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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메디아 Sep 28. 2021

밴드가 하고 싶어 : 유대감과 인간성

「슬기로운 의사생활」 리뷰 (2)

「슬기로운 의사생활」 을 통해 교육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극중 주인공 5인방 '99즈' 중 양석형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그는 이 5인방이 시청자들 앞에 등장하게 된 주요한 원인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양석형은 율제병원의 산부인과 조교수로, 그 전에는 미국에서 펠로우(전임의)를 하다가 귀국하여 엄마와 놀고 있었다. 원래는 안 그랬지만 곧 후술할 사건들로 인해 극심한 마마보이가 되었고, 심지어는 사회성 결여된 히키코모리와 같은 모습을 종종 보인다. 이러한 둔한 모습이 답답해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섬세한데 티를 못내는 곰 같은 스타일임을 알 수 있다.


의과대학 동기이자 99즈 중 한 명인 안정원이 VIP 병실 운영을 위해 동기들에게 VIP 병실 담당 의사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을 때, 양석형만 유일하게 이를 거절한다. 연봉 2배에, 지정 주차에, 개인 연구실까지 제안하지만 거절한다. 양석형에게 물질적인 부분은 그닥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양석형은 되려 생뚱맞은 조건을 제시한다. '예전처럼 밴드를 다시 하는 것.'


알고보니 5명의 주인공들은 의과대학 재학 시절 자기네들끼리 모여 밴드를 결성하여 자체 공연(?)을 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의사 일에 치이고, 각자의 삶에 바쁘다 보니, 밴드를 다시 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석형은 잔잔한 호수에 과감하게 돌을 던진 셈이고, 결국 밴드는 결성된다.



이들은 의사 일을 저버리고 밴드를 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바쁜 의사의 삶을 유지하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모여 지정곡들을 연주해낸다. 이러한 연주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매주 안방극장을 찾아가는 콘서트일 뿐일 수 있지만, 주인공 자신들에게는 그들의 정신없는 삶을 제대로 환기하는 역할을 한다.


의사는 겉보기에 화려하지만, 인간군상의 가장 적나라한 면을 그 어떤 직업군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마주해야 하는 직업이다. 이는 인간이라는 종(species)을 객관적이고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차갑고 단절된 채로 인간의 기능을 개선할 때 최적의 결과를 도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그들 자체의 인간성 역시 냉각될 우려가 있다. 양석형이 밴드가 하고 싶었던 이유도, 이 지점과 맞닿아있을 지도 모른다. 과거에 그들 사이의 풍성했던 유대감과 인간성이 그리워졌기 때문일 지도.


특히나 양석형에게는 불운한 가족사가 있다. 여동생은 실족사로 사망했고, 어머니는 이 충격으로 다리에 장애를 가졌으며, 아버지는 아들보다 어린 여자와 불륜 행각을 벌였다. 한 차례 이혼 경험도 있다.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을 지켜만 봤다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양석형은 친구들을 과감히 이용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흔쾌히 친구들은 이용되어 준다. 밴드는 그 수단이다. 유대감과 인간성을 되살려주는 밴드의 재결성을 통해, 양석형은 한층 더 본인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타인에 얽매여 부정적인 관계 속에서 허덕이기보다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통해 맘껏 즐겁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서로 교육하고 교육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99즈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준다.


양석형은 의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물려받을 뻔한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간이 아까워. 시간이 너무 아까워. 내가 좋아하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지금 당장 하면서 살래. 그래서 밴드도 하고 싶었어. 너희들... 내가 이용한 거야.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12회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1 마지막회에서 양석형의 이 같은 대사는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인간성 없을 뻔한 퍽퍽한 의사 생활이 슬기로워진 이유는 그들이 곁에서 함께 친구로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밴드를 통해 한층 더 강화된 것이고, 서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 교육의 경험은 차질없이 축적되어 간다.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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