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청단홍단 치마

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by 며늘희

09. 청단홍단 치마



왜 결혼식장은 샹들리에로 꾸미고 신부에게는 새하얀 드레스를 입히면서 양가 어머님은 갑자기 한국의 전통적인 한복을 입는 것일까. 한때는 알 수 없는 고대 로마 그리스 신전을 닮은 예식장들이 즐비하더니 이제는 그 이오니아식 양식 기둥은 찾아보기 어렵게 변했다만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뒤 한국에서 행해지는 결혼식은 생각해보면 짬뽕의 도가니탕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그 믹스된 문화마저도 안 하면 왠지 섭섭하고 안될 것 같은 것들이 즐비하기만 하다. 그렇게 나 또한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리 간소화된 요즘이라도 이것은 해야 한다며 무엇을 그렇게 목록에 올리셨고 나에게는 기대지도 않고 본인이 스스로 척척 해서 주시면서 절차와 격을 따져대셨다. 그렇게 내게는 상의도 없이 이건 하는 게 도리이고 이치라는 말만 내뱉으셨다.




나의 친정집은 안동 하회마을의 전통적인 집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의 예의와 격식을 따지는 곳이다. 개천절에 할아버지는 같은 성씨의 우리가 속한 파와 함께 단군 할아버님께 인사드리러 간다고 말하면 어느 정도 일지 감이 오실런지 모르겠다. 어릴 때 세상 모든 할아버지 집에는 족보를 보관하는 커다란 책장이 무조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는 우리는 한국인이기에 한복을 입고 병풍 앞에 놓인 대대로 내려오는 방식에 따라 의식을 치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다. 왜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제사나 차례문화를 그런 사진을 참고하여 다루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때 배웠던 모든 것들이 나와 같은 반 친구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종교가 크리스천이라며 산소 앞에서 절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보고 놀라 자빠진 적도 있었지만 말이다.


고등학교에 가서야 친구들은 한복과 갓을 쓰지 않고 차례를 지낸다는 것을 알았고, 우리 집이 아직 전통이 남아있는 나름 특이한 곳임을 알았다. 다들 간소하게 집에서 하는 제사와 달리 할아버지 집에서 행하는 제사만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동네에서 몇 바퀴를 돌며 이곳저곳 차례상에 예를 다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자와 남자는 같은 상에서 밥을 먹을 수 없었기에 할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시골에 가면 아빠와 오빠와도 겸상하는 것은 꿈도 못 꾸었다. 여름방학이면 무릎 꿇고 실로 묶인 한지 종이 더미로 만들어진 천자문을 배워야만 했다. 할아버지는 여자가 배워서 뭐하냐- 는 말을 자주 하셨고 극심히도 아들만이 최고라고 하셨지만 그래도 너도 한번 배워보라고 한자를 알려주셨다. 그런 남아선호사상이 짙은 할아버지 앞에서 나는 왠지 못하면 안 될 것만 같았기에 기를 그렇게 쓰고 한획한획 그림 그려가듯 한문을 외웠던 기억이 있다.


유교사상과 가부장제가 강한 할아버지 덕에 여자는 쓸모없는 사람 취급도 당했지만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아빠는 아들인 오빠보단 나를 더 챙기고 나를 사랑해 주었다. (틀림없다. 아빠는 날 더 좋아한다.) 그리고 여자이기에 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가르치셨다. 다만, 할아버지 집에 갈 때면 우리 집에서 하던 모든 것을 할아버지만의 방식으로 해야 하고 따라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어른들 그리고 조상들은 그렇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엄마는 그런 집안의 맏며느리였다. 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고 대대로 내려오는 것은 고지 곧대로 받아들였어야만 했다. 그런 엄마가 결혼을 하는 딸에게 갖춰야 하는 것이 오죽 많았을까. 아직도 꼭 했어야 하는데 못한 것이 있다고 늦게나마 이걸 갖추자고 전화 올 때가 있다.


결혼을 하겠노라 허락을 받으러 간 예비신랑과 나에게 엄마는 한복을 꼭 맞추라고 하였다. 신랑 신부가 고운 한복 입은 자태가 너무 보기 좋다며 엄마는 요즘 추세가 한복을 빌리는 것이라고 하지만 너희는 꼭 한벌을 맞추라고 하였다. 웨딩 플래너도 한복에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었다. 또한 내 친구들은 청초한 2부 드레스를 대여하고 인사를 드리는 쪽이 많아 한복을 맞추는 커플은 별로 없어 보였다. 이러한 추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랑에게 우리 집이 좀 전통을 따질 수 있다고 언급해 놨었고 한복만큼은 엄마의 뜻대로 맞추기로 하였다. 그 옛날 새색시 한복처럼 초록 빨강을 고집하며 맞추라고 하는 것도 아니었고 엄마가 원해서 하는 것이니 신랑 신부 한복 값도 흔쾌히 대주셨다.


우리 집은 사실 명절과 제사 그리고 집안의 행사가 있으면 한복을 입으니 그렇게 한복을 맞추는 것이 낯설진 않았고 한벌 해놓으면 입을 날도 꽤 되었다. 양가 어머님 한복은 비용절감 차원에서 대여하기로 하였지만 나와 신랑의 한복은 젊은 우리가 알아서 고를 것 같지 않아 어른들을 모두 동행하여 상담하기로 하였다.




시어머니는 욕심이 많았다. 신랑 신부 한복을 고르는 내내 일언반구 하지 않더니 갑자기 아들을 툭치며 네가 뭐 저거 할 필요가 있냐며 대뜸 모든 맥을 잘라버리셨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내 거나 맞춰달라였다. 전통 있는 집안도 아니고 한복 입고 제사를 지내는 것도 아니요. 이번에 본인의 한복을 맞추면 언제 또 입을 일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한복을 맞춰야 하는 것이지_ 지금 아들의 한복에 드는 돈은 너무 아깝다 하셨다. 그러니 신랑 한복일랑 하지 말라고 - 필요 없다 - 하셨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나는 입어야 하니 내 거는 맞추자 하셨다. 엄마는 나긋나긋한 편이다. 사람 많은 곳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거나 목소리를 높이시는 편이 아니다. 그런 엄마가 큰소리를 냈다. " 사돈,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 장가드는 아들이 한복을 맞추는 거죠. " 그랬다. 엄마는 엄마의 기준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신랑 신부 한복만큼은 지키고 싶어 하셨다.


시모는 지지 않았다. " 우리가 한복 입고 서있지 쟤들이 한복 입고 뭘 한다고_ 니들은 빌리고 이렇게 우리 둘꺼(나의 엄마와 자신)나 맞추자. " 분명 예비신랑은 어머님의 한복은 대여로 하기로 합의했다고 알려줬었다. 나 또한 그렇게 엄마에게 말해둔 상태였다. 자신의 엄마에게 갑자기 대체 왜 그러냐며 핀잔을 주는 아들을 밀치고 빨리 자신의 한복 원단을 보여달라 성화시다. 아들 결혼하는데 주인공보다 자신이 먼저이길 바라는 모습에 나는 그냥 눈알만 이리저리 돌리며 예비신랑과 엄마를 번갈아보았다. 어차피 우리 둘의 한복은 엄마가 해주기로 했었다. 신랑은 막무가내로 갑자기 한복을 가지고 싶어 하는 본인 엄마를 앞에 두고 자신의 엄마의 그 큰 목소리에 이길 방도가 없었는지 그럼 그냥 맞추라고 하고 뒤로 빠져 버렸다. 그런 시어머니를 옆에 두고 나는 엄마에게 엄마도 맞추고 싶냐고 물었다. 엄마는 대여하자고 하지 않얐냐고 작게 되물었다. 엄마도 가지고 싶은 맘이 없었을까_ 엄마도 엄마품에 맞는 엄마 취향에 맞춘 예쁜 한복 하나 딸 결혼식에 맞춰 기분 삼아 살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냥 우리가 비용의 문제로 엄마 한복은 대여하 자고 했을 때 엄마는 우리의 뜻대로 응해줬고, 우리 집안 특성상 한복 입을 날이 여럿 날임에도 이미 가지고 있는 한복이 있으니 괜찮다 하였다. 그리고 옆에서 나의 예비 시모가 우리나 맞추자고 꼬시는 그 몇 분 동안에도 흔들림 없이 신랑 신부 한복이 먼저라고 하고 있었다.


엄마가 발품 팔고 해주는 거에 비해 얼마나 한다고_ 시아버지와 아빠는 양벌 하나 빼주면서 엄마 한복이 대수겠냐 싶어 시모와 엄마 둘 다 그냥 맞추라고 하였다. 이때 아니면 언제 하냐고 좋게 좋게 말했다. 내 한복 상담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시모는 자신의 원단을 내놓으라고 나의 치마 원단을 밀치셨다. 시어머니가 목소리가 크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찡그린 얼굴과 그 눈썹 모양까지_ 뭔가 상황에 맞지 않는 행동을 조금 하신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엄마는 우물쭈물 어쩌지,, 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내심 좋으신 거 같았다. 나는 방긋방긋 웃으며 엄마를 챙겼다. 엄마가 가지고 있는 한복은 너무 오래된 거고 어차피 그거 입을 것도 아니었고 요즘 트렌드에 맞는 것으로 대여하려고 했는데 대여나 맞춤이나 얼마나 차이 난다고 엄마 입맛에 맞는 걸로 골라보라고 했다. 시모는 알아서 잘도 본인의 취향을 내세울 것 같았기에 말이다. 엄마는 난 잘 모르겠다며- 정말 해도 되는 것이냐고- 연신 나에게 묻는다. 예비사위가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맞추던가 - " 하고 뒤로 빠져 사라진 것이 맘에 걸리시는지 자꾸 뒤쪽을 돌아보고 계신다. 그런 신랑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던지 나는 그냥 엄마 기분이 좋아지길 바랬다. 우리 엄마라는 사람은 내가 10을 주면 100을 주는 사람이다. 내가 한복을 맞춰주면 그보다 더 나에게 잘해주면 잘해줬지 덜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껏 받기만 하던 내가 이걸 해주겠다는 왜 눈치를 보는 것인지, 시모처럼 막무가내로 밀치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당당하게 고맙다며 엄마의 취향과 의사를 내뱉길 바랬다.



엄마는 결국 우리 딸이 골라주는 걸로 하겠다고 하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엄마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나니 나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나는 얼굴이 화사하게 보일 수 있도록 저고리를 밝은 톤으로 가고 치마를 각각 딸과 아들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자고 하였다. 그런데 그렇게 나름 좋아진 분위기에 시모는 찬물을 끼얹었다. 시모는 확고했다. 자신은 저고리를 색깔 있는 것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상담하시는 실장님이 그렇게는 잘 안 한다고 말했지만 시모는 아니라고 저고리에 색이 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치마 색, 저고리 색을 다 꺼내 우리 앞의 테이블을 옷감으로 수두룩 쌓아두셨다. 색감을 고르는 것도 오만가지를 다 꺼내 달라하여 이미 우리 앞에 놓인 원단이 수두룩 했다. 시어머니가 결국 하겠다는 색감과 원단이 최종적으로 어떤 건지 헷갈리기만 했다. 담당 실장님이 지쳐 보였다. 결국 그분은 " 아니 시어머니, 그렇게는 안 해요. 결국 다 바꾸니까 이런 건 제 말 들어요 ! " 라며 제지를 하기 시작했다.


말투도 어디에 쏘는 듯하고 언성도 높으신 예비시모에게 차분히 설명하던 실장님은 결국 한계에 다달았는지 언성을 높였다. 시어머니 말씀대로 저고리를 색감 있게 가면 낯빛이 어두워보여 결국 다 바꾼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시어머니가 보여달라는 원단 다 내어드릴 터이니 저고리를 하얗고, 밝은 쪽으로 가라고 하신다. 두 개를 바꿔 맞추시면 결국 다시 맞추자는 소리 나온다는 이야기를 몇 번을 반복해도 시어머니는 마이웨이였다. 색감이 있는 원단을 시모의 얼굴에 대어 보이고 밝은 원단과 확실히 다르지 않냐고 몇십 분을 실랑이를 벌이신다. 실장님이 최종병기로 수십 년 동안 한복을 해오면서 대여해 드리고 맞춰드리는 모든 것이 거의 저고리가 밝다는 말과 샘플을 보시고는 그제야 시모는 그런가.. 하시며 실장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렇게 결국 저고리는 밝은 색 / 치마는 아들딸을 상징하는 색으로 1차 합의점을 찾았지만 아직 갈길은 멀었다.




시모는 자신이 아들을 가진 것에는 대단한 자부심이었지만 한복 색깔만큼은 여자여자하고 핑크핑크하고 싶어 하셨다. 네 엄마 치마 색은 이쁜데 내 거는 싫다고 온갖 인상을 찌푸리신다. 나는 예비시모에게 어머님이 둘째가 딸이면 모르겠는데 둘째도 아들이시니 이번에 맞추면 다음에 시동생 결혼할 때는 한복에 돈 안 들이셔도 되겠다며 남자만 둘인 시모가 분홍빛 치마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접으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시모는 아들이어도 분홍빛 할 거라고 막무가내시다. 너희 엄마는 좀 연한 거 하고 자기는 좀 진한 거 해서 다르게 보이면 되는 거라도 하신다. 그러던가 말던가 입고 싶은 색깔 고르라고 해버렸다. 그러지 않고서는 끝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소리를 내며 손을 휘저으시며 상담 공감을 자신의 에너지로 채우고 있는 동안 그 안에 있던 우리는 그냥 그런 시모가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상담실장님은 1차 합의점 이후 가만히 지켜보다 결정적 한마디 건네셨다.



시어머니 하고 싶은데로 하셔,
근데 그렇게 둘 다 분홍빛 입고 있으면 축의금 다 여자 쪽으로 가요 ~

양가 어머님 한복 색깔 보고 아들네 딸네 구분해서 봉투 넣는 건데
그러다 돈 다 뺏겨요 !
 


예비시모 눈이 휘둥그레 졌다. 갑자기 실장님 쪽에 놓여있던 파랗고 초록인 원단들을 잡아끌으신다. 갑자기 푸른 원단이 이쁘다 하신다. 그래 어머님 축의금이 우리 쪽에 오면 절대 안 되지 , 암 그렇고 말고 !



그렇게 어렵사리 아들네 엄마 한복과 딸네 엄마 한복을 맞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가 더 남았었다. 우리 집은 전통적으로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낸다. 아빠의 한복이 오래되어 이번에 결혼업체를 통해 한복을 맞추면 할인이 많이 되길래 엄마는 아빠 한복을 한벌 맞추고자 하였다. 사전에 그 내용을 담당자에게 전한 바 있었다. 결혼식에 입지 않더라도 맞추시는 한복에도 할인을 적용해 주신다고 했다. 아빠가 평소 맞추는 곳보다 저렴했다. 그래서 이번에 같이 하기로 하였다. 아빠의 한복 상담 차례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런 아빠를 바라보는 예비 시아버지가 홀로 외로워 보이셨는지, 아니면 아빠만 맞추는 그 상황이 퍽이나 불편했던지 엄마는 나의 시아버지 되실 분에게 예의상 한마디를 걸었다. " 사돈어른도 한복 없으시면 하나 하시지요. 나중에 애기 돌이나 특별한 날 우리 모두 한복 입고 나타나면 멋질 것 같은데 ~ " 시아버지는 아니라는 손사래 한번 없이 바로 상담 자리로 날름 앉으셨다. 어찌나 재빠르시던지_ 다시 돌아와 마무리하려던 예비신랑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며 표정관리가 안 되는 얼굴을 뒤로 숨겼다. 나는 엄마에게 왜 그러라고 작게 말했더니 " 아빠만 하기 좀 그렇잖아. 우리끼리 따로 올 순 없고, 엄마가 해줄게 " 라고 한다. 귀농하신 부모님이 할인율이 적용된 아빠의 한복을 맞추고자 또 서울행을 할 순 없는 노릇 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본인 남편만 한복을 맞추는 상황이 불편해 한국사람이라면 당연히 한복 하나쯤은 갖고 있는 것이 당연한 엄마의 기준에 따라 이참에 하나 하시라고 권하신 것이다. 예비신랑은 손가락으로 나를 찔렀다. 나는 뒤로 물러나 나를 찌른 예비신랑에게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라고 생각하자- 라고 해버렸다.


시모의 치마 색을 밝게 가네 저고리를 밝게 가네_ 아들 가졌지만 분홍색이 좋네 어쩌네_ 그에 앞서 네 거 말고 내 한복을 맞춰야 한다고 할 때도 속앓이만 하고 자신의 엄마가 사돈댁 앞에서 언성을 올리고 창피한 말을 내뱉을 때도 나름 묵묵하게 뒤에 서있던 신랑은 나에게 귓속말로 말했다. " 나 우리 엄마 아빠 한복 값 받아낼 거야. 왜 저래 진짜, 오늘 너무 창피해 죽겠어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는 한복을 얼싸 좋다 맞추겠노라 자리를 차리하고 앉아계신 시부나 결혼식 주인공보다 자신을 더 우선으로 두는 시모의 모습에 남편은 그냥 숨어버리고 싶어 보였다. 나는 그냥 큭큭 웃음이 났다.




그동안 예비 며느리인 나조차 버거운 행세와 말투를 구사하던 자신의 엄마가 설마 사돈이 될 우리 엄마 아빠 앞에서도 스스럼없이 행동하시고 말할 실 줄 몰랐던 신랑은 너무 힘들어했다. 그날 시모는 평소에 하던 대로 잘도 불평불만을 내뱉었고 남의 말을 자르고 언성을 높이는 것은 기본으로 깔고 갔으며 다른 사람 의견은 무시하고 곧이곧대로 마이웨이를 달리셨다. 욕만 안 하셨다 뿐이지 좋은 자리에 모인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였다. 그 옆에 시부는 말리지도 않았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다 결국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본인 한복을 챙겨가셨다.



이 버거운 여정이 한복 맞춤의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한복은 상담 이후 가봉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결국 신랑 신부 양가 어머님, 그리고 양가 아버님까지 한복을 맞춘 우리는 그렇게 가봉의 날에 맞춰 또 한 번 그곳을 방문하였다. 지난번 그곳에서 나갈 때 나는 실장님께 너무 죄송하다 몇 번을 사죄드렸다. 너무 길게 상담한 점 시모가 언성을 높여가며 실장님의 말을 짜르던 행동이 누가 될까 " 저희가 좀 별나죠 " 라며 오늘 고생 많으셨다- 죄송하다- 하였었다.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길 바랬다. 상담은 다 끝났고 옷은 그때 말한 대로 잘 나오기만 하면 문제 될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가봉된 한복을 입은 엄마는 너무 예뻤다.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엄마도 기분이 이상하다며 우리 둘은 올라오는 감정을 주최하지 못하고 뭉클뭉클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결혼식 당일에는 엄마가 한복 입는 것을 도와주지 못할 거 같아 챙겨야 하는 물품과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을 엄마에게 한 번 더 말해주고 어여쁜 엄마의 모습을 눈에 담으며 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예비신랑이 좀 나와 볼 수 있냐며 나를 불렀다. 아빠의 맞춤한복은 엄마가 봐주라며 나를 부르는 신랑에게로 갔다. 신랑은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나보고 가보라고했다. 울렁울렁한 감정이 격해지던 나와 부모님과의 탈의실과 달리 시가 쪽 탈의실은 난장판이었다. 시모는 아무리 봐도 퍼런색 한복이 맘에 안 든다고 했다. " 네 엄마는 분홍 입어 이쁘지? " 라며 곱디고운 비단 한복을 입고서도 인상을 쓰고 계셨다. 어머님 너무 이뻐요 ~ 라며 예비시모의 맘을 달랬다. 신랑에게 뭐가 문제냐고 물었더니 엄마가 자꾸 억지를 쓰고 있다고 한다. 한복 색깔을 바꾸고 싶다느니_ 신발이 맘에 안 든다느니_ 얼마 주고 한 건데 한복 노리개 모양이 이게 뭐냐는 등_ 자신의 말은 듣지도 않으니 뭘 어떻게 해결하냐고 말이다. 나는 어디가 맞지 않으시냐 불편하신 곳이 있으면 말씀하셔라- 물었다. 시모는 " 불편한 게 아니라 자기 얼굴이 확! 살지 않는다 " 고 했다 그놈의 아들을 상징하는 한복 치마 색깔 때문에 말이다. 보조로 가봉 옷 입는 것을 도우시던 이모님은 그건 어쩔 수 없다며 시끄럽게 목청을 높이는 예비시모의 말을 잘랐다. 한복 색이 맘에 안 드는 걸로 다시 만들어드리진 않는다며 아들 가지셨으면서 분홍빛을 왜 또 가지고 싶어 하시냐고 적잖히 싫은 티를 내고있었다. 잘난 아들 두셨으니 푸른빛 하셔야 한다는 말과 함께 더 이상 시모의 불평을 들어주는 이가 없자 어머님은 말을 그치셨다. 그런 직원의 태도가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아마 내가 오기 전에 이미 진저리가 나서 지칠 때로 지쳐 저러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다 같이 모여 사진을 찍자고 다른 편에 있던 엄마 아빠를 불렀더니 시모는 네 엄마가 낫다고 겨우 그쳤던 분홍 욕심을 마지막까지 한번 더 내셨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이제는 마무리하고 가려했더니 시어머니는 내가 고른 원단이 맞냐고 수십번을 되묻더니 결국에는 신발을 두고 직원과 싸우고 있다. 내 친구 누구는 꽃신을 이쁜 걸 했는데- 여기는 왜 이런 신발을 주냐- 고 화를 내신다. 얼마를 받아먹고 이런 신발을 주고 있냐- 고도 하신다. 직원은 아까부터 질려있었고 그런 시모에게 저희가 수천번의 데이터를 통해 드리는 것이다. 꽃신 신고 싶으시면 하셔도 되지만 그날 하루 종일 서계셔야 하는데 꽃신은 발이 너무 아프다며 설득한다. 시모는 꽃이 어마 어마 하게 화려한 그런 꽃신을 친구는 신었다고 그렇게 대단한 그 꽃신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자꾸 어마 무시하게 장식이 되어있다는 식으로 친구의 꽃신을 손짓과 목소리로 쩌렁쩌렁하게 찬양하고 계신다.


" 어머님 하고 싶은 거 하세요. 추가 비용이 들면 낼게요 " 라고 했다. 직원은 비용은 따로 들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그날 그 꽃신을 신을 자신이 있으신지_ 다시 한번 시어머니에게 묻는다. 손님맞이 시간부터 생각하시라고 말이다.


시모는 갑자기 너는 어떤 신발이냐고 내신발을 보자고 했다. 신부인 나의 신발을 나름 꽃신이었다. 시모는 너는 그런 거 하고 나는 왜 이런 허연거 주냐-며 눈에 흰자를 보이면서 까지 나에게 달려들어 따지신다. 맘에 안 드시면 바꾸시라며 직원에게 상품이 나와있는 책자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받아 든 책자에 수록되어 있는 품목들이 자신의 친구 꽃신보다 어마 무시하지 않은 것에 시어머니는 또 한 번 크게 불만을 내뿜으셨다. 나는 엄마에게 엄마도 꽃신 신고 싶으면 바꾸라며 괜히 우리 엄마가 손해 보는 것은 아닌지 엄마를 챙겼다. 엄마는 어디서부터 나온 전통인지 모르겠는 전통과 원래 ~ 를 들먹이며 신부는 화려한 거 신고 어른들은 하얀 신을 신어서 시집 장가보내는 거라고 했다. 엄마는 바꿀 생각 없다고 한다. 그놈의 전통과 대대로 그래 왔다는 원칙에 따라서 말이다. 그렇게 하얀 신을 웃어른이 신고 보내야 잘살고 좋다는 말까지 하니 시모는 "또 그래요?" 라며 그럼 자신도 흰 거 신을까,, 하더니 꽃신에 대한 욕심이 수그러 들었다.


엄마는 하일도 오래 못 신는다. 언제부터인가 그랬더니 구두가 너무 불편하다고 했다. 그런데 그날 몇 시간을 서있고 돌아다녀야 하는데 여기서 챙겨주신 발이 잘 들어가는 흰색의 신발이 편하게 생겼고 무엇보다 하얀색이라 맞는 것이라 했다. 엄마가 시모에게 구두 잘 신으시냐- 물으며 나는 발이 아프면 아무것도 못해서 그냥 이걸 신겠노라 말하고 있었다. 시모는 그날 발이 아파 봤자 얼마나 아프겠냐고 말한다. 엄마는 식 시작 전에 한 시간 식후에 한 시간만 잡아도 벌서는 만큼이나 발이 아플 텐데 자신은 편하지 않은 신발신을 자신 없노라고 말했다. 시모는 그런가.. 하더니 그럼 그냥 흰색 신을 신겠노라 직원이 아까 내밀었던 팸플릿을 내려놓았다. 진이 다 빠진 직원은 " 저희가 다 해보고 하는 건데 그렇게 말을 안 들으시더니 결국 그냥 하시네요. " 라며 쌓였던 자신의 맘을 내비쳤다.




결혼식 당일 시모는 나름 편안한 흰색 신을 신고도 다리가 아파죽으려했다.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고_ 서있어 봤자 얼마나 서있는다고_ 꽃신을 신고 싶다고_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치며 말하더니 엄마 따라 편한 신발을 신어놓고도 아파 죽겠다고 결혼식에 와주신 분들께 인사하는 자리에 자신은 힘들어서 못 간다고 주저앉으셨다.


누군가 소개해줘야 알 수 있는 손님들을 앞에 두고 누구신지 묻지도 못하고 와주셔서 감사하단 말을 전하며 나와 신랑은 그저 웃으며 인사를 드렸다. 아빠는 시모에게 다가가 애들 인사하는데 같이 가서 소개 좀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모는 다리 아파 못 간다 대답했고 인사하는 우리를 단 한 테이블도 따라오지 않았다. 인사가 끝나고 폐백을 준비하러 갔더니 폐백실 이모는 나에게 " 시어머니가 피로를 많이 느끼시나 봐요~ " 라고 말을 걸었다. 나는 " 많이 힘들어 보이시나요? " 라고 되물었더니 어느 정도 나에게 친근감을 표하던 이모님은 내가 편했는지_ 아니면 나에게 꼭 해줘야 할 험담을 하듯이 말문을 트셨다.


폐백 이모 왈 " 아니 신랑 신부 인사하는데 안 따라가는 시어머니는 처음 보네, 저기 가서 같이 다니셔야 한다고 내가 3번을 넘게 말했다~ 신부님 ~ ? 근데 꿈쩍도 안 해. 다리 아프데 ~ 오죽 그래도 신부보다 힘들까 ? 오늘 단 하루인데 내가 그렇게 권할 때는 다 이유가 있는 건데~ 그렇게 엉덩이를 붙이고 여기 숨어계시더라니까 ~ "






신혼여행 이틀째 시어머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축하해주러 오신 분들께 너희가 인사 다닐 때 같이 따라다니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될 것 같다고 말이다. 나는 다 잊고 신나게 하와이를 즐기고 있는데 한이 된다는 말을 그 뒤로 전화로도 하셨다. 그 한을 만든 장본인은 본인이시건만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뭔가 했더니 시아버지의 누님들 - 그러니까 시어머니에게는 손윗시누이 되시는 나의 시모의 시가분들에게 결혼식 이후에 호되게 혼나셨다고 한다. 아들 장가드는데 어미가 돼서 코빼기도 안 비치는 식장은 너희뿐이라고 말이다.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단 하루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리가 아프신 건지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찍혀진 사진속에서도 결혼식 내내 찡그리고 있던 시어머니의 표정은 우리를 축복하는 건지도, 와주신 손님들께 감사하는 건지도 전혀 모르겠었다.

keyword
이전 09화자본주의 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