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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ietheyogini Jul 14. 2020

Facing your own sadness

05. 자신의 슬픔을 마주하기 


"나에겐 이런 일들이 있었어 그리고 나에겐 이런 일들이 있었지." 

"그래서 나는 치앙마이에 오기로 했어."


각자가 겪고 있던 슬픔들이 큰 원동력이 되어 치앙마이라는 낯선 땅에 모인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었던 다양한 감정들을 나누며 조금씩 서로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나와는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온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느 순간 나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 짐을 느꼈다. 심지어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겪고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무것도 아닌 일에 징징대고 있는 것 같은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졌다. 


'그냥 입을 닫고 있을 걸 그랬나 보다. 아무렇지 않다고 웃어 보일 걸 그랬나 보다.'


제삼 자와의 객관성을 바탕으로 한 대화는 내 문제에 안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던 나를 조금은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어 주었고 그런 시각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낯선 이들에게 사적인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과정을 통해 마치 다른 사람에게 일어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낯선 느낌도 어느 순간 받게 되었다. 



"It does not feel real to me anymore. Did it really happen? "

"더 이상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 정말 이런 일들이 나한테 일어났었나?"



초반에는 울지 않고 이야기를 꺼낼 수 조차 없는 나였지만 반복적인 말하기를 통해 스스로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로봇처럼 느껴지는 지경에 도달했다. 말이라는 행위를 통해 감정이 이렇게 사건과 분리가 되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뿐. 혼자 있는 시간에는 어김없이 수많은 기억들과 감정들이 나를 잠식해왔고 다시 그것들에 갇혀 숨을 쉴 수 없었다. 다시 나는 제자리였다. 그렇게 무너짐과 일어섬의 끝없는 반복이었다.) 




"Feel what you need to feel and let it go.

Do not let it consume you."


Quote credit to Dhiman







나의 슬픔이 다른 누군가의 것과 비교하여 하찮다고 느껴질 때에도 우리는 자신에게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누가 더 슬픈지 그래서 누가 더 슬퍼할 자격이 있는지 서열을 매기기엔 우리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이고 그 기준은 더할 나위 없이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슬픔이라는 감정에 있어서는 더군다나.


슬픔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그것을 부정하고 외면하기보다는 내 슬픔이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비극 중 가장 슬픈 비극인 듯 최선을 다해 맘껏 슬퍼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울어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다. 스스로가 마음을 다해 내 슬픔을 마주하고 그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여 '슬퍼함'을 허락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치앙마이에서 그것을 맘껏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것이 충분해졌다면, 지겨워졌다면 혹은 더 이상 이 슬픔의 감정에 잠식되기 싫다면 다양한 타인과의 반복적인 대화를 통해 감정과 사건을 분리시키고 내 슬픔을 바라보는 조금은 객관적이고 가벼운 시선을 가져보는 것이다. 


My yogi friends from all over the world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사람들과의 수많은 대화 속에서 얻은 조언들과 응원들은 분명히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말을 하는 과정에서 오는 내 감정과 사건의 분리는 분명한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는 단단하고 객관적인 시선, 이것이야 말로 내가 치앙마이에서 얻은 앞으로 찾아올 수많은 슬픔들과 마주할 수 있는 나만의 비장의 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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