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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른 연습 Sep 27. 2021

행복하게 살아

 유난스러웠던 그 해 여름에 내 조카의 돌잔치가 있었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지만 조심히 진행하기로 했다. 큰누나의 첫 아이였고, 그 아이의 첫 생일잔치였다. 그냥 넘기기엔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가족들이 마스크를 뒤집어쓴 채로 모여들었다.


 아이는 똑똑했다. 자기 생일인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자기에게 고정되어 있는 열몇 개인가의 눈을 일일이 맞추며 인사하고, 뒤뚱거리며 의자와 의자 사이를 활보했다. 자기가 웃으면 모두가 따라 웃는다는 것도 알았다. 심지어 박수를 치며 호응을 유도하기도 했다. 빈틈없이 사랑스러운 그 아이는 돌잡이로 오방 색지를 들었다. 연예인이 될 운이란다. 그 자리의 모두가 한 살 배기의 인생을 스무 해쯤 앞당겨 그려보며 아이 같은 웃음을 지었다.


 두 할머니가 대표로 나와서 아이의 앞날에 덕담을 해주었다. 나이 지긋한 친할머니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살라고 했다. 다들 박수를 쳐주며 진심을 더했다.


 그다음은 외할머니, 우리 엄마의 차례였다. “행복하게 살아” 아, 그런데 엄마. 이 좋은 날, 그 예쁜 말에 떨림을 섞으신다.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아이에게 행복을 기원해주시면서 스스로 감격하신다. 오롯이 아이의 앞날에 바라는 단 한 가지. 그 말에 떨림이 섞이자 누나들과 내 눈이 붉어졌다. 


 안다. 행복하게 사는 거, 그게 얼마나 벅찬 말인지. 어릴 때 소원을 빌라고 하면 뜻도 모르고 그걸 빌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게 얼마나 힘겨운 말인지. 그리고 그걸 안다. 엄마의 삶 그 전부를 다 써서 우리의 행복을 기원하고 있다는 걸. 안다. 안다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잊기 쉬운 일이 없다는 걸.


 아이는 활짝 웃고 엄마도 이모도 삼촌도 할머니도 다 울었던, 그날은 그 모습으로 행복이 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건 마스크 한 꺼풀로는 가려질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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