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시월드에 대해 대처하는 올바른 자세는 미친척이 답이라던 말이 생각난다. 그렇게 알려주던 사람은 나의 회사 선임이었다. 그 시절 나는 결혼에 대해 그 어떠한 생각도 없었으며 남자 친구도 없던 시절인지라 결혼한 여자의 흔한 시모스 트레스를 1도 모르던 때였다.
그녀는 시어머니가 토요일마다 얼굴 보길 희망하며 말도 없이 신혼집에 들쑥날쑥 방문하며, 장문의 카톡을 자주 보내는 데에 질려있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살고 있으니 자주 볼 수도 있지 않냐는_ 시월드에 대한 고통이나 감정 따위는 뭣도 모르는 처녀였던 나의 대답에 지인은 너는 배달음식 시키면 뭐하냐고 묻는다. 기다리죠? 라고 답했더니 기다릴 때 그냥 있냐? 브라 착용하지 않냐고 되묻는다. 그렇다 ! 집에 가면 여자들은 사회생활을 위해 조여오던 그 답답한 브라를 풀어헤치고 자유가 된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배달원에게도 원초적인 그 꼭지라는 날것의 자국을 보일 수 없어 브라를 착용하는 '준비'라는 것을 하는데 연락도 없이 다짜고짜, 갑자기, 들이닥치는 시모에게 사전 장착도 하지 못한 노브라 상태라니_ 모든 며느리들은 그 순간 팍팍 낮아지는 자존감은 물론이고 스트레스는 극도로 치솟으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시가에 대한 그 어떤 좋은 감정도 처참하게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선임의 이러한 노브라 사연을 통해 갑자기 방문하는 시어머니라는 것이 얼마나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인지 한 번에 인지 할 수 있었다. 세상에 좋은 시어머니도 많지만 몇 년 동안 고초를 겪어오던 선임이 나에게 알려준 시월드는 모두가 빵빵한 패딩을 입은 스키장에 혼자 알몸으로 있는 것과 같았으며_ 알몸이 대세인 목욕탕에서 속옷을 입은 세신사처럼 혼자 일을 하는 곳인 듯 보였다.
어떠한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도 없이 다짜고짜 자신의 노브라 상태를 불쑥불쑥 들켜내야만 했던 고통과 잦은 방문요청, 그동안의 수많은 요구사항,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문의 메시지로 시모의 생각과 의도를 남기는 남편의 엄마에게 선임은 미친척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했다.
시모라는 존재는 그렇게 불쑥 전화해서도_ 그것을 강요해도_어느 날 갑자기 쳐들어와도_ 그리고 오라고 불러대도 안 되는 것이다. 아니, 시어머니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것은 없다. 내 엄마조차 시간 되냐며 묻고 연락하며 방문하는 나의 집에 나를 키워준 사람도 아닌 당신이 그럴 정당성은 없어 보인다.
선임이 처음부터 시월드에 대한 불만을 말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을 한 뒤 아무리 친한 나에게도 시월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결혼 후의 삶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 미혼녀인 나에게 예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가끔 시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이 너무 선임을 닮았다고 선임의 남편이자 시모의 아들을 닮지 않아 섭섭한 것인지, 싫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만 지나가듯 하던 분이었다. 그런데 결혼 3년 차 그녀는 폭발하였고 자신이 그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나아가고자 미친척을 답으로 정의했다고 한다.
물론, 선임이 처음부터 미친척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결혼도 안 한 너에게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시가에서 매주 오길 원하는데 안 가는 것도 눈치 보이고 변명을 만들어내기도 힘들다며 시작한 시월드 이야기. 남편과 매일 다투고 속상해하며 보내온 이야기. 결혼하고 매번 싸우는 주제는 시모. 우리가 시어머니 때문에 이렇게 자주 서로에게 화내고 힘들어해야 하냐며 시모만 아니면 싸울 일도 없는 거 같은데 힘들다고 터놓으며 방안점을 찾으려 애써봤지만 결과는 별반 다를 것 없었다는 말.
신혼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 둘은 너무 행복했다. 같이 사는 공간을 채워나가고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며 일어나서 함께 아침시간을 보내고 주말을 함께하며 서로가 존재하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일. 그리고 잠들 때까지 여유시간을 보내는 찬란하고 행복한 우리의 생활_ 너무 많은 시간을 붙어있다면 개인적이던 내가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지_ 내 공간이라는 것이 없어지고 가족이 되었지만 남편이 나만의 공간에 접근하는 것이 신경에 거슬리진 않을지_ 친구는 가끔 혼자 있고 싶어 서로에게 시간을 주고 떨어져 있기도 한다는데 만약 내가 그러고 싶어 지면 남편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_ 이딴 고민은 전혀 무색했고 나의 결혼 생활은 귀여운 남편과 함께 비비고 부닥치며 '너무나도 행복함' 그 자체뿐이었다. 우리 집, 신혼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나는 안정감을 찾아가며 만나는 사람에게 결혼은 너무 좋다- 하지 않을 거라면 모르겠으나 할 거라면 빨리하라고 까지 추천하고 다녔다. 그런데 그런 나의 결혼생활의 첫 싸움 또한 선임이 말한 대로 시모, 시월드 덕분이었다. 충분히 더 행복하고 찬란할 수 있는 우리의 신혼이 다툼과 속상함으로 그윽해지는 건 언제나 시월드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무엇을 하면 내 뒤를 쫓는 남편과 남편이 어디로 가려하면 자신의 아들을 졸졸 쫒아가는 나를 보며 "너희는 싸우지도 않니?" "정말 안 싸우고 지내니?"라고 신기하다는 듯이 말한다. 사이좋은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말투가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나에게 진짜 다툰 적 없냐며_ 남편 때문에 화나는 일이 없냐고_ 매번 묻는다. 어머님은 아버님과 매번 싸우신다. 매일은 당연하고 매 순간 싸우신다. 언성을 높이시고 서로를 헐뜯는다. 며느리 앞에서도 서스름없이 삿대질을 하며 서로를 욕하며 야, 너 하며 목청을 높이실 때면 왜 저러고 같이 살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 언제부터 그래 왔는지 알 수 없지만 서로를 나무라는 게 익숙한 두 분에게 서로를 찾고 의지하는 아들 내외의 모습이 거짓이라 생각되고 그렇게 여기시는지 시모는 남편이 화나게 하는 거 없냐고 여간 물으시는 게 아니다. 질릴 만큼 같은 질문을 수없이 되풀이하시는 통에 정말 한마디 하고 싶어 졌다.
" 어머님 아니면 안 싸워요! "
라고 말이다. 물론 아직 저 멘트를 쳐본 적은 없다. 결혼 준비부터 지금까지 시어머니의 막말이나 태도 그리고 자신만의 고집을 우기시는 통에 남편과 나는 큰 위기를 맞이했었다. 정작 원인 제공을 하신 당사자는 전혀 모르고 무슨 일 때문에 싸우는지 자신에게 말해보라며_ 정말 싸운 적이 없냐며_ 꼬치꼬치 캐묻는 그 모습에 기가 찰 노릇이다.
이제는 남편도 듣기 싫다는 보고싶다는 말로 시월드에서는 여전히 방문을 요청하신다. 남편은 결혼 전에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그 말을 결혼 후에 이렇게나 많이 들을 줄 몰랐고 자신의 부모가 그렇게 자주 본인의 휴대폰 벨을 울릴 줄도 몰랐기에 그러한 모든 것이 이상하고 지겨울만할 것이다. 그렇게 연락해서 보고싶다고 말하는 본인의 부모님에게 진짜로 보고싶기나 한 거냐고 남편은 되묻기도 하고 있었다. 내 부모인데도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너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나를 위로하지만 결국 그 요청 때문에 기분 상하고 방문하여 상처 받고 돌아오면 더 큰 싸움이 되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처음에 내 연락처를 알고 나서 개인 톡으로 연락을 취해왔었다. 나는 단둘이서 이야기하는 그 채팅창을 계속 유지할 자신이 없었고 안부뿐인 그 답장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시어머니가 연락이 오면 단톡 방으로 넘어가 대답을 하거나 시아버지의 안부를 함께 묻는 등의 처세술을 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모는 나와의 개인 톡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단톡 방에서도 연락하고 개인적으로 우리 둘 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보였다. 며느리가 되어주어 고맙다며 갑자기 '사랑해 병'이 걸리셨다. 나 또한 어머님 감사해요- 사랑해요- 해야 하는 상황의 메시지를 만들어버리신다. 나는 도저히 갑자기 알게 된 얼굴 몇 번밖에 보지 않았던 예비 시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감정은 들지 않아 밝아 보이는 이모티콘으로 그 대답을 대신하였다. 지금은 조금 불편하게 사랑을 강요하시면서 나름 좋은 메시지를 보내시지만 둘 뿐인 그 채팅방이 안정화가 되어버리면 그 안에서 남편은 모르게 나에게 요구하는 사항이 생길 것이며 혹은 어떤 말을 찢어지게 함부로 하실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 더 강도 높은 처세술로 늦게 확인하고 대답이 꼭 필요치 않은 메시지는 회피하거나 단톡 방에 해버렸다. 그 뒤로 다행히 시어머니는 개인 톡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메시지의 기본창구는 단톡방으로 옮겨졌다.
가끔 시아버지의 전화를 받지 못해 부재중 전화로 남을 때가 있다. 나는 퇴근 후 연락드릴게요- 라던지 이따 시간 날 때 전화드리겠노라 메시지로 대답을 먼저 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통화할 수 있는 상태에서 전화를 하는 편이다. 그럴 때면 시부는 "너는 참 빨리도 연락한다 - " 라며 농담인 듯 진담인듯한 첫마디를 건네고 통화의 목적을 설명한다. 자신이 필요할 때 언제고 대기해야 하는 며느리가 얼마나 된다고 무조건적으로 본인 원하실 때 연락이 닿길 원하시는 것도 미칠 노릇이다. 정작 본인 아들에게도 이러시진 못하면서 말이다.
카톡방이 뜸해져 며칠 알람이 뜨지 않을 때면 시어머니는 가끔 알 수 없는 사진을 보내는 것으로 단톡 방을 활성화시키신다. 셀카를 찍고 배경을 꾸미는 어플을 이용해 꽃과 나비가 그려져 사진을 보내거나 메시지를 보낸 뒤 빠르게 삭제를 하기도 한다. 이러한 카톡 울림에 나는 어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더이다. 어떤 며느리는 셀카를 보내는 시어머니의 사진에 대해 과한 반응으로 예쁘다- 좋아 보인다- 물개 박수 같은 느낌으로 리액션을 해야 해서 힘들어 죽겠다고 하더라. 나는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디 놀러 갔다며 찍은 사진도 아니고 한밤중에 갑자기 보내는 그 단한장의 셀카는 도대체 영문을 알 수 없었고 나에게 무슨 말을 썼다가 지웠는지도 알 수 없는 삭제된 메시지에 무슨 일이시냐고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시월드에 대처하는 방법의 미친척으로 무응답을 택하였다. 늦게 확인하였고, 몰랐고, 그러하여 대답 시기를 놓친 것 마냥 그렇게 무심하게 카톡방을 열었다 그냥 닫아버렸다.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에 비해 어딘가 모르게 항상 마음에 들어차지 않는 존재가 며느리이고, 자신의 생각에 모자란 며느리에게 어찌나 요구사항도 많으신지 모르겠다. 그 잘난 아들의 주인이 본인이라 생각하고 자신에게 며느리가 열과 성을 다해 보상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먼저 존재한다. 시집살이 개집살이라는 작자미상의 고전 노래가 전해지던 그 시절부터 나의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그 시어머니의 시어머니 때부터 시작된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 문제라는 의식 없이 그저 그렇게 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귀머거리 벙어리로 해오던 것을 답습하고 당연시 여겨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잘못된 점을 모르고 상처 주고 힘들게 하여 비로소 적대감이 생긴 며느리를 어떻게 감당하시려고 저러시는 건지 모르겠다.
고추당추 맵다 해도 시집살이 더 맵더라
시아버지 호랑새요 시어머니 꾸증새요 남편하나 미련새요
귀먹어서 삼년이요 눈어두워 삼년이요 말못해서 삼년이요
백옥같던 요내 얼굴 호박꽃이 다 되었네
백옥같던 요내 손길 오리발이 다되었네
두폭붙이 행주치마 콧물받기 다 젖었네
친구와 오랜만에 서울의 자본주의를 느끼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절친은 나의 임신을 축하해주며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육삼 빌딩의 높디높은 뷰에서 근사한 저녁을 사주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주말의 시가방문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고 맘 편히 방대한 주제를 아우르며 대화하던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뜬금없이 장문의 카톡을 할 수도 있고, 몇 달을 얼굴 보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와의 나름 오랜만의 식사이자 외출이었다. 요즘도 시가에 자주가냐는 친구의 질문 타이밍에 맞춰 역시나 시어머니의 발신전화가 울렸다. 친구는 급작스러운 나의 시모의 연락에 놀라워하고 있었다. 나보다 조금 일찍 결혼하였지만 친구는 시어머니와 한 달에 한번 연락할까 만다고 했던가_ 너무 연락을 안 하는가 싶어 연락해봐야지 라고 다짐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런 그녀의 앞에 나의 시모가 대뜸 전화하여 지금 뭐하냐- 지금 시간 되면 같이 밥 먹자며- 이쪽으로 오라는 식은 놀랍고도 새로운 문화였을지 모르겠다.
너는 지금 친구를 만나고 있냐는 식의 시모의 질문에 오늘 신랑이 저녁 약속을 잡아두어서 저도 같은 날 잡았노라 대답했다. 나에게 연락하기 전 남편과 전화했던 시모는 아니라며- 본인 아들이 혼자 밥을 먹고 있다고 전한다. 어찌 된 일인지 알 수없었지만 나는 친구를 만나면 안 되는 것인지, 회식이다 모임이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아들 덕분에 혼자 밥 먹던 나는 걱정도 안 하셨으면서 밖에 나와 오랜만에 친구를 앞에 두고 있는 상황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의 안쓰러움에 대한 저런 이야기를 크게 떠들어 대시는 통에 나는 인상이 찌푸려졌다.
남편이 약속 있어서 나도 같은 날 잡은 거라고 비슷한 대답을 다시 한번 말해도 시어머니에게 나는 이미 남편은 혼자 밥 먹게 두고 나 혼자 나가노는 며느리가 되어있었다. 금요일 저녁인데 같이 저녁도 못 먹고 서운하다고 하신다. 대체 왜 그렇게 모든 것이 서운하신지 모르겠다. 그렇게 통화하던 시간은 저녁 7시가 넘어있었다. 같이 식사를 하실 거면 차가 막히는 금요일 저녁을 감안해 적어도 1시간 전에는 연락을 주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리고 어머님이 시간 되시는 때마다 우리가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의무는 없어 보였다. 보통 때 같으면 시어머니의 날카로운 말투와 이래저래 속마음을 삭히지 않고 육성으로 내뱉으시는 모습에 "내일 갈까요?"라고 물어보는데 하고 싶지 않았다. 진정 이번 주가 안되면 다음 주에 갈게요~ 라는 말이라도 내뱉던 며느리였는데 그러 말도 하지 않고 배고프실 텐데 어서 저녁 드시라는 말만 해버렸다. 그렇게 나의 소심한 미친 척이 시작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듣기 못한 시모는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네가 밖이라서 오래 통화도 못한다며- 이번에는 목소리 듣는 긴 통화를 못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시고 서운해 죽겠다고 하신다. 이미 친구를 앞에 두고 전화를 한지 꽤 되었는데도 말이다.
나의 지인은 시어머니가 아침마다 남편 밥 잘 챙겨줬냐고- 뭐 먹여 보냈느냐고- 감시 전화를 하는 통에 미쳐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버티다 전화를 안 받는 쪽으로 나름의 묘책을 찾아가는데 안 받으면 안 받았다고 수십 번을 더 해댄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출근한 뒤 전화하셨었냐 전화 온 줄 몰랐다며 태연하게 콜백을 하고는 시모가 전화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 몰랐다는 게 말이 되냐는 시어머니의 억센 물음에 아침에 성관계하느라 정신없어 못 받았노라 대답했다고 한다. 오빠가 밤에는 피곤해하고 어머님도 아시겠지만 당신 아들이 힘이 없으니 아침에만 가능하다며_ 그 잘난 아들을 치밀하게 깎아내리며 시어머니인 당신이 아이를 너무 원하시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질러버렸다고 했다. 간도 크다 싶었다. 저런 말을 정말 내질렀냐고 몇 차례 더 확인을 했었다. 하지만 지인은 몇 년 동안 질렸던 것이다. 방도가 없었고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혼한 두 남녀가 부부관계하는 것이 비밀스러울 것도 아니니 당신이 원하는 손주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노라고 보고 드린 것뿐이었다. 그 뒤로 지인의 시모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뿐 아니라 저녁에도 말이다. 이렇게 우문현답하는 법을 습관화해야 한다.
얼마 전 늦은 나이에 결혼한 지인이 있었다. 둘이 죽고 못살아 아껴주고 사랑하더니 결혼이라는 문턱을 넘기가 어려워 연애만 할 것처럼 둘은 사랑했다. 사랑은 위대하여 지인은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둘은 결혼하였다. 결혼 준비과정 속에 속앓이 하던 것이나 엄마의 반대 따위는 결혼 후 시월드와의 스트레스와는 다른 것이었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안된 지인에게 신혼생활은 어떠냐고 나는 물었다. 연애시절 미칠 듯이 사랑하던 둘을 보고 있노라면 함께 사는 그 생활은 드라마에 나올 것처럼 분홍분홍 하다 못해 영롱한 빛을 내고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지인의 메시지는 "안 좋아"라는 단 세 단어로 응답하였고, 나는 고민도 없이 바로 답을 적어준 지인의 심정에 닿을 것만 같았다. 분명 미친 듯이 사랑하던 커플이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서 하트라도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커플이었는데, 결혼생활이 좋지 않은 이유는 시누이 때문이었다. 가까이 사는 시누는 마흔 넘어 결혼한 지인을 괴롭혔다. 나이도 어린것이 선을 넘고 누가 와이프인지 모르게 월권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멀리사는 시어머니는 뜬금포도 전화하여 지인의 심장박동수를 높이고 있었고, 남편의 여동생이라는 자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만나게 된 것뿐이었는데 서스름 없이 지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다. 시누이와 남편의 엄마인 그녀의 시어머니 되신 분의 생일에 맞춰 여름휴가를 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도 한다. 본인들 이모들한테는 인사하는 자리를 만들 생각을 하지 않는 거냐고도 따졌다고도 한다. 나는 결혼 선배로써 그러는 시누는 본인 시가에 저렇게 하는지 물어보지 그랬냐며 열을 냈다. 이런 일이 일어날줄을 생각도 못했던 지인은 남편에게 속내도 말 못 하고 끙끙 앓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런 시누이의 똥 같은 질문을 받으면 남편을 툭치거나 눈치를 줘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우리 엄마 생일에 휴가 낼 거라?" 라고 웃으며 그 언젠간 유행했던 단어 - 빙그레 쌍년처럼 말하라고 알려주었다.
며느리는 결혼해서 시어머니 생신을 챙겨드려야 하고(굳이 내 피 같은 휴가를 반납하면서 까지) 남편에게는 의무가 없을까. 그렇게 말하는 시누도 알고 보면 본인 시모 생일에 휴가도 안 냈을 년이면서. 늦은 결혼에 생각지도 못했던 시누이의 시집살이, 나이 드신 노모가 의사를 전달하지 못하니 시누이가 나대는 것인지 모르겠다.
바보 같은 질문에는 현명한 대답을 해야 한다. 다음에 시누이가 그렇게 물어보면 지인은 빙그레 웃으며 "네~ 아가씨(아가씨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지만_ 무슨 애도 있는 여자한테 평생의 호칭이 아가씨라니_ 어휴)도 시어머니 생신에 휴가 내서 같이 가시죠? 작년엔 어디 가셨나요? 정보 좀 공유해요~" 라고 하라고 했다.
생각해보면 시월드에 대적하는 자세는 미친 척이 아니라 그에 맞는 인과응보, 역지사지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꾹꾹 참던 선임은 장문의 메시지로 자신을 미쳐버리게 하는 시모에게 결국 화를 냈다고 했다. 장문의 내용은 연락을 자주 하라. 나에게 말을 곱게 하라. 이것이 주된 내용이며 네가 며느리가 되었으니 나를 존중하라는 내용도 포함되어있었다. 그 긴 문장을 읽는데 이상한 띄어쓰기와 상형문자가 즐비하여 보여주는 메시지 내용을 읽어내는 데만도 곤욕이었다.
매주 방문하여 주말 시간을 할애하는 선임에게 그렇게 존중을 강요하는 이유는 네가 자주 연락하지 않으니 날 무시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네가 우리 아들과 결혼하였으니 자신을 존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결국 자신의 아들을 내세워 존경을 표하라는 말은 왜 며느리에게 하는 것일까?
그녀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존중'을 요하는 시모에게 이미 미치고도 팔짝 뛴 상태였다. 면전에다가도 몇 번을 존경하라는 말을 했고 네가 나를 챙기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대접을 원하는 말도 몇 년을 들어왔었다. 당연하다니 나참..
그녀는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잦은 연락을 해야 하며 자주 방문해야 하는 둘째 며느리였다. 첫째 며느리는 멀리 살고 있으니 그 시모는 첫째네에게는 존중을 바라지 않은 것일까? 미안하지만 그 시모는 누울 자리를 알고 다리를 펼치는 벼슬아치 시어머니였다. 첫째 며느리는 내놓라 하는 명문 서울대 출신에 대한민국의 판사였고 첫째 아들과 같은 대학을 거쳐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런 잘난 며느리에게 찍소리 못하면서 그저 가까이 사는 둘째 며느리에게 그놈의 존중을 바라는 것이다. 감히 판사님께는 잦은 연락을 강요할 수 없으니(?) 타격이 된 것 둘째 며느리였던 것. 그런데 미안하게도 그 둘째 며느리도 미국 유학까지 다녀왔으며 나름 네임밸류 있는 회사에 다니시는 커리어우먼 되시겠다. 그런데 더 웃긴 건 첫째 아들의 스펙을 둘째 며느리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서울에 정착하여 이렇게 훌륭하게 아들을 먹이고 입혀 대단하게 공부시켜 키웠기 때문에 판사가 된 것 아니겠니~ ? 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결혼한 둘째 아들이 서울대 나온 판사였던가? 둘째 아들은 형보다 못한 학벌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살아가는 회사원이시다. 그런데 존중과 대접은 받고 싶고, 제일 잘난 건 첫째 아들이고 만만 한 건 둘째 며느리이니 그동안 고생한 자신을 존경하는 건 만만한 너 - 둘째 며느리였으면 싶은 것이다. 시모들이 행동을 하고 말을 할 때 나름 생각하고 따지고 요구한다고 느껴진다. 지인의 시어머니뿐 아니라 나의 시어머니도 분명 내뱉는 모든 말과 태도에 그래도 된다- 고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고 행하시는 것이다. 지인의 시어머니에게 정신 차리고 아들 키운 값 받고 싶으면 첫째 며느리 달달 볶으시라 말하고 싶다. 둘째 며느리가 아닌 그 대단하신 판사 나으리께 존경과 존중을 담은 대접을 받으신다면 시모 당신의 자존감은 더 높아지지 않겠냐고 말이다.
시모들이 말하는 무시나 존중이라는 단어가 생뚱맞은 곳에서 언급된다고 나는 생각되었다. 이전에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차를 주문했던 친구는 무시한다는 면박을 당했고, 선임은 존중 따위를 요구받다니_ 당최 그런 시어머니를 대접해야 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아들 낳았으니? 그놈의 아들 부심. 자신이 없었으면 너의 남편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따지면 시모의 시부모의 윗세대_ 더 나아가 개천절을 챙기는 우리 할아버지처럼 단군할아버지한테 절하고 말겠다.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신이나 업적 등에서 스스로 갖게 되는 감정 같은 거 아닐까.
좋은 인격과 무수한 행동들을 손수 보여주신다면 당신이 존경하라고 말하지 않아도 "우리 시어머니 대단해."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 같다. 같은 여자이면서 누군가의 작고 소중했던 세상의 모든 모든 금이며 옥이였던 딸들이 왜 며느리가 되어서는 이렇게 같은 종족인 여자에게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까. 정말 여자 vs 여자는 어쩔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세상은 변했고, 답습하고 순응하며 대대로 받아들이던 여성들이 며느리가 되는 시대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렇게 전통과 이치를 따져가며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있던 나의 엄마조차 그것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지 않는가? 시어머니가 툭툭 내뱉는 말에 네-네- 끄덕이며 하고 싶은 말은 고사하고 해야 할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찍소리 없이 희생만을 강요당하는 것이 이치이며 미덕인 시대가 아니란 말이다. 무조건 그렇기만 했던_ 그래야만 했던_ 우리 모두가 당연시 여겼던 녀자, 그리고 며느리로서의 위치는 그렇게 답습하던 이 세상을 살아가던 여성들이 변화시켰다. 그러니까 우리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들 딸 차별하지 않고 함께 공부시켰고, 학교에서 여성은 위대하며 남성보다 우월한 종족이라고도 배웠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고 그로 인한 불가항력적인 것은 싸워 이기려고도 노력한다. 그렇게 지금 시대의 신여성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대대로 물려받아 고지곳대로 수긍해오던 60세 전후의 나의 엄마들 세대이다. 그렇게 지금의 이 사회를 헤쳐나간 여성이 결혼을 하여 당신의 며느리가 된 것이다.
그런 신여성이 때때로 의사를 표하고 잘못된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적극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절대 놀라지 말아라! 우리 사회는 이미 그런 여자를 키워내고 있지 않다. 그러니 이것은 미친 척이 아니라 당신들의 교육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