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의 뜻을 찾아서.
참으로 오랜만에 듣고 써 보는 단어다. '함수'. 중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커다란 주머니 모양 두 개를 만들어 놓고 화살표를 찍찍 그어대다가 물결처럼 굽이치는 3차 함수 그래프를 그리던 어느 시점에서 내 기억 속 '함수'는 멈춰 있었다. 그러다 다시 코딩이 뭔지 좀 알아야겠다고 컴퓨터 앞에 있다 이 단어를 또 듣게 될 줄이야.
영어로 함수를 'function'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어딘가에 우스갯 소리로 'function'을 보고 '기능'을 떠올리면 문과생, '함수'를 떠올리면 이과생으로 구분할 수 있다던데, 그걸 읽으면서도 나는 'function은 기능인데 웬 함수?' 하며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쳤으니, 그야말로 '찐'문과였었나보다.
영어에 능통한 편도 아닌데 수학에서, 그리고 컴퓨터에서 함수라고 하는 것을 'function'이라고 부르는 것은 내용을 들여다 보니 어설프게나마 알 것 같다. 변수를 넣었을 때 그것에 대응하는 값을 만들어 내는 '기능'을 하니까 그렇게 일컫나보다. 수학적으로 정확한 설명은 아닐지 몰라도 아주 틀린 이해도 아닌 듯하다. 그런데 '함수'는 도통 모르겠다. 그런데 더 모르겠는 건,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도합 5,6년은 '함수'란 말을 듣고 써 왔을 터인데, 처음에 낯설었을 이 단어가 무슨 의미인지 단 한번도 궁금해 한 적도 없던 내 자신이다. 지금은 듣고 나니 이렇게 의미가 궁금해지는데, 지금보다 호기심이 월등히 많았을 내 10대 시절 왜 나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까?
어쩌면 뒤늦게 궁금증을 갖게 된 게 다행일 수도 있다. 검색창에 '함수의 의미'라고 쳐 보니 이미 누군가가 나같은 사람을 위해 자세히 설명을 써 놓았다. 20여년 전의 내가 '함수'라는 단어에 질문을 던졌다면 답을 찾기까지 아마 한참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답을 얻기 전 수도 없는 면박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함수'에서 '함'은 상자를 뜻하는 한자이다. 인터넷 속에서 누군가는 이를 '마술 상자'에 비유했다. x를 넣었을 때 y라는 값으로 만들어 주는 '마술 상자'. 설명의 적절성 여부를 따질 정도로 기초 지식이 있는 게 아니라 믿을만한 비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학교를 다니면서 지금까지, 그러니까 소위 '공부'를 해 왔다고 생각했던 기간동안, 심지어는 누군가를 공부시키고 생각했던 최근 몇 년까지도. 정말 '공부'를 한 게 맞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초등학교 다니는 딸 아이의 수학 교과서를 펴 보았다. '대각선', '원', '원의 지름', '원의 반지름', 가분수', '대분수', '진분수', '자연수' 등등 한때 익숙하게 보고 썼던 용어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 중 내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몇 개나 될까? 하나도 없다.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실은 내 착각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그동안 우리 주변의 정보들을 떻게든 빨리 많이 접하는 방법에만 골몰했을 뿐 우리는 유독 '궁금함'과 '질문'을 통해 생각하는 것에는 인색했다. 학교에서조차 어떤 것에 궁금해야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시험'과 '진도'라는 명분에 기존의 지식들을 욱여넣기에 바빴다.
수많은 정보들이 거센 파도처럼 몰려드는 세상이다. 자칫하다 그 물결에 휩쓸려 자신을 잃고 여기저기 떠도는 신세가 되기 쉽다. 파도의 물결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그 위에서 여유 있게 물결을 주도하며 즐길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 교육이고, 그렇다면 교사는 지식의 쪼가리들을 긁어 모아 학생들 손에 쥐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찾아 내고 엮어내고, 생각하고 이해해 내는 힘을 길러줘야 할 일이다. 늦었지만 나부터 이제는 그런 공부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