느리다.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


자신의 뱃속에서부터 열 달 품을 때부터 함께 시간을 공유한 것도 아니겠만 어떻게 갑자기 딸 같은 사람을 단번에 얻으려는 것일까. 나라는 사람은 아빠 엄마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때마다 가져주셨던 마음 씀씀이에 자라났건만_ 내가 부모님께 대하는 태도와 시부모인 당신들을 마주하는 모든 것이 같기를 바라시는 것은 욕심이고 오만이라고 생각된다.


시부모님이 함께 해준 세월이라는 것이 없지만 그 모든 나의 인생을 뭉뜨거려 나는 너를 딸처럼 생각하오니 너 또한 나를 어미처럼 여겨 원하는 것을 알아서 척척 해드리길 바라는 것. 그런 나는 받은 건 없는데 의무는 다해야 하는_ 상황이 되었다. 어쩔 때는 잘하고자 한 것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모두 수정하시면서 이건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며 본인이 원하는 쪽으로 내세우면서 딸 같은 며느리로 애정이 쭉쭉 늘어날 거라 생각하시는 건 무엇일까. 주시는 것보다 부담이나 자식 된 책임을 원하시고 계신 것은 아닌지_ 나라는 사람을 진정 딸로서 대하시는 애정보다 기대에 따른 결과를 보고 불만만 가득 채우시고 계시는 것은 아닐지_


그렇게 생각만 하신다고 하시고 행하시는 것은 반대라면 아무리 딸 같은 며느리도 불평이 늘어나는 게 기승전결상 맞는 것 아닐까. 제발 낳아보지 않고 키워보지 않은 딸 같음을 갑자기 며느리가 된 나에게 강요하지 않으셨으면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 시어머니에게 딸이 있었다면, 본인 딸이 나처럼 시어머니에게 막말을 듣고 속상해하고 있으면 딸의 시모를 함께 욕하고 있지 않았을까.



시어머니는 내 앞에서 본인의 시모 욕을 그렇게 하신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불편했다. 마음이 늘 초조해한 느낌이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자신은 그렇지 않은 시어머니 인척 하고 계신다. 나에게 너는 그러지 말고 편히 생각해라- 라고 말이다. 그러나 시어머니의 시어머니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자신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말라고_ 하지만 나의 시모 또한 며느리이던 시절에 그냥 힘들었던 것이다. 자신은 시집살이를 당했노라 부당했노라 나에게 열변을 토하면서 정작 본인도 오라가라, 연락해라 명령하고 때로는 말 한마디로 나에게 상처를 주시면서 세상 가장 며느리를 배려하는 줄 알고 계신다. 당한 사람이 더 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분명 며느리는 이제 우리 집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출가외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생각해보면 시모는 시가보다 매번 자신의 친정을 챙기고 있다. 결국 시어머니 또한 딸 같은 며느리는 못되고 그저 딸로서 본인 엄마와 친정식구들을 챙기고 있다. 자신의 마음도 시가에 가지 않으면서 나에게 강요하는 것은 무슨 논리 일까. 결국 나는 결혼하여 남편의 외할머니를 찾아뵙고 외삼촌들과 어울리며 자정이 다가오도록 노래방에서 시어머니의 식구들의 기분을 맞춰야 했었다. 자신에게는 너무 편한 친정이라 그랬는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마이크를 달라고- 노래 부르고 싶어 죽겠다고- 하며 음주가무를 즐기는 시모의 모습에도 당황하지 않아야 했었다. 며칠 뒤에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제사이니 시간 되면 오라는 말에 나는 선을 그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에서 출가외인인 며느리가 챙겨야 할 시가의 범위에서 넘어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의 외할아버지 제사까지 내가 왕래하며 거들어야 한다면 결혼한 내가 감당해야 하는 남편의 일가친척은 어디까지 일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상 남편은 내 고모나 삼촌이 누구인지 모르고 인사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 그건 출가외인의 친인척이기 때문에 인사할 필요도없었나?)





나는 결혼을 해서 아내가 되는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었다.

결혼하여 그렇게 아내가 되고 누군가의 엄마가 될 줄은 알고 있었다.

막연한 상상을 하면서도 기정사실처럼 여겨왔었다.


그런데 나는 며느리가 될 줄은 몰랐었다.

왜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을까 ?


내 의지로 한 남자의 반려인이 되고자 하면서 그와 동시에 며느리라는 직책을 부여받을 거라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 요즘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아내보다는 며느리로서의 삶에 훨씬 더 많은 비중과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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