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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자까 Nov 24. 2024

공부만 잘하면 인정받을 수 있어

쟤는 공부 잘하는 애야

 중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났다. 학원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이제 너네 예비 고1이야~ 이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 얘기에 부응하듯 삼 년 동안 사용했던 스마트폰을 버렸다. 인터넷이 되지 않는 구식 피처폰으로 핸드폰을 바꾸며 나름의 의지를 다졌다.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진짜 열심히 해야지.


 집 근처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가고 싶던 고등학교여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익숙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걱정이 되었다. 반 배정을 받고, 입학 전에 친목을 다지는 오리엔테이션이 열렸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 앞에서 바짝 긴장을 했다. 친구들의 말에 누구보다 환하게 웃으며 반응하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표정은 점점 굳었다. 만난 지 다섯 시간이 지난 친구의 농담에 애써 웃음 짓다가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오리엔테이션 삼일 동안 반에서 겉돌았다. 누구와 함께 밥을 먹어야 안 어색할까 고민하느라 고통스러웠던 점심시간이 끝나고 혼자 앉아있었다. 중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애가 말을 걸었다. 그때 친구 없다고 나를 깔보고 무시했었지. 아니나 다를까 그 애는 “너 친구 없어?”라고 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혼자 있고 싶다고 했다. 자리를 피해 화장실로 갔다. 돌아왔더니 뒤에 애들이 옹기종기 모여 떠들고 있었고, 다행히 내 자리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더니 공부를 잘하게 생겼다는 말을 했다. 그게 말인지 똥인지 생각하다가 반응을 일이 초 정도 늦게 했다. 흥미를 잃었는지 애들은 자기들끼리 복도로 나갔다. 빨리 집에 가고 싶을 뿐이었다.


 입학식 날, 1학년 모두가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대강당에 모였다. 형식 상 입학식이었지만, 그냥 입학시험 성적통지 자리였다.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줄을 세워 성적을 매기는 것에 익숙해지라는 학교 측의 나름의 배려(?)인 듯했다.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 평균점수와 1등과 꼴등의 점수를 알려줬고, 담임선생님은 성적표를 나눠주었다. 수학 백점, 1등급. 국어 1등급. 성적표를 받고는 놀랐다. 고등학교는 성적 받기가 더 어려울 줄 알았는데 웬일일지 실력이 먹히나 보다. 아무렴 좋은 일이었다. 좋은 대학교에 가서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반 애들이랑은 친하지 않아서 쉬는 시간에 도서관에 가는 시간이 많았다. 어느 학교에 가든 있는 도서관 죽돌이들이 모여있었고 몇몇 얼굴들은 수업시간에 봐서 낯이 익었다. 화장도 하지 않고 무던하고 착한 애들이었다. 그 친구들이랑 빠르게 친해졌다.


 시간은 정신없이 흘렀다. 학기 말이 되었고, 첫 성적표를 받을 시간이 다가왔다. 처음으로 등수가 새겨진 성적표를 받아본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었기 때문에 긴장 반 기대 반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다른 애들도 다 열심히 하던데, 성적이 잘 나올까? 3등급 이상은 받아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전교 3등이 나왔다고 했다. 술렁술렁. 누굴까? 하고 있었는데 내 이름이 불렸다. 애들이 박수를 쳐줬다. 웃으면서 대단하다고 치켜세워 줬다. 내 생에 가장 짜릿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작년에 우리 학교에서 서울대를 4명 보냈으니까 나도 가능하겠네? 방학식 때는 대강당에서 장학금을 받으러 단상 위로 올라갔고 전교생 모두가 보는 앞에서 상을 받았다. 상장을 받아 든 순간 박수가 쏟아졌다.


 자율학습과 선행학습으로 찌든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했다. 친구들과 선생님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많이 변해 있었다. 선망과 부러움의 눈빛, 그리고 종종 수학이나 과학문제를 풀어달라고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샤프를 휘갈기며 사고과정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을 마치면 고맙다는 말과 함께 멋지다는 칭찬을 받았다. 어울리지도 않는 질투도 받아보았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가 있었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무시받지 않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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