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귀촌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침이와 호돌이네 Dec 15. 2022

시골에서 운동하기

귀촌 일기 중에서

그래도 오래 살아보겠다고 우리 부부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다. 올해 건강검진 때 "몸에 별 이상은 없지만 심뇌혈관질환의 우려가 있으니 신체활동을 많이 하세요"라고 한다. “신체활동을 많이 하라고요? 제가 농부라 매일 몸 쓰는 일만 하는데요?”라고 따졌더니 노동과 운동은 다르다고 한다. 전문가의 조언대로 운동을 하긴 해야겠는데, 막상 운동을 하려 들면 시골에서는 여건이 마땅치가 않다.

     

외관적으로는 시골처럼 운동하기에 좋은 곳도 없어 보인다. 주위에 공원도 많고 산도 많다. 더구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에도 어디를 가든 사람이 북적거리지 않는다. 평일에 사람을 볼 수 없는 건 그렇다 치지만, 주말에도 별로 없다. 혹시 이런 한적한 환경을 부러워하실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 한다.

     

시골에는 워낙 인구 밀도가 낮다 보니 공공시설이 시내 근처에만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충주만 하더라도 서울보다 면적이 1.6배나 넓지만 인구는 21만 명뿐이다. 집들이 멀리 떨어져 있으니 당연히 공공시설까지 가는 게 쉽지가 않다. 우리 집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운동시설까지도 15km나 된다. 말이 15km 지, 어쩌다 한 두 번도 아니고 운동한답시고 매번 차를 타고 그곳까지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요즘 기름값이 얼만데...


여름이면 운동한다고 즐겨 찾는 조정경기장. 이곳은 밤에도 불빛이 있다.

그렇다고 집 근처에서 운동을 하기도 만만치는 않다. 여름이면 시골에서는 누구나 새벽에 일을 하는데, 날이 환해지기 시작할 무렵이면 벌써 일을 시작한다. 나도 새벽에 일을 해야 하지만, 설사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운동한답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는 없다. 남들은 다 논밭에서 땀 흘려 일하는데 그냥 모른 체 지나가기도 어렵고, 자칫하면 '팔자 좋은 놈' 소리를 듣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물론 한낮에는 무더우니 일도 운동도 할 수가 없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그나마 여유가 있는데, 집 밖은 이미 깜깜한 암흑이다. 가로등 불빛도 없고 지나가는 차도 없다. 그저 초롱초롱한 별빛만 보인다. 시골에는 도시처럼 가로등 켜진 도로가 드물다. 더구나 시골의 큰 도로변은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자전거도로나 인도라는 것이 아예 없다. 그래서 우리 집처럼 어정쩡하게 국도변에 사는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마을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당연히 집 주위에 헬스장도 없지만,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아까운 돈을 내면서 갈 마음은 없다. 물론 나만 그런 건 아니고, 지금까지 내 주위에서 힘들게 농사지으며 헬스장 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언덕을 따라 몇 차례 오르내리면 땀이 난다. 날씨가 음산하더니만 싸리 눈이 날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집 앞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다. 예전에 앞산에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니는 사람이 없어 잡목에 묻혀 버린 지 오래다. 더구나 최근에 새끼 딸린 산돼지를 봤다는 말에 이제는 동네 사람 누구도 산에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산돼지들이 산 밑자락에 있는 고구마 밭을 다 파헤쳤다고 시끄럽더니만, 얼마 전 포수들이 산돼지 한 마리를 잡아갔다.    

 

한 겨울에도 집 앞 언덕 끝까지 네 다섯 차례만 오르내리면 땀이 나고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더구나 농사철이 끝난 지금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도 없으니 더욱 한적해서 좋다.

     

하지만 이곳에도 단점이 있다. 우선 너무 단조롭다. 보이는 거라고는 고구마를 수확하고 파헤쳐 놓은 황량한 언덕과, 멀리 보이는 공장의 철탑과 건물뿐이다. 초록색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앞산의 잿빛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더욱 초라해 보인다. 시골의 겨울은 어디를 가든 황량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그런 황량한 경치를 보며 매번 언덕을 반복해서 오르내리려면 상당한 끈기가 있어야 한다.


아무래도 추운 날씨와 코로나로 집안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당연히 운동량이 부족하니 늘어나는 몸무게가 예사롭지 않다. 점심을 먹고 빈둥거리다가 집 앞 언덕으로 운동하러 가기로 했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매를 둘러보며 한숨을 짓던 아내도 요즘은 곧잘 나를 따라나선다. 아내라도 꼬드겨 같이 언덕을 오르내리면 이런저런 얘기 하느라, 또는 말다툼하느라 지겨운 줄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간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는 운동을 하기도 어렵다. '팔자 좋은 놈'소리 듣기 십상이니까. (사진 출처: pixabay)

 

올해도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올 초만 해도 거창한 계획을 세웠었는데 어느새 모두 사라져 버리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한 해가 되어버렸다. 텃밭에 채소를 심고, 사과나무를 가꾸고, 풀과 씨름을 하다 보니 속절없이 또 한 해가 지나가 버렸다. 어차피 사람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조금은 아쉽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같은 삶이라고 할지라도, 내년에는 그 속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일탈일 수도 있는 그 작은 변화가 내 삶에 생기를 주고, 좀 더 의미 있는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내년에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아내와 새해 계획을 세웠다. 이제는 거창한 것 말고, 좀 더 현실적이고 실천하기 쉬운 것으로.

 

‘더 이상 몸무게 늘리지 말기!’ 우리 부부의 공동목표다. 


몸무게 빼는 건 고사하고 앞으로 더 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도 결코 만만치가 않은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생이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