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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Oct 27. 2021

대화 : 가장 편한 사람에게 쓸데없는 말을

「슬기로운 의사생활」  리뷰 (3)

※ 오랜만에 [대중문화, 교육을 만나다] 카테고리에 글을 쓴다. 사실 어떻게 「슬기로운 의사생활」 리뷰를 마무리할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갑작스레 「슬기로운 의사생활」 의 시즌3 제작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쉬운 허탈감이 들어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쓴 2개의 토막글에 이어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에 담긴 교육을 마무리하고자 본 글을 작성한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에 담긴 교육을 파악해내는 데 양석형만한 캐릭터가 없다. 결국 글을 쓰다보면 양석형을 다루게 된다. 다른 의사 친구들에게 교육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두 개의 시즌을 통해 가장 '교육된' 모습을 보여준 주연은 그 누구도 아닌 양석형이다. 친구와의 '유대감'을 통한 교육됨의 표상인 '밴드'를 제안한 것도 양석형이며, 앞으로 후술할 친구와의 대화를 통한 교육됨을 대놓고 보여주는 장면 속에서 주인공을 맡은 것도 양석형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5화에는 양석형은 채송화와 교수실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서 양석형이 전처인 윤신혜와 이혼하게 된 전말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양석형은 전처와의 결혼 생활에 있어 3가지 노력을 했다고 말한다.


첫째, 결혼 전부터 혼수로 인해 전처가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이는 양석형 엄마의 엄청난 압박 때문이었다. 결혼 후에는 하루에 30통씩 전화를 해댈 만큼 집착이 심했고, 윤신혜는 이에 따른 스트레스 때문에 수면제를 먹으며 잠이 들곤 했다. 이에 양석형은 해결책으로 윤신혜에게 돈을 내줄테니 유학을 가라고 권유했다.


본인 딴에는 윤신혜를 위한 권유였으나, 이후 윤석형 엄마는 이 사실을 알고 윤신혜의 친정에 전화해 "왜 우리 아들 돈으로 딸 유학시키려고 하냐"며 핀잔을 주었다. 실패한 것이다.


둘째, 시간이 흐를수록 윤신혜는 우울증에 시달려 거의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이를 본 양석형은 윤신혜에게 친정에 가 있으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윤신혜는 시어머니가 무서워 이를 저버렸다.


셋째, 윤신혜가 시댁에 가자고 해서 함께 갔는데, 이때 양석형은 윤신혜가 시댁 안방 화장대 위에 있는 반지를 훔쳐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윤신혜는 이를 목격한 양석형과 눈이 마주쳤다. 양석형은 그 이유가 궁금했으나, 물어보지 않았다.


즉, 양석형이 전처와의 결혼 생활에 있어 노력한 것은 권유, 조언 및 물어보지 않음인 것이다. 이것이 노력일까? 이에 대해 채송화는 양석형에게 다음과 같이 직언한다.



네가 무슨 노력을 했니? 그건 회피한 거지. 차라리 왜 훔쳤는지 캐물어보고 싸우는 게 노력이야. 너, 아무것도 안 한 거야. 수면제는 왜 이렇게 많이 먹냐, 정신과 상담은 어떠냐, 이렇게 물어보고 얘기를 해 봐야지. 고민만 하고 생각만 하는 게 그게 무슨 노력이고 해결책이니?
-「슬기로운 의사생활」  5화


여기서 채송화는 교육의 공급자다. 양석형의 지난 행동에 있어 올바르지 않은 점을 지적함으로써, 양석형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자 한다. 양석형이 한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 '회피'라는 점을 지적한다.


물론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은, 이 부분에 있어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이 또한 채송화의 생각이다. 산수처럼 1+1=2라는 참인 명제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채송화는 본인의 의견을 양석형에게 전달할 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참인 명제를 전달하는 일뿐만 아니라 내 의견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 또한 교육이라는 점이다.


양석형도 채송화의 이러한 이야기에 동감을 한다. "나도 알아."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뒤이어 그는 자조적으로 자기 자신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어른이 덜 됐어. 미성숙한 인간이야."


양석형도 채송화가 말한 '지난 노력은 회피다.'라는 의견에 동감하면서, '고민만 하고 생각만 하며 회피했던 것은 미성숙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 양석형은 교육의 수요자다. 채송화가 전달한 교육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보인다.


채송화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인지한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이야.
-「슬기로운 의사생활」  5화


상기 대사는 상당히 교육적인 대사다. 오답을 고르지 않고 정답을 고르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본인이 오답을 골랐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고치려 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역시 성공의 일부분이라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도 그렇다. 단순히 100점 시험지를 너풀거리는 것이 우수한 것이 아니라, 50점을 맞았더라도 절반의 오답에 대해 본인이 인지하고 거듭나고자 하는 태도가 교육 수요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양석형 말대로 채송화는 "사람을 쥐락펴락"하는 교육 공급자의 스탠스를 취한다. 심지어 후반부에는 해결책까지 제시하는데, 이는 다름 아닌 본 글의 제목과 같은, "가장 편한 사람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이다.


채송화가 이 해결책을 제시한 데는 양석형이 수동적인 스탠스로 혼자 고민만 하다가 결국 갈등상황을 해소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 더 좋은 답을 얻기 위해 혼자 고민하다 보면, 시험 시간이 끝난다. 본인의 생각이 꼭 완벽한 정답이 아니더라도, 설령 쓸데없더라도, 밖으로 표출해내야 창조가 발생하고 평가가 이루어지며 교육됨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양석형에게 필요한 시험지는 '가장 편한 사람'이다. 쓸데없는 오답을 내뱉어도 그것에 대해 행복하게 반응해줄 수 있는 시험지 같은 편안한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양석형을 더욱 거듭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채송화는 '채점-동기 부여-해결책 제시'라는 3단계의 과정을 거쳐 양석형을 교육시킨다. 한편, 이 관계는 단순히 교육 공급자(채송화)-교육 수요자(양석형)이라는 일차적인 관계로만 비추어질 수 있지만, 거듭 말하듯이 교육은 삶이기에 이런 일방적인 상황에서도 채송화가 교육 수요자이자 양석형이 교육 공급자일 수 있다. 3단계의 과정 속에서 채송화 역시 배운 것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에 담긴 교육을 조명하면서 친구의 중요성을 다루어보았다. 가장 나에게 동일한 눈높이에서 나를 교육할 수 잇는 사람은 친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손쉽게 모방할 수 있는 사람 역시 친구다. 그래서 친구가 더욱 중요한 셈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다섯 친구들은 서로 정말 좋은 친구들이다. 그들의 지극히 평범하고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에서도 교육은 발생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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