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없는 시모ㅣ뒷담화 하는 글
결혼 준비를 하면서 그리고 결혼을 한 뒤에도 내 생각에는 잦은 시가 방문과 연락을 기꺼이 해내고 있는 나에게 시가에서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매주 다녀오던 그곳을 한 번이라도 가지 않고 둘만의 신혼생활이라는 달콤한 시간을 보내려는 나쁜 X 인 나에게 이번 주는 오지 않으냐- 고 시부와 시모가 번갈아 가며 그러면 안 되는 것처럼 연락하고 있으며, 통화를 할 때마다 도통 연락이 없어 잘 사는지 걱정이다- 라는 말을 매번 듣고 있다. 그렇게도 안부와 대접을 바라신다. 한 번은 당신의 아들만 보낸 적이 있다.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약속이 있어 시가 근처에 가야 했고 술을 마시게 되니 하루 자고 다음날 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득달같이 나에게 연락이 와서 하시는 말씀이 너와 같이 와야지 이렇게 아들만 보내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남편 친구들만의 모임이었다. 결혼한다고 얼굴을 본 적 있지만 남자들끼리 모여 웃고 떠들고 마시고 즐기는 자리였다. 내가 낄자리가 아니라고 설명하자 아들친구들만 있는 모임이라도 결혼한 네가 같이 가서 가만히 말 않고 앉아있으면 된다 하신다. 그러니 부부는 둘이 움직여야 하고 너는 아들과 함께 약속을 마치고 시가에서 자고 갔어야 한다고 하신다. 보고 싶어 하시는 마음 감사하지만 그렇게 한 번이라도 더 나를 시가에 들이고 싶으신 거 같았다. 남편은 약속에 가서 놀고 나는 시가에 앉아 두 분을 모셔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시부모님은 아들이 아닌 며느리인 나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신 것이다. 내가 웃어드리고, 내가 말동무가 되어드리고, 내가 지긋이 살펴드리길 엄청 원하신다.
나는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하였다. 남편을 소해해 준 쪽은 남편의 친구이고 그 친구의 아내가 내 친구이다. 그러니까 남자는 남자끼리 친구 / 여자는 여자끼리 친구인 셈이다. 우리를 소개해준 부부가 나들이 간 곳에서 나의 시부모님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것도 신기하여 시부모님은 친구부부와 커피숍에 가서 시간을 보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내 친구에게 시어머니는 며늘희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 며늘희는 요즘 잘 지내는지 너-무 궁금하다 ~ 는 말을 수십 번 했더이다. 걔네는(우리 부부는) 매주 뭐 그리 일이 맨날 있다고 하더라 ~ 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너무 심심해 죽겠다는 시모의 불평을 친구는 계속 들었어야만 했다. 남자 쪽은 어릴 적 같은 동네에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었기에 나의 시부모님과 안면도 있고 왕례도 있었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았겠지만, 친구에게는 내 결혼식 이후 어쩌면 두 번째 보는 사람인 나의 시부모님이 친근하지 않았을 터_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그렇게도 심심함을 표하셨다. 그런말을 전하시면서 시모의 표정이 너무 안좋으셨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너무 속상했다. 가슴이 막혀왔다. 지난주에도 방문했고, 연락도 자주 하고 있는 와중에 단지 오늘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나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핑계 있는 일정으로 주말에 시가방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꿈만 같은 토요일이었다. 그렇게 공식적인 일정 덕에 시부모님과 함께 하지 않은 그날, 시모는 나를 몇 개월도 전에 본 친구보다 시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않고 주말에 너-무 너-무 심심한 노부부를 만들어버리는 무심한 며느리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매주 일을 만들어 핑계를 대고 시가의 방문을 회피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무엇보다 나름 자주 시가에 들리고 있는 나를 무방문, 무연락하는 사람으로 남들에게 말하고 다니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나의 사정도 모르는 친구부부는 아마 내가 찾아뵙는 건 고사하고 시부모님께 연락도 잘하지 않고 내 멋대로 사는 아-주 대-단-한 며느리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의 시부모님은 우리들의 친구부부 또한 그들의 시가에 가지 않고 둘이서 데이트하는 것임을 왜 인지하지 못했을까? 주말다운 주말을, 결혼 N년차 부부가 신혼스럽게 보내고 있는 그 둘을 보면서 공식적인 일정이 있지 않아도 친구 부부는 시부모님들과 함께 식사하기보다 둘만이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_ 왜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일까. 많은 결혼한 이들이 부부 둘이서 데이트를 잘만 하고 있건만 왜 당신들의 며느리와 아들은 공식적인 일정마저도 단 둘이서만 시간 보내는 것이 못마땅한 것일까.
대체 얼마나 대접해 드려야 그 속이 풀리실까. 내가 굽신굽신 매일매일 매시간마다 연락하여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노라고 알려드려야 할까. 사실 주말마다 우리 부부가 무엇을 하는지 알려드려야 하는 보고 아닌 보고를 계속하는 이 결혼 생활도 지겹다.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_ 없으면 없는 대로_ 오라 가라 하시니, 특별한 스케줄이 없음에도 핑계를 만들어야 할 것만 같고 진정 일정이 있음에도 믿지 않으시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그걸 왜 매번 시부모님께 알려드려야 하는 것이지? 며느리 의무규정에 명시된 것인데 나만 모르고 결혼했나 보다.
결혼 전에 시모는 나에게 매일매일 안부전화를 하라고 선포했었다. 그 당시 나는 시어머니를 미워하게 되지도 않았던 때이지만 그 말은 나에게 압박으로 느껴졌다. 우리 엄마에게도 매일 전화는 고사하고 카톡도 가끔 하는 내가 남편이 될 사람의 엄마에게 그렇게 매일매일 연락을 취할 자신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시어머니들은 자식이 따로 가정을 꾸려나간 것에 대해 걱정이 많고 모두 - 다 - 너희를 위해 하는 것이라는데 그것이 며느리를 괴롭히는 일이라는 것은 전혀 모르는 것일까?
한 남자도 결혼과 동시에 출가외인이 되어서 자신의 가정을 꾸리는 것인데 그 가정의 중심이 된 남자에게 엄마라는 존재로 왜 이렇게 흔들고 간섭하는 것일까. 무엇보다 내 남편은 회사의 위치로 인해 본가에서 떨어져 나와 생활한 지 7년이나 지난_ 나름 오래된 세대주인데 처음 혼자 살게 되었을 때도 이렇게 집착하셨을까.
연애시절 내가 본 시어머니의 연락은 그리 잦지 않았는데 이제 챙겨주는 아내까지 생긴 본인의 아들이 걱정인 것은 나를 못 믿는 것일까_ 네가 내 아들을 데려갔으니 그 출생지인 자신에게 충성하라는 것일까_
매일매일 전화하라는 선포 앞에 나는 그 말을 그저 한 귀로 흘려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혼이 점점 다가오면서 왜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하지 않느냐고 -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고 - 따지는 듯한 예비시모의 언성에 나는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시아버님은 "정말 피곤하겠다 며늘희야, 네가 어쩔 수 있겠냐" 라며 옆에서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셨지만 예비시부 또한 연락을 자주 안 해도 된다는 말은 일절 하지 않으신다. 다짜고짜 화를 내는 시모에게 시부는 애들이 알아서 살도록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까지 하셨지만 예비시모는 걱정되고 준비가 잘되는지 알아야 하니 매일매일 연락하라고 또 한 번 매일매일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나는 그야말로 잘 대처해야 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도 생각을 오래 하며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되었다. 잠깐 생각하는 시간을 벌고자 침묵을 지킨다면 싫어하는 티도 날것이고 그사이 시모는 내가 듣기 싫은 요구를 하나 더 할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나는 재빨리 " 예랑이에게 연락하라고 말씀하신 거 아니에요? " 라며 나의 책임을 돌렸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생활과 다른 방식으로 삽십몇년을 쌩판 모르게 살다 갑자기 당신에게 살갑게 매일매일 전화할 어린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그 의무가 진정 누군가에게 있다면 그건 당신이 가슴 폭에 꼭 싸고돌고 싶은 나랑 결혼하기로 약속한 당신의 아들이자 예비신랑 - 예랑이 아니겠는가?
" 제가 매일 하라고요? 못해요. 자기가 전화해 - 원래 매일매일 전화하나 봐? " 라며 기존에도 그렇게 연락을 해왔었는지 의문을 담아 나는 시어머니에 대한 예의를 한치도 모르는 생각 없는 여자인척 말해버렸다. 사실 지극히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당신의 아들도 아닌 나에게 매일매일의 전화 요구는 아닙니다 ! 라고 예비 시어머니인 당신에게 해야 할 말을 한 것뿐이었다. 이것이 예의 없는 행동일까. 그렇게 말을 해버리고 나니 예비시모는 맘에 들지 않은 듯 혼자서 구시렁거리고 계셨다. 시어머니는 아마 그렇게 초반부터 안부 대접을 받으며 기선제압을 하려 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좋고 친해지고 싶으며 딸처럼 예뻐하시겠다고 하셨지만, 말은 그리하시고 나를 대하는 행동은 우리 엄마가 날 대하는 방식이 아닌 지극히 며느리에게 많은 것을 바라시는 시어머니였던 것이다. 그런 예비시모에게 나는 내 의사를 전달해야 했고, 나의 솔직하고 뻔뻔한 발언으로 인해 결혼 전 매일매일의 전화요청은 없어졌고, 나는 내의사를 똑바로 전달했기에 그저 마음이 편안해졌다.
가끔 이런 나의 행동이 시어머니를 무시한다고 생각될 수 있을까? 그런데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고 예의를 차리고 있음에도 더 무리한 요구를 할 때 나는 시모에게 한 발짝 다가가 그건 못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얼마 전 친구는 시어머니에게 “너 나 무시하냐”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상황은 식사 후 커피숍에서 생겼다고 한다. 식사시간 내내 식당 음식을 불평하던 친구의 시어머니는 차를 마시러 간 곳에서 그녀에게 나는 체한 것 같으니 먹지 않겠다고 했단다. 친구는 그래도 속 편하게 하는 것이라도 드시라고 권했지만 시모는 안 먹겠다 말했다고 한다. 두 번의 권유에도 마시지 않겠다고 대답했지만 커피숍이라는 것이 마시는 음료값만 받는 것이 아니라 자릿세를 먹고사는 것 아니던가? 그녀는 1인 1주 문의 기본을 지켜 다른 사람들의 주문과 함께 주문에 없던 시어머니의 체기를 안정시켜줄 따뜻한 차 한잔을 주문해서 가져왔다고 한다. 심지어 주문을 직접 한 이는 그런 상황을 마주하고 그녀와 상의 한 친구의 남편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커피숍의 자리값과 시모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끙끙 노력했던 그런 친구에게 날아온 언성과 단어는 몹시 격양되고 불쾌함의 결정체였다.
너 내가 하는 말 무시하니?
배려를 한 그녀에게 무시라는 단어는 대체 어디서 나오게 된 걸까. " 아니 그게 아니고 한 명씩은 주문해야 하고.. " 그 무서운 시모의 억양에 움츠려 들 수밖에 없던 친구는 시모에게 자신이 무시가 아닌 배려를 했음을 아 - 주 죄송스럽게 어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녀의 남편이란 작자는 자신의 아내가 힘든 상황임을 눈치채지도 못했고, 자신의 엄마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지적도 하지 않았으며_ 내 친구의 감정이 어떠한 상태인지_ 이 상황이 얼마나 가슴에 박히는 상황인지__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당신을 위해 시간 내서 맛집을 찾아 모시고 갔으나 그 식당 또한 불만 가득이었던 시모의 부정만 가득했던 식사시간 뒤에도 자신의 남편 부모라는 이유로 평생을 모르던 얼굴이던 당신이라는 어르신을 커피숍에서 까지 깍듯이 모시고 있는 그녀에게 시모는 왜 무시라는 단어를 사용해야만 했는가. " 주문 안 해도 된다니까 - 괜한데 돈썼다. 생각해줘서 고맙다. " 이 정도 말과 고마움의 표시면 되지 않았을까 ? 그것이 그렇게 소리치고 화낼 상황이었을까 ? 무시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한 문장 안에 그저 며느리이기 때문에 던질 수 있던 마음은 아니었을까 ? 만약 다른 이가 당신을 배려해서 그렇게 주문하여 가져왔다면 과연 그 시모는 당신 내 말 무시하냐고 다짜고짜 말했을까 ?
금이야 옥이야 곱게 키운 세상의 모든 딸들이 결혼을 하고 난 뒤 시월드라는 곳에서는 왜 무시받아야 할까?
나는 그 시모에게 달려가 말하고 싶다. 당신을 배려한 행동이며_ 지금 시어머니라는 위치에서 당신이 아랫사람 대하듯 내 친구를 무시하고 있다고 !!
시모들이 말하는 무시라는 단어나 대접받아야 한다는 행동이 생뚱맞은 곳에서 언급된다고 나는 생각되었다. 초록 맘 카페에도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다며 다짜고짜 전화하여 "너 우리 집안 무시하냐" 고 소리치거나 자신이 해오던 방식을 따르지 않는다며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며 엉엉 우는 시모도 있다고 했다.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고_ 어찌나 올바른 방식일지 모르겠지만_ 그런 단어가 튀어나올 상황이 아닌 곳에서 며느리에게만은 왜 이렇게 자주 무시하냐는 물음을 하시는 것일까.
본인 또한 누군가의 딸이며 며느리였으면서 갑자기 자신은 하지 않던 딸 같은 며느리에 대한 환상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들 낳아 대단하던 그 시절에 나는 딸로 태어나 우리 엄마에게 스펙이 되지 못한 것일까? (그런데 우리 엄마도 아들 낳았고 그러니까 나에겐 오빠가 있다.) 시어머니라는 사람들은 대단한 당신의 아들을 두고 귀한 남의 집 딸에게 막말을 툭툭 내뱉는 것일까. 이런 하대를 받으면서까지 그분들의 안부를 살피고 자주 찾아봬야 하는 것일까. 당신이 키워낸 자랑만 한가득인 그 아들이 사실은 무심한 대한의 아들이라 너무 심심한 당신을 상대해주지 않으니, 갑자기 만난 며느리에게 아들부심을 담은 연락과 만남 그리고 무조건적인 갑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누군가가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알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권력과 지위가 있는 상태일 때 알 수 있다고 한다. 언제나 뒤로 물러나기만 해야겠고, 남녀차별을 받아오던 육십 세 전후의 여자들이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며느리라는 상대방에게 본인이 서있는 우월한 위치에서 보여주는 행동과 말투, 그리고 마음가짐은 그 시어머니의 인격의 정도는 아닐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