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일기 중에서
우리 집에는 전원주택에서 으레 볼 수 있는 예쁜 잔디 마당이 없다. 처음에는 우리 집 마당에도 잔디를 심을까 고민을 했지만 시골 살이라고 하는 현실을 먼저 고려해야만 했다. 우리 부부에게는 말끔하게 깎인 예쁜 초록색 잔디밭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는 모습보다는, 농사일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현실에 더 가까웠다.
크지는 않아도 텃밭과 과수원이 있으니 할 일이 많았다. 깎고 돌아서면 또 자라 있는 풀을 깎아주기도 벅찬데 집 앞마당까지 잔디를 심고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우리 부부가 취미생활로 풀 뽑으려고 시골로 온 것은 아니니까.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방법이 마당에 자갈 (쇄석)을 깔아주는 거였다.
처음에는 자갈이 꽤나 괜찮은 방법처럼 보였는데 세월이 흐르니 이 방법에도 문제가 있었다. 살다 보면 자갈 위에도 흙이 쌓이기 마련이고 날아든 풀씨가 자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 마당은 온통 자갈과 잡초로 뒤섞여 버렸다. 지나가시던 동네 어른들은 우리 집 마당을 보시고 심란해하시며 말씀하셨다. “제초제 주랴?”
그까짓 잡초쯤이야 무시하며 산다 치더라도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과수원에 물건을 나르려면 앞마당을 지나가야 하는데 외발수레바퀴가 자꾸 자갈밭에 빠져버렸다. 결국 몇 년 뒤에서야 지인의 도움으로 보도블록 한 팔레트를 구입할 수 있었고, 마당을 가로지르는 자그마한 외발수레 길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 집도 남들처럼 마당을 좀 예쁘게 꾸며야겠어!”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듯이 아내가 제안을 했다. 그래서 조경용 사각 돌을 구입하기 위해 100km 넘는 곳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돌 한 개 무게가 3kg이니 사각돌 100개가 우리 집 승용차에 실을 수 있는 최대치였다. 하지만 막상 가져온 돌들을 쌓아보니 화단을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큰돈 들여가며 마당을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우리 집은 도시 근교에서 볼 수 있는 예쁜 전원주택이 아니다. 그저 과수원이 딸린 작은 농가주택이니 일하기 편하고, 또 마당이 너무 산만해 보이지 않도록 경계석을 쌓을 수만 있으면 충분했다.
어떻게 마당을 꾸밀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었는데, 이른 아침에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혹시 집에 보도블록이 필요하세요? 시내에 있는 보도블록을 교체하며 걷어낸 건데 아직 쓸만하대요." "당근이죠!" 예전에 내 책 <귀촌 후에 비로소 삶이 보였다>를 선물로 한 권 드린 적이 있는데, 책 내용 중에 마당 블록 공사에 대한 글이 생각나서 전화를 하셨다고 한다.
그동안 책 말고도 여기저기에 불평을 늘어놓기는 했다. 마당 전체를 확 뜯어고치자는 것도 아니니 자재를 조금만 구입하면 되는데, 조경용 자재는 소량으로 판매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팔레트 단위로 구입을 하기에는 양이 너무 많다. 또 자칫하면 운반비가 자재비보다 더 나온다. 더구나 트럭에 싣고 온 자재를 내리려면 지게차까지 불러야 한다. 이 모든 경비를 따져보면 항상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이런 내막도 아시는지 트럭도 빌려주시겠다고 한다. "그런데 저는 오늘 어디 가야 해서 집 앞에 트럭을 꺼내놓을게요. 보험은 들어있으니 걱정 마세요!"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아직 끝마치지 못한 일이 조금 남아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아침식사 후 신이 나서 아내와 트럭을 가지러 갔다.
"어라? 스틱이네(수동 변속기)!" 30여 년 전 운전면허 시험을 볼 때 이후로는 한 번도 트럭을 몰아 본 적이 없었다. 시골에는 아직도 수동변속기가 장착된 트럭이 많은 가 보다. 또 시골서 농사짓는 분들치고 트럭을 운전하지 못하시는 분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아주머니들도 쌩쌩 거리며 트럭을 몰고 다니시니까. 단 우리 부부만 빼고!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가며 어떻게 좀 해 보려는데 트럭은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를 않았다. 덜커덩거리며 차가 가다 섰다를 반복하자 조수석에 앉아있던 아내가 불안한 듯 말을 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그냥 우리 차로 조금씩 나르는 게 낫겠어!" 나 역시 시내까지 트럭을 몰고 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 우리 차로 가자. 한 번에 100장씩 5번만 왕복을 해도 500장이 되니까!" 물론 그러려면 하루 종일 운전을 해야 한다.
결국 내차 (SUV)를 타고 보도블록 공사를 하고 있다는 현장으로 찾아갔다. "보도블록 얻으러 왔는데요."
공사 감독님이 나와 내 차를 번갈아 보셨다. 틀림없이 한숨을 쉬시는 것 같은데 마스크를 쓰고 계셔서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말씀하셨다. "이따 일 끝나고 제 트럭으로 실어다 드릴게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묻지도 않는 말을 주절거렸다. ”제가 스틱은 운전할 줄을 몰라서요..."
어렵게 보도블록을 얻게 되었다. 이제 날씨가 풀리면 슬슬 보도블록 공사나 해야겠다. 슬슬 놀면서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니라 취미생활이니까. 이렇게 작지만 하나씩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도 시골 살이를 하며 맛볼 수 있는 기쁨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우리 집 마당이 조금은 예뻐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