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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결혼

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by 며늘희

08. 자본주의 결혼



나와 남편은 서로 만나 1년은 그저 연애만 하였고 그 다음해 1년을 결혼 준비를 하였다. 그러니까 총 2년이라는 연애기간을 거처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결혼이라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던 20대 때는 그저 대학교 졸업 전에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였다. 그때의 나는 휴학하여 아이낳고 복학하면 좋겠다- 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그러면 경력단절 같은건 고민하지 않아도 되지않을까 생각했기때문이다. (학교의 복학은 회사의 복귀보다 쉽게 보였달까 ? ㅋㅋ) 그러다 20대 후반이 되고 나는 결혼에는 관심도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도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20대초반에 만나 오랜기간 만남을 가져오던 남자와 나름의 긴 연애를 마치고 한동안 나는 그렇게 연애도 하지 않고 오직 솔로로서 나만의 시간과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 내게 너무 착하고 순수하던 지금의 남편이 나타난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 우리는 만났고, 처음 만났을 때부터 결혼을 염두에 두고 만남을 이어갔다기보다는 오랜만에 진실된 사람과 연애다운 연애를 하며 시간을 보냈던 거 같다. 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함께 살아가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나니 뭐든지 척척 앞으로 나아갔다고나 할까_


우리 둘 다 너무 서두르는 식은 치르고 싶지 않아 1년이라는 또다른 사계절을 남기고 준비를 하자고 합의했고, 그 결혼 준비마저 즐거운 여행이나 이벤트로 연애를 즐기듯이 해 나가기로 했다. 첫 관문은 인사였다. 이전 뒷담화에서 말했지만 시모는 첫 만남에서 내가 감당하기 힘든 말을 했었다. 내가 시가에 와서 처음 상처됐던 그 말 " 살만하니 이런 일이 생겨서 "



장남이었던 남자친구와 나는 일가친척들 중에서는 아니었지만 각자의 집에서는 처음 하는 결혼인 개혼이었다. 둘째가 아닌 첫째아들이었던 남자친구는 당연히 그집안의 첫 결혼임이 분명했고, 우리집에서는 오빠가 비혼 선언을 하였기에 (엄마는 제발 바뀌길 희망하고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나또한 나름 우리집의 개혼이었다.


남자친구는 서른이 다가올 무렵부터 집안에서 연애는 하고 있는것이냐는 압박을 받아왔고, 나와 만나는 동안 하루속히 결혼하길 부모님이 원하신다고 들었다. 나의 아빠는 명예가 남아있는 퇴직 전에 내가 식을 올려 그동안 나르고 뿌린 모든 봉투를 걷고자 하는 나름의 포부가 있었지만 퇴직을 일 년 앞두고 실패하셨음을 깨닫고 그 뒤로는 한동안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다 내가 서른이 넘자 이렇게 싱글로만 살 생각이냐며 제발 결혼만 해달라며 내가 원하는 뭐든 다 해주겠다고 하셨다. 휴가기간에 함께 여행을 하자고 하면 아빠 엄마는 너와 말고 신랑 데려오면 비용을 다 내주겠다고 제발 어디서 남자가 떨어지길 바라셨다.


그렇게 우리 둘 다 양가에서 결혼하길 보채고_ 바라던_ 남녀 커플이자

양쪽 집안의 나름의 개혼이었다.




아빠는 결혼 준비 내내 돈문제로 나에게 상의하지 않았다. 현금 예물을 할 때도 알아서 준비해오셨고, 엄마는 전통을 따져가며 보내야 할 것들을 고이고이 때맞춰 보내주셨다. 귀한 딸을 시집보낼 채비를 해놓으신 것이다. 원래 부모인 자신들에게 바라는 거 없이 살라고 말씀하셨고, 본인들 또한 나에게 달라고 하는 것이 살겠노라 말씀하셔 놓고 결혼을 앞둔 딸에게 다 내어주시는 느낌이었다. 나라는 사람을 태어나게 하시고 본인들의 기준으로 시집보내는 그날까지 책임이란 모든 것을 마무리하시는 것 같았다.


그런데 시가는 달랐다. 시가에서는 아들 둘을 키움에도 불구하고 장가를 보낼 밑천은 생각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저 아들이 알아서 하길 바라신 것 같았다. 세상 많은 것이 그러하듯 결혼 또한 돈이 다하는 것이다.



많은 커플들이 결혼 준비에 앞서 돈이라는 큰 장벽에 부딪힌다.

성대하고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바란 적도, 꿈꾼 적도 없기에 식에 돈이 들어가길 원한적은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이 시작하는 데 양가 집안의 생각이 달랐다. 시어머니는 살만하니 이런일이 생겨 참 그렇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이제 늙었으니 너희가 알아서 대출받으라고 하였고, 젊은 너희야 갚아나갈 능력이 되겠지만 나는 못한다고 인사드린 첫날 나에게 말했다. 저희 결혼하겠노라 - 얼굴 보고 인사드리러 간 자리였다. 결혼식 비용은 예산도 안 맞춰봤고 집을 어떻게 구할지 걱정이라는 말도 꺼내지 않은 나에게 대뜸 대출이니, 돈이니, 하는 말은 너무 당황스러웠다.



그래, 돈이 있어야 결혼도 하겠지. 그래서 걱정이라서 저러시는것겠지. 라고 나름 돌려 돌려 생각했지만 몇 번을 더 반복하시던 같은 말에 나는 ' 아 - 도와주시지 못하겠다' 고 이러시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비용 말고도 가정을 꾸릴 첫 자금을 아빠 엄마는 마련해 두셨다. 억 소리가 나는 돈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차곡차곡 딸을 시집보낼 밑천을 늘 두고두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장남은 꼭 결혼을 해야 하고 가정을 이뤄 자식을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면서 밑천은 전혀 마련해놓지 않으셨다. 그 언젠간 예전처럼 남자가 집을 마련하고 여자가 혼수를 하던 나름의 법칙도 없어졌다. 요즘 추세는 반반 이었지만 나의 시월드에서는 본인들의 아들은 기필코 결혼 시키고 싶으면서 그 모든 해결은 결혼당사자인 우리와 나의 친정이 짊어지길 바라셨다. 결혼을 준비하며 갖춰나가는 격식이나 필요한 리스트들 중 받지 아니하는것은 없으면서도 해주시는 것은 없었다. 하고 싶은 건 많고 갖고 싶은 건 수두룩해도 노력하신 부분은 없어 보였다. 물론, 양가 부모님 도움 없이 우리 둘이 해 나아가도 되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부동산이 어찌 그리 호락호락하던가. 친구는 결혼을 하면서 시가에서 도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몇억씩의 대출을 받아 신혼집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신혼부부로 잘 살아가고 버텨낼 수 있을지 내가 마주한 막막한 현실이 버거워왔다.


나는 설사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도움을 주시지 못하더라도 처음부터 돈돈 거리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그것도 내 얼굴을 처음 본 그날부터 말이다. 나는 시집오며 집과 땅과 돈을 물려받았지만 너에게는 줄수없다 - 는 말까지 하시는 시모의 모습에 내가 손 내밀며 어머님이 준비한 것과 가진 것을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방패를 꺼낸 행태가 '이 결혼 반댈세' 라고 말하는 거 같기도 했다.


괜한 부담이나 차림 없이 우리 둘이서 살기로 한 가정을 꾸리는 일에 양가의 보탬이 우리의 독립된 가정에 득만 될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 보탬을 계기로 내가 얼마나 억압받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나의 부모님의 선처에 뿌리칠 만큼 자본주의 앞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다. 양가 도움 없이 제대로 된 경제적 독립부터 시작한 모든 신혼부부들을 존경한다. 우리는 모아놓은 돈은 턱없이 부족했고, 지금 받고있는 연봉이 억대도 아니었으며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대출금 앞에 부모님 찬스를 받은 가정이다. 떡하니 서울의 집을 한채 사주시는 부모님도 있으시지만 나는 현재 우리 부모님과 시부모님께서 도움 주신 것에 감사한다. 아빠는 딸을 시집보내는 보탬으로 생각보다 많이 주셨고, 시가에서는 절대 안 도와주실 것처럼 하다 보태주신 것 치고는 나름 많았다. 물론 그렇게 도움받았음에도 빚을 져서 전셋집에 살고 있고, 앞으로 우리들의 집을 가질 수 있을지는 최대의 의문중에 하나이다.





결혼의 시작부터 돈이 문제였다. 서로 만나는 것도 돈의 쓰임이 문제가 된다.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는 장소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상견례 자리는 예비신랑이 정했었지만 한복을 맞추고 그 외 다른 결혼 준비를 하면서 만나게 되는 부모님들을 너무 비싼 레스토랑에 데려가기도_ 저렴한 곳에 가기도 여간 결정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결국 나름 깔끔하고 중후한 강남의 한 중식당을 정하고 모시고 갔더니 조금 비싼 가격이 써 잇는 메뉴판을 보며 시어머니는 나에게 "너 맨날 이런 것만 사 먹냐" 라며 눈을 굴리며 말하신다. 이런 것이라 함은 중국음식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제법나가는 음식을 보고 하신 말씀인 듯했다. 법카아니면 이런 식당엔 오지도 못한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시모는 무엇이 그리 못마땅했을까_ 비싼 음식을 좀 먹고 살면 어디 덧나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자신의 아들이 아닌 나에게 지금 눈앞에 펼쳐진 메뉴판의 음식은 먹고살면 안 되는 것처럼 따지고 계신다. 그것도 우리 부모님도 있는 그 자리에서 말이다. 그런 예비시모에게 당신의 아들 등골 빼먹도록 내 입맛을 고급지게 다져오지 않았노라 반박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리 대담하진 못한 인간이라 이렇게 뒷담화만 하고있다.


메뉴를 한창보던 시모는 너희가 사는 거냐고 물어본다. 그렇다는 대답에 제일 비싼 능이버섯이 들어가 있는 것을 고르셨다. 엄마는 아빠와 상의하여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사부인도 이거 시키라며 혼자 능이버섯 주문하기 곤란하니 같은 걸로 하자고 말하신다. 비싼 음식 고르는 것이 돈을 지불하는 우리에게 곤란한 일임을 알고계시지만 먹을 생각이신듯 보였다. 하지만 본인만 먹으면 눈치보일테니 우리엄마를 끌어들이고 계신다. 사양하는 엄마의 손을 막더니 네 엄마꺼도 같은 걸로 시키라고 하신다. 나는 엄마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에 시모 뜻 대로 비싼 능이가 들어간 메뉴를 두개 주문해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오늘 행하신 말의 댓가로 언젠간 어머님이 크게 쏘시는 날 나도 젤 비싼걸 먹겠노라 다짐했다. (이왕이면 신랑꼬셔서 두개)



식사가 마무리될때쯤 나는 양가 어머님들께 선물을 드렸다. 예물 맞춘 곳에서 가져온 진주 귀고리였다. 두 분이서 한복을 곱게 맞춰 입고 누구는 액세서리를 하고 누구는 안 하는 것보다 이왕 귀고리까지 맞춰하시라고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내밀었다. 시모는 엄마가 몇 번을 배워 곱게 싸맸던 보자기를 풀어헤치듯 내가 준비한 선물포장을 또 아무렇게나 뜯고 진주에 얼굴을 파묻을 기세였다. 그리곤 이거 빨리 사진 찍어달라 성화셨다. 어디 단톡 방에 자랑질 할 거리가 생겨 좋으신 듯 보였다. " 너무 고맙다 ~ 너무 맘에 든다 ~ " 하셨다. 최고의 선물이라는 칭찬까지 받았다. 그래 자본주의 만세이지 뭐_ 내가 마음 쓴 거, 생각한 거, 그 모든 결과물이 돈 많이 주고 가져온 선물이 최고 아니겠는가 ?


나는 우리 엄마가 액세서리가 별로없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결혼식날 한쪽만 큰 액세서리 하고 있으면 그도 비교될 거 같아 같은 것으로 준비 했노라 알려드렸다. 시모는 나름 화려했다. 남자친구는 자신의 엄마가 잘 꾸밀 줄 모른다고 했었지만 가지고 계신 것들을 보면 온통 크고 반짝이는 것들이다. 아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자인 내 눈에는 시모의 취향이 어느 정도 보였다. 결혼식 전날 네일아트를 받아온 시모의 손은 보라색이었다. 짙은 보라색 그라데이션_ 차분하고 새하얀 결혼식과 어울리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눈에는 그 누구보다 튀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 그날 찍혀진 결혼식 사진들 속에 시어머니의 손톱만 둥둥 떠다니신다. 차라리 반짝반짝 은가루를 뿌려오셨으면 더 나았겠다 생각했다. 하긴 상견례 날에도 짙고 어두운 바탕에 알알이 반짝이가 들어간 네일아트를 받아오셨었지, 시모의 취향인가 보다- 해야겠다.


꾸미는 거 할 시간도 전혀 없다고 하시면서 매번 패디큐어색깔 마저 바뀌신다. 나는 이제 그마저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시모의 꾸밈을 어느 정도 눈치챘던 나는 결혼식 당일에 엄마를 초라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양가 어머님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보이는 액세서리는 귀고리였고, 우리 엄마 성격에 작은 큐빅 하나_ 그마저도 데일리로 하던 것을 귀찮아 깜박하고 그냥 하고 나오실 것도 같았다.


엄마를 위하는 마음이 흑진주 귀고리를 감싸고 있는 반짝이는 큐빅과 함께 시어머니의 취향까지 저격하였다. 나는 결혼 준비기간부터 그리고 결혼한 지금까지 시모의 그렇게 고마워하는 모습은 다신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역시 자본주의 만세 ! 돈의 효과 짝짝짝이다.






간소화하기로 했지만 며느리 될 사람이 시어버지 옷 한 벌은 꼭 해드려야 한다며 엄마는 예비시부의 양복을 맞춰드리라고 하였다. 그와 같이 아빠에게 옷 한 벌 해준 적 없던 내가 결혼이라는 기회에 한벌 빼드리는 것도 기뻤다. 상견례때 이미 새 양복 뽑았다며 내심 좋지만 안해도된다- 괜찮다- 말하는 아빠와 시아버지 그리고 양가어머님 두분을 모시고 함께 예복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신랑 예복을 맞춘 곳에서 아버님들 옷도 함께 하는 것이었고 웨딩플래너를 통해 할인과 혜택이 들어간 업체였다. 그 덕에 아버님 두 분의 옷을 맞추면 구두까지 맞춤 서비스로 진행되었다. 셔츠나 타이 양말까지 그날 입게 되는 모든 것이 제공된다고 보면 됐었다. 어떤 업체는 구두는 추가로 지불할 금액이 생기는데 반에 여기는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신랑 예복을 맞출 때 하나라도 더 서비스를 받아낼라고 용을 썼다. 결혼 전 아줌마 기질이 발휘되었다고 해야 하나_ 그 옛날 콩나물 하나 사면서도 백 원만 깎아달라던 엄마를 본받아 기를 써서 혜택을 받아내고자 했었다.


바지가 아무리 잘 맞춰지더라도 벨트는 필요할 텐데_라고 하며 신랑 벨트를 두 개나 더 받아냈고 행커칩은 기분 좋게 사회자와 축가자의 것까지 더 챙겨달라고 떼도 썼다. 보타이는 대여만 가능한 것인데 저렴하게 주시면 하나 구매하겠다고 했더니 극성스럽게 굴던 내게 무료로 주시기도 하였다. 실장님은 신부님이 살림을 야무지게 하시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생긴 건 돈 팍팍 쓰고 나가는 지출에 신경안쓰게 생기셨는데 여간 알뜰하신게 아니라는 말까지 듣고 꼼꼼히 품목을 따지는 내 모습을 보고 내가 이미 알고 계신 게 너무 많다 안챙겨드릴수도 없다고도 했다.


아버님 예복을 맞추면서도 혜택이란 혜택은 다 받고자 미리 선수 쳐 놓은 것들이 있었다. 대신 아버님 어머님 앞에서 딜을 하는 모습은 보여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아 신랑 예복을 맞추는 날 아버님 예복에 대한 서비스를 확답받고 이미 계약서를 쓴 상태였다.


실장님은 양가 부모님이 오신 자리에서 원래 셔츠는 2벌까지 해드리는데 신부님이 워낙 잘 챙기셔서 3벌을 고르셔야 하고, 타이도 결혼식 당일에 하실 것 하나와 일반적으로 하고 다니실 것 하나 더 제공해드린다며 내덕에 이렇게- 저렇게- 더 해드리는 것들과 자신이 나름 잘나가는 실장이라 이렇게까지 해드릴 수 있다는 것까지 깨알 어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양가부모님이 모두 모인 자리의 분위기와 기분을 살펴주고 계셨다.



그런데 시모는 그런 와중에 대뜸 " 뭐 이 돈에 다 포함되어있는 거지, 뭘 공짜로 줘 - " 라며 내가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바보스럽게, 그리고 실장님의 립서비스가 무색하게 만들었다. 때때로 그 상황에 맞지 않는 시모의 태도와 표정, 거기에 가끔은 짜증까지 더해진 시어머니의 불만은 함께 있는 우리 아빠 엄마가 민망해할 정도였다. 상담하는 내내 뭐 마실 것도 안주냐는 식의 처음부터 불만이 있는듯한 말투를 달고 의자에 앉을때부터 나를 쩔쩔매게 했고 다 포함된 서비스 해주면서 생색내지 말라며 더 깎아야 한다는 발언은 쪽팔리기 까지 했다. 그냥 속으로 생각하셔도 될 것을_


시어머니 말도 맞을지 모른다. 결국 다 합쳐진 금액인데 서비스인거 마냥, 혜택인거 마냥, 대단한 대접을 해주고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걸 언급하는 태도와 언행의 정도가 격에 맞지 않았다.


손해보지 않고 더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결과론적으로 보면 같았지만, 내가 웃으며 실장님께 서비스를 부탁하는 행동과 시모의 말투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시어머니의 지나친 멘트는 그 누구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지 않는다. 웃으며 말하는 이에게 침을 뱉는 격이다. 별생각 없던 사람마저 기분이 나빠지는 언행을 하신다. 식당을 가든_ 물건을 사든_ 시어머니의 이런 판매원에 대한 불친절한 태도는 값을 지불하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특권을 넘어선 행동이다.



내가 결혼 하면서 해드리는 아빠와 시아버지 양복에 좋은 의미와 가치만을 더하고 싶었다. 그렇게 원단을 고르고 색감을 정하는데 있어서 내가 준비하고 생각했던 정성을 싸그리 뭉개뜨리는 것 같아 나는 기분이 별로였다. "별로 괜찮은 것도 없다" "이게다냐" 며 툴툴 거리시면서 추임세를 넣듯이 자본주의에 맞춰 옆에서 계속 돈돈 거리신다. 시어머니와 만남은 왜이렇게 피곤한 것일까. 예비신랑은 그런 엄마의 말투나 행동때문에 옆에서 곤욕을 치르고있다. 그모습이 나의 부모님과는 너무 달라 우리부모님 눈치를 살피기도 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신랑은 결혼한 사람들은 참 대단한거 같다고 했다. 이렇게 준비할 것이 많을 줄 몰랐고 그 과정에서 양가부모님을 모시는 일이 이렇게 힘들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결혼한 사람들에게 앞으로 축하한다는 말보다는 고생했다는 말이 맞는거 같다고 웃으며 대화한 적도 있다. 힘겨운 양복 상담을 마치고 우리는 식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관문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 발렛비


주차비와 발렛비가 따로 결제되는 건물이었는데 실장님께 이야기하여 오늘 계약건도 있는데 주차비는 면제해 달라고 혼자 조심히 가서 쇼부를 보았다. 주차 업체와는 별도이지만 실장님은 나의 아줌마 근성에 순조롭게 처리해 주었고 대신 발렛비는 현금이라 따로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였다. 나 또한 발렛비는 당연히 지불할 계획이었다. 서울 도심 강남 오브 더 강남 한복판에서 발렛비야 당연하다 생각하고 있었다. 결혼 준비하는 많은 커플들이 느끼는 것이겠지만 업체 선정 상담방문만 몇 군데 돌다 보면 사실 아까운 게 발렛비다. 그런데 어쩔수없다. 일찍오면 차 댈곳 없다고 시간맞춰 오라하고 늦게 차를 빼기라도 하면 추가비용은 배를 내야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신랑과 아버님께 발렛비는 나올 것이라고 말했더니 알겠다는 아버님과 달리 어머님은 우리 부모님이 함께 있는 그 엘베라는 공간에서 노발대발이시다. 엘레베이터가 흔들거리도록 소리소리를 치신다. " 아니 지금 몇백을 써놓고 무슨 그런 걸 내니- 그건 공짜로 해달라고 따져라- 어서 ! "

나는 주차비는 처리해 주셨다고 그런데 발렛비는 일하시는 분께 현금으로 드리는 거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1층에 내린 시모는 나를 끌고 다시 엘베에 태우려고 하였다. 다시 올라가라. 얼마짜리를 샀는데 말이 안 된다 - 였다. 몇백은 시어머니가 낸것도 아니면서 발렛비를 절대 내지 못하겠노라 내팔을 잡아당기신다. 남편과 아버님은 이미 멀리 떠나셨다. 듣기 싫은가 보다. 나만 남겨두고 그리 가면 어쩌냐는 것이지,. 엄마는 그렇게 끌려가는 나와 그런 행동을 보이시는 시모를 어쩔 줄 몰라 바라보시다 설득하려 하였지만 이미 쩌렁쩌렁한 시모의 목소리는 건물 로비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주차비가 훨씬 비싸지만 무료로 처리해주셨다는 말과 발렛비는 내셔야 한다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스리슬쩍 출입문으로 향해버렸다.


어휴




결국 발렛비는 신랑이 시부모님꺼까지 내고 끝났다. 이런싱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때 시모가 로비에서 반복하던 말과 어투 그리고 행동을 한글자 한글자 적어낸다면 쓰는 내가 지칠것 같다.


한복을 상담하고 고르던 날에도 발렛비는 시모의 성질을 건드렸다. 발렛비는 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알려드렸지만 그 돈 만큼은 본인 주머니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또 한번만 발렛비 언성 높임이 있으면 나는 화가 날 것 같아 그전날 예비신랑에게 천 원짜리 모아 쥐어주었다. 아버님 차 비용을 말씀 안 하시더라도 자기가 미리 처리해 놓으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럴 때는 어찌나 무심한지 정작 당일에 본인 발렛비만 내버린 나의 신랑이었다. 아버님이 알아서 처리하셨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차에 뒤에서 어머님이 눈을 크게 뜨고 신랑을 무섭게 찾는다. " 너는 왜 니꺼만 내냐. 너네 거만 달랑 내놨냐 ? 뭐 하는 거냐 - 우리 꺼도 내게 돈 내놔라. "


발렛비 이천 원 - 다른 곳에 비하면 천 원이나 저렴한데 그 이천원이 본인들 주머니에서 나오기 싫어 멀리 떨어져있는 아들 차에 달려와 사돈인 우리 엄마 앞에서 다짜고짜 저런 멘트를 날리는 경우는 무슨 격식일까 ? 지난번에도 그렇게 쩌렁쩌렁 난감하게 해놓고 이번에는 발렛비 맡겨놓은 거 마냥 행동하신다.


엄마는 당황해 보였지만 " 사부인 제가 드릴게요 " 라며 가방을 찾았고, 신랑은 짐 정리를 하다 뒤통수를 맞아 황당한 표정으로 옆에 있던 시아버지에게 " 아니, 아빠는 현금 없어? " 라고 짜증을 냈다. 내가 인상을 쓰며 어제 내가 챙겨줬던것과 했던말을 상기시키며 눈치를 주자 신랑이 돈을 내고 마무리되었지만 그 이천 원 때문에 성을 내며 달려드는 모습에서 나는 시부모님들의 인격이 의심되었다. 보통 자신들 발렛비 내며 우리꺼까지 챙겨주시면 모를까_

고속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와 함께 일을보고 식당으로 이동하는 동안 우리의 뒷자석에 타고있던 엄마는 결국 한마디를 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하니 다음에는 모든 차량 같이 결제하자고_ 엄마에게 말하고싶었다. 지금까지 계속 두 차 모두 한번에 우리가 발렛비 내고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그렇게 아들에게 이천 원 받으러 성큼성큼 걸음 옮기는 본인 부인을 잡지도 않고, 말리지도 않고, 말없이 옆에서 바라보시다 돈 받아가신 분은 시아버지였다. (현금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만원짜리 깨기 싫었다나)






세상 모든 것이 자신에게 잘못 적용되는 것처럼 피해의식이 있으시고 불만이 가득이신 시어머니. 거기에 나의 부모님 앞에서도 격식 처리지 않고 할 말 툭툭 내뱉으시는 모습_ 나는 결혼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매가리가 빠져버렸다. 그 뒤 나름 이름 있는 레스토랑으로 모셔 스테이크를 대접했건만 비싸기만 하고 먹을 것 하나 없다며 나가서 피자 한판은 더 먹어야 배가 찰것 같다는 시모의 발언은 잊을 수가 없다. 돈 없이 할 수 있는 것이 많진 않다. 하지만 발렛비 2,000원 조차 선뜻 해결하려 들지 않는 시부모님을 보며 내가 자본주의에 살고 있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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