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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귀촌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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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침이와 호돌이네 Aug 26. 2022

가지는 한 포기면 충분해

<귀촌일기 중에서>

올봄에 장에 가서 모종들을 구입할 때였다. 토마토, 오이, 고추 등 모종을 고르다가 가지 차례가 됐다. "가지는 한 포기만 주세요." "한 포기요? 아무리 적어도 두 포기는 심으셔야죠!" 내가 초보 농사꾼처럼 보였는지 모종 파시는 아주머니는 모종의 수량까지 정해주셨다. 예전 같으면 아주머니의 말발에 넘어갔겠지만 이젠 어림도 없다. "아뇨. 한 포기면 돼요!"

     

전문 농사꾼처럼 보이지도 않으면서 융통성도 없이 딱 한 포기면 된다고 우겨댔으니 조금은 답답하셨을지도 모르겠다. ‘모종이 죽어봐야 저런 말을 하지 않지!’ 대놓고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런 표정이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굳이 필요도 없는 모종을 사야 할 이유가 없었다. 모종 값은 해마다 오르고, 몇몇 골라놓은 모종만으로도 이미 몇 만 원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종을 적게 심는다고 해서 수확량이 꼭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모종을 널찍하게 심으면 그만큼 덩치가 크게 자라니 자연스럽게 수확량이 늘어난다. 손바닥만 한 땅에 모종만 많이 심는다고 해서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단 한 포기만 심을 때에는 모종이 뿌리를 내릴 때까지는 신경을 좀 써야 한다. 딱 한 포기 심었는데 죽어버리면 그 해 농사는 끝장이니까. “처음이 중요해. 일단 모종이 흙냄새를 맡고 나면 그때부터는 잘 안 죽거든!” 초보 농부였을 때 줄곧 듣던 말이다. “혹시 모종이 죽으면 새로 사다 심으면 되지”라고 하실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농사에는 때가 있다고, 그때쯤이면 이미 농사 시기를 놓쳐버린 후다.    


파란 차광막을 깔고 파프리카 두 포기와 가지 한 포기를 심었다.

가지는 키가 제법 크게 자라는 작물이므로 밭 끝자락에 심었다. 그런데 모종을 심을 때 한 가지 실수를 했다. 집 앞 인삼밭을 철거할 때 얻은 파란색 차광막을 검은색 비닐 대신 깔아주었다. 차광막은 엄청 질기므로 몇 년은 사용해도 될 테고,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폐비닐 쓰레기도 줄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생각은 좋았는데 차광막은 내가 기대했던 기능이 전혀 없었다. 기껏 차광막을 덮어주었건만 햇빛이 투과하는지 차광막 안에서 풀이 자랐다. 어차피 풀을 뽑아 줄 거면 뭐 하러 차광막을 씌워줄까? 결국 차광막을 들추고 몇 차례 풀을 뽑아주어야 했다. 거기에다 한 술 더 떠서 비가 와도 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지도 못했다. 결국 여름 내내 물을 퍼 날라야 했다. 앞으로는 텃밭에 차광막을 깔아주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역시 간격을 넓게 심어서인지 가지는 엄청난 속도로 자라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가지가 내 키보다도 더 크게 자랐으니 큼직한 토란도 가지 옆에서는 작아 보였다. 파프리카 두 포기가 초라해 보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지나가던 옆집 아저씨께서 우리 집 가지를 보고 말씀하셨다. "가지가 저렇게도 크게 자라나 보네!"      

큼직한 가지가 20여 개는 매달려 있다. 가지 뒤에 토란이 보인다.

가지는 성장 속도가 빠른 작물이다. 꽃이 피고 작은 가지가 열렸다 싶으면 어느새 팔뚝만큼 굵어져 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라 십여 개가 끊임없이 자란다. 이때부터는 가지가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 집 메뉴에 등장한다. 가지 무침, 가지 볶음, 가지 튀김, 가지찜. 그런데 매일 가지만 먹고사나? 결국 우리 식구들은 가지만 보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추석 때 동생네 식구들이 왔다. “가지 좀 줄까?” 동생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우리 집에도 많아!” 예전 같으면 공짜라고 좋아했을 터인데 이제는 귀찮다는 표정이다. 가지는 초보 농사꾼의 텃밭에서도 잘 자라나 보다. 더구나 시골에는 텃밭 없는 집이 거의 없으니, 내 주위에는 가지를 준다고 해도 반가워하는 사람도 없다.  


텃밭 채소는 재배도 중요하지만, 갈무리한 채소를 어떻게 보관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가지를 말려도 봤다. 하지만 작년에 말려놓은 가지뿐만이 아니라 무말랭이도, 시래기도 아직 남아있다. 그나마 수확한 채소를 저온저장고에 넣어두면 좀 오래 보관이 되지만, 한 달도 채 안되어 물러지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나무에 매달려있으면 좀 더 오래갈 것 같아서 수확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더니만 가지가 큰 것은 40cm나 된다. 한 포기 심었는데도 이 정도이니 두 포기 심었으면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식구가 별로 없으니 먹는 양이라고 해봐야 정말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도시에서 살면 비싼 채소 값에 눈이 번쩍 뜨일지 몰라도, 시골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는 사람 입장에서는 남아도는 게 채소다. 아직까지 우리 집 텃밭에서는 올봄에 심은 고구마와 생강, 토란 등이 수확을 위해 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가지도 아직까지 꽃을 피우고 있고.     


시골에서는 먹고살기가 힘들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말하며 다니는 사람 중의 하나다. 하지만 먹는 것만 놓고 따지자면 시골만큼 넉넉한 곳도 없는 것 같다. 


시골의 가을은 풍요롭다. 그리고 그 풍요로운 가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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