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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부심

격식없는 시모 ㅣ 뒷담화 하는 글

by 며늘희

06. 아들부심



세상에 많은 케이스의 시어머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이 지극히 대단하신 여성들이 있다. 그녀들은 딸만 있는 가정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 냈다는 어깨뽕을 달고 산다. 요즘에는 아들만 있는 집은 목메달이라고 하던데_ 아마 이런 말은 지금의 젊은 엄마들에게 통하는 말일지언정 나의 엄마세대에게는 먹히지도 않을 단어일 듯하다. 미혼시절 아들 있는 어머니는 다르다는 말에 우리 엄마도 아들이 있는데 뭐 별반 유세여 봤자 얼마나 그러겠거니_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 말이 아들만 둘 있는 엄마는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둘만 낳아 잘 살자를 외치던 그 시절에 오직 남성'만' 둘을 낳은 녀자. 그녀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집안에 여성이 하나뿐이라서 남편을 포함한 세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온 녀자는 말하는 방식도. 생각하는 이치도. 그리고 아들부심도. 어-마-어-마- 하다는 것이다.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난 지인은 아들 둘 가진 시모와 대화가 도통 통화지 않는다고 했다. 삼십 년 넘게 무뚝뚝했던 시모의 아들이라는 자식 두 명은 엄마가 이상하게 말을 해도_ 그리고 맞지 않는 말을 정답이라 우겨도_ 잔소리를 해도_ 뚝심 있게 별 반응 없이 그저 그렇게 지적하지 않고 모든 것을 지나쳐 온 결과 시어머니는 자신이 잘못 알고 있거나 맞지 않는 말을 주장하더라도 그것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과 말을 며느리에게 강요하신다고 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일지라도 시어머니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에 나오는 기정사실이 된 모든 진실도 시모가 아니라면 그렇게 대화의 결론이 나야한다고 했다. 살림의 방식을 무조건 본인이 해오던 것이 정답이라고 우기시는 것은 기본이었으며 신생아는 체온이 높기 때문에 더운 날씨에 약하거늘 아기는 무조건 추위를 탄다며 한여름에 꽁꽁 싸매 땀띠를 만들어오질 않나. 목소리 하나로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이 정답인 것처럼 들이민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던 지인은 미세먼지가 극심해지던 2017년 시모와 매번 같은 문제로 트러블을 겼었다고 한다. 미세먼지가 너무 심각하니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지인의 바램이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제발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으로 알림이 뜨는 날 만큼은 집안에 있어달라는 것이 부탁이었다. 매번 아이를 도맡아 보살펴주는 것이 아니라 도우미 이모님이 일이 있어 못 나오실 때만 맡아주시는 것인데 하필 그때마다 지인의 속도 모르고 미세먼지는 나쁨의 절정을 찍고 있었다고 한다. 집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부탁이었고, 어쩔 수 없이 외출하게 된다면 두 살밖에 안된 어린아이에게 마스크를 기필코 착용시켜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하지만 시모는 미세먼지가 자욱하든 말든 무조건 나가 아이를 놀이터에 데려다 놨고 자신은 그 앞 벤치에 앉아 휴대폰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마스크는 들고나갈 생각조차 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부탁을 했건만 벤치에 앉아 자신의 발이 모서리 부분에 살짝 보이는 사진을 찍어 보내는 시추에이션은 무엇일까. 내가 너의 말을 듣겠냐 - 네가 내 말을 들어라! 라고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단다. 농도 진한 미세먼지 덕에 아무도 없는 놀이터를 독차지하고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에 너무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자신의 아들_ 그러니까 지인의 남편을 소중히 생각하듯 나 또한 내 아들 건강이 염려된다 몇 번을 말하고, 부탁하고, 싸워봐도 답은 하나. 시어머니는 미세먼지는 건강에 안 좋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건강에 좋은 먼지는 무엇일까. 이것이 상식에 맞는 말인가? 그럼 그 미세먼지 때문에 국가에서 보내주는 재난문자는 무엇이란 말이가. 지금 재난상황이라고 알려주는데 건강에 좋지 않은 게 아니라니.. 이 억지는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지인의 시어머니는 세상이 너무 좋아져서 미세먼지 농도 따지고 있는 것이지 그 옛날에도 다 있던 먼지라고 말씀하신단다. 너 어릴 적에도_ 우리 아들 뛰어놀 때도_ 미세먼지는 나쁨이었지만 너희 잘 컸다며 유세 떨지 말라고 하신단다. 그러면서 시어머니는 나도 마시는 공기가 뭐 나쁘다는 거냐며 손주가 어리다고 마시면 안 되는 게 어딨냐고 하신단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만들어진 대기오염의 집합체 - 미세먼지

90년대와도 극심히 달라진 요즘의 미세먼지를_ 황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것이_ 이토록 심각해진 것은 최근의 일 이건만, 원래 있던 것으로 답을 지어버리고 마셔도 살만하니 아이도 괜찮다는 결론을 이뤄낸 지인의 시어머니에게 그 아들 둘은 한마디 반격 없이 대꾸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묵묵하게 기본적인 상식을 알려주지 않고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고쳐드리지도 않으며 본인들의 생각은 가슴에 고이 접어둔 시아버지와 아들 두 명이 시어머니 곁에 언제나 한결같이 존재하였으니, 지인의 시모는 며느리에게 언제나처럼 자신이 또 맞았으라고 결정하신 것 같다고 한다. 아들을 둘이나 낳으신 크나 큰 노고로 인해 시모가 하는 모든 말은 답이 되는 특권을 누리셨다.




그렇다고 아들만 가진 시어머니들이 무조건 말이 통하지 않고 모두가 이렇다고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딸과 아들을 둘다 가진 어머니일지라도 며느리에게는 아들부심을 내세우고 자신의 딸이 며느리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본인이 했던 행동 다 잊어버리고 펄쩍 뛰는 사람도 있거니와 그와 다르게 어떤 어머니는 며느리의 입장도 이해해주시는 분이 있을 터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케이스의 시어머니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내가 아들만 가진 시어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그런 사례들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둘만 낳아 잘 살자를 외치던 시절에 아들 둘을 낳아 기른 많은 시어머니들은 남성의 무뚝뚝한 보호 속에 특별한 여성으로서의 지위를 계속 지니고 살아왔다. 나의 시모 또한 그렇게 아들 둘 가진 어깨뽕 장착하신 육십 세 전후의 여성이시다.


대체 대한민국에서 아들이 그리 중요한 것일까. 그 대단하신 아들 낳은 것은 사실상 생리하는 모든 가임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_ 그러니까 이 세상에 여성이 없었으면 남성도 없는 거 아닌가? 결국 아들을 낳음과 동시에 아들부심이 생기는 걸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처음 엄마가 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임신이라는 것을 드라마에서 단순히 '우웩' 하는 장면으로만 보았고, 나와는 상관없던_ 그저 먼 세상 이야기였는데 아이를 잉태한다는 것이 비로소 내가 직면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결혼이라는 제도 또한 삼십 대 중반까지 안드로메다쯤 멀리 떨어져 관망하다 얼마 전 받아들이게 된_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되었지만 말이다.)


아이를 가졌다는 말에 시가 친가 모두 축하해주셨다. 그런데 아이의 성별에 유독 집착하는 쪽은 시월드였다.

아이의 성별은 수정 순간 결정되는 것이고, 당신 아들의 불알 속 씨에 따라 그 여부가 결정된다고 설명해 준다면 너 똑똑하네 너 잘났네- 그래서 너 나 가르치려 드냐- 라고 할 것 같았다. 이런 말로 성별의 여부가 남성에게 책임이 있다는 말을 받아들이실 세대가 아니다. 아직 대한민국의 시모들은 며느리가 아들을 가졌네, 아니네, 로 여성 탓을 하는 시국이다. 임신을 준비하면서도 며느리의 위치는 한없이 낮고 낮기만 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임신이 잘 되지 않아도 네가 몸이 약한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듣게 되고 진맥을 보러 가자고 끌려다니는 쪽도 보통은 아내 쪽이다. 친구 한 명은 결혼한 지 몇 년째 아이를 갖지 않고 있자 때마다 약을 보내 주시며, 가임기를 체크하는 시모 덕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결혼을 했고 부부관계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지만 부부가 알아서 해 나아가야 할 관계 맺음까지 시어머니가 간섭하고 있으니 화날 일임이 당연하다. 그냥 아이를 좀 늦게 갖고 싶다고 말해도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며_ 여자가 시집을 왔으니 어서 임신을 하라고 보챈다고 한다. 또 다른 친구는 본인 아들은 제쳐두고 자신만 볶아 대길래 요즘 남자가 문제인 경우도 많다고 말씀드렸더니 임신 = 여성의 것으로 남녀가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여성이 책임지는 것으로_ 그야말로 설교를 당하고 왔다고 한다. 참다못한 친구는 남편과 함께 진료를 받았고 결과가 남편 쪽에 문제가 있음으로 나왔기에 시부모님께 확인사살을 해드렸음에도 그래도 네가 애를 받을 것이니 몸에 꽉끼는 옷일랑 입지도 쳐다보지도 말고 몸 관리하라는 말만 반나절 들었다고 한다. 답답하기 짝이 없다. 정작 몸속의 정자를 개선해야 하는 쪽은 시어머니가 매번 그렇게 잘났다던 그 아들임에도 불고하고 말이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제 난자는 아주 튼튼하다네요~ " 라고 말하지 그랬느냐고 나는 친구의 하소연을 들으며 말했다.






어찌 보면 늦게 한 결혼이었던 나는 노산만큼은 피하고 싶었고, 그런 나의 의견과 아이를 원하는 남편의 바램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다행스럽게도 우리 부부는 아이에 대한 가족계획 의견이 일치하여 결혼 후 바로 임신을 하기로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에 하늘이 도와주셨는지 아이도 예상보다 빨리 갖게 된 것이다. 아이를 가진 지 몇 주가 지나자 성별은 언제쯤 알 수 있냐는 질문이 계속되었다. 사실 아이라고 부르기도 힘든 태아도 아닌 배아 시기의 젤리 곰 보다 작은 나의 자궁 속 생명체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가 있을 리 없다. 시아버지가 물어보면 옆에서 시어머니도 나도 너무 궁금하다 - 고 재촉한다. 얼굴을 보면 볼 때마다_ 병원을 다녀왔노라 초음파 영상을 보내드리면 메시지로_ 안부 연락을 하는 유선상으로도_ 성별을 알려주지 않던 시절에 사셨으면서.. 10달 꽉 채워 낳을 때야 비로소 남자아이인지 여자아이인지 알 수 있었던 분들이 이렇게나 궁금해하시니 본인들 자식 가졌을 때는 오죽 답답하셨을까 싶다. 그렇게 성별에 관심 많으신 분들을 내가 삐딱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성별 여부에 대해 질의하시면서 내 아이가 그 무언가가 달려있었으면 하시는 마음을 내비치면서 물어보시기에 나는 마음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는 우리가 임신 사실을 알려드렸던 날 남편 가졌을 때 시누이가 아들을 낳아 집에 왔었다며_ 그게 너무 부러워서 화장실 갈 때마다 제발 아들 낳게 해달라고 그-렇-게-나 기도를 했다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똥간에서 아들을 바란다고 천지신명님께 빌던 이야기까지 내가 들어야 하는 이유는 너 또한 나처럼 첫째는 아들을 낳았으면 좋겠다는 말인 것 같았다. (둘째도 아들을 낳을라는 말은 아니겠지.)



폐백을 하면서 시부모님이 밤과 대추를 던져주었을 때_ 몇 번의 시도 끝에 우리에게는 오직 밤 세 개만이 올려져 있었다. 할 만큼 여러 번 던졌기 때문에 마무리하고 사진을 찍으려는 찰나 시어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 중에 대추만을 골라 재빨리 우리 쪽으로 던지셨다. 여러 의미가 있는 음식이지만 씨가 있는 대추는 아들을, 씨가 없는 밤은 딸을 상징하는 걸로 여겨진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갑자기 우리 품으로 날아들어 온 대추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무리하려 했던 사진작가는 언제 이게 다 날아왔냐며 방금 전 까진 없지 않았냐며 놀라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날쌔게 대추를 골라 주시던 그때부터_ 시어머니는 나에게 아들 낳기를 강요하셨는지 모르겠다. 내가 임신을 하고 입덧이 별로 없자 시아버지는 며늘희가 입덧도 심하지 않고 먹는 것도 딱히 가리지 않으니_ 아들인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나름 장손인 남편과 결혼한 나는 첫째는 빨리 아들을 낳고 둘째는 편안히 딸을 낳길 바란 것도 있다. 나의 시아버지는 위로 누나만 줄줄이 있는 막내이자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었다. 게다가 3대 독자였기에 군대도 면제되었다고 하신다. 그런 시아버지의 첫 번째 아들이 내 남편이기에 나에게는 세상이 아무리 많이 변했더라도 뭔가 아들을 낳아야 할 것 같은 무거우면서도 기분 나쁜 의무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만약 첫째 아이가 딸이라면 어떤 반응이실지 두렵기도 하달까_ 그런 마음을 가지면서도 뱃속에서 꼬물거리는 내 젤리 곰 아기가 내 마음을 읽을까 봐 아닌 척을 하고, 딸이든 아들이든 건강하게만 자라길 기도 하고 있었다. 임신 증상을 보고 아들일 것 같다는 시부의 말에 시모는 그저 웃고 있었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고 또 한 번 성별 이야기가 나왔을 때 시모의 태도는 나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남편은 내가 과일 귀신이라고 어떤 과일이든 씻어만 주면 금세 없어져있다고 말했다. 아버님은 과일을 많이 먹는 것을 보니 딸인가? 딸인가 봐- 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모는 시부의 입을 틀어막고 두 손을 올려 아버님의 팔뚝을 때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시추에이션으로 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시아버지는 뭐가 어떠냐며 우리는 아들만 두 명인데 딸이면 이쁘고 좋다며- 아들 딸 상관없다- 라고 자신의 입을 틀어막던 시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하고 싶은 말을 하셨지만, 나의 시모는 아버님이 내뱉는 말을 얼른얼른 주워 담기라도 하듯 손사래를 치고 말하고 있는 시부의 입을 재빨리 막아버리며 그런 소릴랑 하지도 말라고 핀잔을 주시는 것이었다. 너무 화가 났다.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이런 대접이라니_ 나는 너무 예민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남편이라는 작자는 지금 어떤 문제가 일어났는지도 모르는 눈치이다.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에 시가에 가고 싶지 않았다. 성별로 내 아이를 차별할 거라면 낳아서 보여드리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보통은 16주 차에 넌지시 던져주시는 담당 선생님 말에 성별의 반전만 없다는 확실하다는 남녀 확인 시기에도 나는 마냥 기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아직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70프로는 파란색이지만 아직 분홍색이 아니라고 말하긴 어려워 의사 선생님은 22주 차에 정확히 알려주시겠다고 했다. 더 높은 확률이 남아라는 의사의 말을 남편은 곧바로 부모님들에게 전하자고 말했다. (남편, 너도 아들이 좋은 거냐?) 나는 싫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번 시가에서 있던 일을 설명했더니 역시나 남편은 전혀 그런 일이 일어난 줄도 모르고 있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었으면서도 그 상황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만 며느리라는 이유로 내 뱃속의 아이의 성별 결과에 대해 기뻐할 수도_ 죄송스러워해야 할 수도_ 있는 것인지 화만 났다. 그 일이 있은 뒤 또 한 번의 시가방문 때 (보아라. 내가 얼마나 잦은 시가방문을 하고 있는가!) 이번에도 아기 성별이 화두가 되었다. 시아버지는 정말이지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으신 건지 '남편 닮은 아들'이어도 좋고 '며늘희 닮은 딸'이어도 좋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웃으며 '남편 닮은 딸'이면 어떻게 하죠? 라고 농담을 던졌다. 아버님은 등치가 큰 딸도 이쁘지 뭐 - 라며 살이 오를 때로 오른 남편을 보며 허허거리셨다. 그런데 시어머니만큼은 그 순간 일시정지.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가 싫은 눈치이다. 아니 누굴닮든 결과론적으로 딸이라는 것에 웃고 떠들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지독히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던 일을 멈추고 시부를 한껏 째려보는 그 모습에서 나는 또 한 번 상처만 받았다. 본인도 딸이면서 그렇게 아들이 좋을까? 나도 아들을 낳으면 저리 될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내 아이의 성별은 판명되지 않았다. 나의 작고 귀여운 젤리 곰은 앞으로 어떤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_






그놈의 아들 부심 때문인지 결혼하고 한동안은 시댁이라는 말을 썼는데 어느 날 호칭에 대한 거부감이 왔다. 이유는 시어머니는 나에게 남편을 존대하라고 말하셨고 이제 결혼했으니 다른 사람이 볼 때 사용하는 호칭에 조심해야 한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내가 어머님 앞에서 남편을 막 불러댔던가. 시어머니처럼 자신의 남편에게 소리소리를 질러 댔던가. 며느리에게 보여주시는 행동은 막장이시면서_ 나만은 자신의 아들을 위하고 존중해야 하는 상황을 만드신다.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시모의 말에 삔또가 상해 남편을 존대한다는 것은 어떻게 말하고 불러야 하나 고민하게 되었다. 너님의 귀한 아들을 대체 얼마나 우월하게 해 드려야 하는 것일까?


순간, 결혼 전 명절이 다가오던 어느 날 뉴스에서 이제부터 사용하는 가족 호칭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진다는 내용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남존여비사상이 존재하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시댁은 높여드리고 처가는 낮춰 버리는 문화_ 남편의 식구들 호칭에는 높임 표현을 더해 도련님 아가씨 하는데 반해 내 식구들에게는 별도의 높임 표현 따위는 사용하지 않는 이 말 같지도 않은 문화 말이다. 그렇게 시집와서 시누이에게 올케라고 불리우는 며느리들은 오라비와 계집의 합성어인 알고 보면 기분 나쁜 뜻을 가진 그 올케로 불려지면서도 정작 상대에게 아가씨라고 존중하여 불러드려야 하니 결혼과 동시에 갑자기 아랫사람이 되는 기분을 왜 한국의 녀성들만 느껴야 하는 것일까.


그리하여 아가씨건 올케 건 도련님이건 처남이건 이름과 함께 땡땡 씨로 부르는 방향, 시댁만 높이고 처가는 낮추는 행태가 아닌 동등하게 시가 처가로 개선하는 것. 그리고 부계 자족에만 친할 친(親) 자를 사용하여 정감 있게 부르는 것에 반해 모계 가족은 바깥 외(外) 자를 사용하는 것도 피하고 이쪽 할머니든 저쪽 할머니든 동등하게 그냥 할머니로 개선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스쳐 지나갔던 뉴스 내용을 다시 찾아보고 나부터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시동생을 극진히 도련님 도련님 ~ 이라고 불러드렸는데 생각해보면 그 도련님이 나한테 형수라고 하지 않던가. 형수'님'이 아니라? 내가 더 윗사람이고 나이도 많거늘 왜 나를 존대하진 않는 거지? 그날로 나는 시댁을 시가로 부르며 도련님 대신 시동생 이름을 앞에 넣고 ㅇㅇ씨로 부르기로 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에게 엄마는 우리는 약자니까 뭐든 잘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었다. 엄마의 생각지도 않았던 낮은 기세에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딸을 가진 부모는 그냥 아들 가진 부모에게서 약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이치인가. 그리고 딸을 낳아 남부럽지 않게 금이야 옥이야 키워놓고도 뭐든 잘 봐주기만을 그토록 원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마음과 그동안의 온갖 수많은 설움들은 나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만들어버렸고 아빠 엄마 앞에서 크나큰 눈물 방물을 떨어뜨려버렸다.




아들 낳아 대단하던 시절의 그녀들이 가지고 있는 아들 부심을 어떻게 채워드려야 하나.
요즘은 딸이 많아야 금메달이라고 하니 20년쯤 후에는 딸 부심이 생길까.
그날이 오면 대한의 모든 아들들이 처월드에 고통받고 과연 가슴앓이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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